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민이 측은하다, 국민이 애통하다
2023-07-24 06:00:00 2023-07-24 06:00:00
지난 7월 14일, 산사태로 열차 운행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귀국할 예정이었으나 귀국하지 않았다.
 
그 다음 날인 7월 15일, 충북 청주시의 궁평지하차도 침수 사고로 우리 국민 14명이 사망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그 시간이 아니면 우크라이나 방문 기회는 종전까지 없을 것으로 보여 결단을 내려야 했다. 한국 대통령이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집중호우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그 다음 날인 7월 16일, 경북 예천군의 산사태로 주택 5채가 매몰되었고 9명이 실종되었다.
 
그렇다. 대통령께서 수해 현장에 당장 뛰어가셔도 상황을 바꿀 수 없는 것은 맞다. 이미 발생한 자연재해를 대통령의 방문으로 복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전쟁의 참상을 바꿀 수 있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방문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 아니던가. 재난의 현장인 우리 국토를 뒤로 하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하는 것이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이 할 일이던가. 재난으로 신음하는 우리 국민을 만나 위로하는 것보다 우크라이나 국민을 만나는 것이 대한민국 대통령의 우선순위이던가. 
 
열차가 탈선되는 사고가 있는 때에, 침수로 국민이 사망하는 위급한 시기에, 산사태로 주택이 매몰된 처참한 날에, 꼭 이 시기에 우리 대한민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방문했어야 하는가. 어찌 우크라이나에 방문하는 기회가 꼭 우리 국민이 재해로 신음하고 있을 때뿐이라고 여기는가.
 
그런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방문을 급히 마무리하고 7월 17일 드디어 귀국했다. 귀국 직후 경북 예천군의 산사태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뒤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수해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다 당분간 계시는 것이 좀 좁고 불편하시겠지만 여기 평소에 그래도 많이 계시던 데니까 조금만 참고 계십시오."
 
말꼬투리를 잡자는 것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폭우의 현장을 찾고서도 수재민이 어떤 고통을 느끼는지 모르는 것 같다. 평소에 좁고 불편한 곳에 계시던 국민은 수해를 입고도 계속 참고 계시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당신은 원래 고통받고 있었으니 조금만 더 참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조롱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맹자는 남의 불행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측은지심, 惻隱之心), 잘못을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느끼는 마음(수오지심, 羞惡之心), 자신을 낮추고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사양지심, 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마음(시비지심, 是非之心)의 네 가지를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다. 측은지심은 다른 세가지 마음의 근원으로, 맹자는 정치는 모름지기 측은지심이 근간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공동체의 불행, 우리 국민의 불행을 함께 아파하고 서로 위로하며 그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진정,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일까. 우리는 이제 측은지심이 없는 대통령을 만나게 된 걸까. 아니, 우리는 이제 측은지심도 수오지심도 없는 대통령을 만나게 된 것일까.
 
우리 국민들께 대통령의 말씀 대신 성경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4절)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종로구지역위원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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