(시론)방송을 정치에서 풀어줄 때가 됐다
2023-08-28 06:00:00 2023-08-28 06:00:00
임기 10개월을 남겨두고 해임된 공영 방송 사장이 있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이사회 멤버들을 갈아치웠고 정부와 여당 추천 이사들로 과반을 확보한 뒤 이사회를 소집해 사장을 해임했다. 부당한 해임이라며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무효 소송을 걸었는데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5년이나 지난 뒤였고 다시 정권이 바뀐 상태였다.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지만 해임이 무효라고 한들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 사람이 바로 고대영이다. 20181월 고대영을 KBS 사장에서 끌어내린 대통령이 문재인이다. 해임이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5년이 지난 올해 629일에 났다. 애초에 고대영이 KBS 사장으로 적합한 인물이었느냐를 두고 평가가 엇갈리겠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지난 정권에서 임명한 사장이 정권이 바뀌니 잘렸다는 사실이다. 잘릴 만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공영 방송 사장의 독립적 지위를 보장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비슷한 사건이 10년 전에도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KBS 이사회가 임기가 15개월 남아있는 정연주 사장을 해임했다. 정연주도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 무효 소송을 걸었고 1심과 2, 3심까지 모두 승소했다. 이때도 이사회를 먼저 압박해 사퇴를 종용하거나 해임해서 정족수를 맞췄다. 법원은 일부 경영상 과실은 인정되지만 해임 사유는 될 수 없다면서 절차상 하자가 있고 재량권도 남용됐다고 판단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15년 전 해임됐던 정연주가 이번에는 윤석열 정부에서 강제로 끌려 내려왔다. 이번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임기를 11개월 남겨 두고 업무추진비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이유로 해촉했다. 정연주는 다시 법원에 집행 정지 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재판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 몇 년 뒤 다시 해촉 무효 판결이 날 수도 있지만 그때는 이미 임기가 끝나고 정권이 다시 바뀐 뒤일 수도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정부·여당과 야당 추천 인사의 비율이 3:2.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6:3이고, KBS 이사회는 7:4,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회도 6:3이다. 다수결로 결정하는위원회 시스템은 과반이 전부인 것과 마찬가지고 정권을 잡으면 절대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게된다. 지난 석 달 사이 방통위원장 한상혁이 해임된 데 이어 KBS 이사장 남영진과 방문진 이사장 권태선이 해임됐다. 다음 차례는 KBSMBC 사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왜 이런 비극이 반복되는가. 공영 방송 전문가인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는 두 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첫째, 아예 정권이 바뀌면 공영 방송 사장이 물러나도록 임기를 맞추는 것도 대안이다. 애초에 대통령의 선의에 기대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 법원에서 해임 무효 가처분을 받아들여 제동을 걸어야 한다. 어차피 몇 년 뒤 재판에서 뒤집힐 거라면 법원이 공영 방송 독립이라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정연주와 고대영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둘 다 결국 정권의 낙하산 아니냐고 보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우리 편이냐 아니냐, 좋은 사람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공영 방송을 정권의 전리품처럼 콘트롤할 수 없도록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에서 하지 못했고 윤석열 정부도 의지가 없다. 15년 전 정연주를 날렸던 이동관이 방통위원장으로 돌아온다면 민주주의의 퇴행이자 비극이다
 
이정환 슬로우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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