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반도체 우수인재 확보를 위해 기업이 할 일
2023-07-13 06:00:00 2023-07-13 06:00:00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반도체 등 핵심 기술을 다루는 직원들의 이직 사례를 두고 업계 의견이 꾸준히 엇갈리고 있습니다. "핵심 기술 보호" 대 "직업 선택의 자유"라고 첨예하게 맞서는 건데요.
 
12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경업금지 서약을 하고도 경쟁 업체에 입사한 직원 A씨와 B씨의 취업을 제한해 달라는 회사의 요구에 법원이 각각 다른 판단을 내린 사례가 나왔습니다.
 
두 사람의 차이를 가른건 제품 개발에 핵심 업무를 담당했는지 여부였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선 안 된다는 점이 고려 대상이 됐습니다. 기업의 핵심 기술 보호와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판례인 셈입니다. 
 
다만 숱한 논란에도 반도체 등 핵심 기술에 몸담았던 직원의 이직 금지는 정당하다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입니다. 법원은 지난 5월 삼성전자 반도체 D램 설계를 담당하다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핵심 연구원 C씨에 대해 삼성전자가 제기한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바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C씨가 회사에 근무하면서 알게 된 D램 관련 정보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된 산업기술이고 회사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면서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는데요.
 
재판부는 "D램 분야에서 삼성전자는 시장 점유율 1위, 마이크론은 3위를 기록해 두 회사는 주요 경쟁상대"라며 "반도체 분야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공정한 시장경제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어 전직금지약정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일부 제한한다고 해도 공공의 이익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C씨는 20년 넘게 D램 설계 업무를 담당하면서 개발 과정과 회사가 축적한 기술정보에 접근했고 이용할 수 있다"면서 "퇴직할 때 영업비밀 보호 서약서에 관련 내용을 기재했기에, 관련 내용이 경쟁업체에 유출될 경우 회사가 손해가 될 수 있음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상당수 기업에서 반도체 등 핵심 기술 유출 금지를 위해 여러 안전 장치 마련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직원들이 업무 과정에서 터득한 머릿속 지식까지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난제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해외에선 '스카우트 자제 담합'이라는 삐뚤어진 거래가 발각된 적도 있습니다. 지난 2014년 애플, 구글, 인텔 등 실리콘밸리 대기업들이 인력 스카우트를 자제하자고 담합한 혐의로 집단소송에 걸렸다가 거액의 합의금을 지불키로 한 게 대표적인 일화입니다. 
 
당시 미 법무부의 기소 내용에 따르면 이 회사들은 서로 '콜드 콜'(cold call)을 하지 않기로 담합함으로써 반독점법을 위반했습니다. '콜드 콜'이란 특정 근로자가 이직 의사를 밝히고 접촉해 오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편 회사가 먼저 이 근로자를 접촉해 스카우트를 제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당 사건은 연구개발 인력의 이직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것 자체가 공정경쟁을 해치는 불법 행위라고 보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의 분위기를 잘 보여 주는 사례로 꼽힙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주요 대기업들이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경업금지 약정'이나 '동종업체 취업금지 서약' 등을 받는 방식으로 연구·개발 인력의 이직을 제한하고 '몸값'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관행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다만 기업 입장에선 영업 기밀 등 기술 유출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해외 업체로 이직을 준비하던 직원이 핵심 기술이 담긴 중요 자료를 화면에 띄워놓고 사진을 촬영해 보관하다 적발된 사례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 패권 경쟁이 현재 진행형인 반도체 업계에서는 인력 유출을 막는 일이 기업 경쟁력 측면을 넘어 국가 안보의 관점에서도 중요해진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애국심이나 애사심에만 기대 직원들에게 법에도 없는 서약을 강요하는 것 역시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큽니다. 이러다보니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반도체를 개발하면 직업 선택의 자유도 없는 건가요?"라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스카우트 된 이력을 가진 재계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무작정 이직 금지만으로는 해결할 일이 아니다"며 "반도체 종사자 및 직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실리콘밸리의 대다수 기업은 봉급, 보너스, 승진 등 직원들에게 막대한 혜택을 준다"며 "이는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고 개개인을 잠재적인 인재로 바라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경우 총수가 바뀌니 기존 워크스마트에서 워크하드 기업으로 변하게 되더라. 그게 스카우트 된지 단 3년 만에 벌어진 일"이라며 경직된 노동 환경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결국 '최고의 인재를 성장시켜 최고의 전문가로 만들겠다'는 회사 전체의 운영 철학이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한국 재계에서도 기업의 '보호받을 권리'와 노동자의 '노동권의 자유'가 적절한 균형을 찾는 날이 오길 기대해봅니다.
 
임유진 재계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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