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슬픔의 삼각형'이 펴질 그 날
2023-07-18 06:00:00 2023-07-18 06:00:00
“오늘 오디션은 ‘도도상’인가요 아니면 ‘만만상’인가요?”
 
모델 오디션장에서 리포터가 칼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그게 뭐냐고 되묻는 칼에게 리포터는 이렇게 설명한다. 고급 브랜드는 도도상, 저렴한 브랜드는 만만상이라고. 칼은 발렌시아가(고급 브랜드)와 H&M(저가 브랜드)을 바삐 오가며 ‘도도’와 ‘만만’의 표정을 연습하지만 막상 심사위원은 의외의 것을 주문한다. “슬픔의 삼각형 좀 펴 봐요!”
 
슬픔의 삼각형은 두 눈썹사이, 즉 미간을 일컫는다. 이곳에 내천(川)자로 생긴 주름을 스웨덴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trouble wrinkle(문제적 주름)’. 큰일을 겪은 후에 생기는 주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의 주인공인 칼은 얼굴에 슬픔의 삼각형을 가진 자답게 순탄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하다하다 무인도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모델인 여자친구 야야가 협찬으로 받은 호화 크루즈여행에 함께 탑승했다가 배가 폭파되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호화 크루즈 안은 계급사회였다. 계급을 결정짓는 건 오로지 ‘돈’이었는데 공간이 무인도로 바뀌자 ‘능력’이 돈을 대체한다. 크루즈에서 화장실 청소부였던 애비게일은 불을 피우고 낚시하는 능력 덕분에 최고 권력자가 된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이 실현된 그곳에서는 크루즈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협력’이라는 말이 힘을 갖지 못했다. 그간 쌓인 한(恨)을 풀기로 작정한 듯 애비게일은 마음껏 권력을 휘두른다. 야야로부터 칼을 빼앗기까지 한다.
 
지배체제가 인간의 욕망을 키우게 하든 누르게 하든 피지배자가 경험하는 감정은 동일하다. 비루함이다. 사전적 정의로 ‘천하고 너절하다’는 뜻이다. 그럼 사람은 대체 언제 비루해지는 걸까. 영화를 통해 보면 외부의 환경과 조건에 저항하지 않고 그것을 내면화할 때인 것 같다. 물론 그 내면화는 무수히 꺾인 의지가 마침내 절망이 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일찍이 스스로를 ‘절대적인 낙오자’라 칭하며 평생을 염세주의에 투항했던 철학자 에밀 시오랑은 비루함이야말로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직시하게 한다고 말했다. 시오랑을 통해 직시하게 되는 삶의 본질은 바로 ‘모순’이다. 그는 숱하게 죽음을 얘기했지만 오히려 죽음에서 강한 삶의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 “하루하루가 죽어야 할 새로운 이유를 가르쳐주”므로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살 수밖에 없는 생(生)과 사(死)의 모순. 이 모순이 비루함이다. 배 안에서 칼이 만난 ‘러시아 자본주의자’와 ‘미국 공산주의자’는 그래서 쌍둥이처럼 닮았다.
 
“사람들의 자기인식에 난 하등 관심 없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괴물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신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리체계를 구축한다.”
 
미국 공산주의자인 크루즈의 선장은 배가 침몰하는 와중에도 세상 한가롭게 노암 촘스키의 <How the World Works>를 읽으며 말한다. “(촘스키가 말하는) 그 ‘논리’란 건 이런 거야. 부자는 탈세를 일삼으며 사회에 전혀 기여하지 않아도 양심에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거.”
 
후쿠시마 오염수가 방류되어도 상관없고 국책사업을 한 순간에 백지화시켜도 문제없는, 바로 저 ‘논리’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또 한 번 경악한다. 힘이 없는 국민들은 그들에 의해 더 비루해진다. 이 비루함을 없애려면 모순을 극복하면 되는가. 그렇다면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하는데도 실제로는 주인이 아닌 자들이 진짜로 주인이 되면 되는가. 그럴 수 있는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내년 4월이다. 그 날은 저들 때문에 깊게 패인 ‘슬픔의 삼각형’을 우리의 힘으로 곧게 펼 수 있는 날이 되기를.
 
이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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