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지금도 민주주의는 연대를 통해 진보해 나간다
2023-07-05 06:00:00 2023-07-05 06:00:00
때로 인생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삶의 궤적을 바꿔 놓는다. 나는 2014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의 피해자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나는 세습 재벌 일가 중 한 사람의 심기가 나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합리한 명령으로 비행기에서 쫓겨나 혹한의 한 겨울 뉴욕 JFK공항에 홀로 남겨졌었다.
 
그 사건으로 평범했던 일상은 파괴되었고, 정신적 또 육체적 고통도 크게 뒤따랐다. 그저 나쁜짓 하지 않고 우리 공동체가 요구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성실히 살아간다면, 나의 존엄은 마땅히 보호 받을 것이라 믿었던 순진한 마음도 이 사건을 겪으며 산산조각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 죽음을 스스로 감행하려 시도해야 할 정도로 삶의 보존조차 어려운 피폐한 상황에 내몰린 피해자였지만,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언론권력, 정치권력, 행정 및 사법 권력 그 어느 하나도 스스로 작동해서 보호해 주려 하지 않았다.
 
가해자였던 세습 재벌 일가의 구성원과 달리 항공기 승무원이자 팀장이었던 위치는 그 누구의 시혜로 저절로 만들어진 자리가 아니라, 나 스스로 성실한 시민으로 충실히 쌓아올린 노력의 결과물이었지만, 세습 지위보다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는 경험의 연속이었다.
 
결국 반쯤 죽은 상태가 된 몸과 정신으로 스스로 각종 소송을 제기하고 여러 탐문을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에 해야 했다. 하지만, 그 또한 만만하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수십억을 사용하여 전관예우 같은 것들로 넘쳐나는 보호막을 세운 거대 자본가에게 대항하기에는 평범한 시민인 내가 가질 수 있는 저항의 힘은 초라하게 작고 연약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자유와 권리를 누리며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개별 주체로서 각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와 권리의 가치에 대하여 제대로 인식하고 못하고 있는 듯도 하다. 
 
1987년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과 공권력에 의한 고 이한열의 죽음이 이끌어낸 민중의 각성으로 우리 시민들은 서로 연대했고 거리로 다 함께 나섰고, 그 결과 현재 우리가 마땅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대통령 직선제와 같은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제대로 보호되고 보장되는 민주주의가 실현되는 밑바탕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민주주의는 여러 면에서 부족하다. 누군가 다치거나 죽고 혹은 그 죽을만큼의 고통을 감내하고 나서야 제도가 겨우 정비되고, 개인의 존엄이 보존 받는 지경이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김용균이 노동현장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야 비로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고, 세습 재벌 일가가 저지른 인격 살인 사건이었던 ‘땅콩회항’이 일어나고 나서야 ‘직장내괴롭힘방지법’같은 제도적 장치가 겨우 만들어지는 것이 그 예가 아닐까. 여전히 개별 시민의 희생으로 진보하는 민주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존엄성을 갖는다. 이는 지위 고하, 재산, 성별, 인종, 국적에 상관없이 절대적이고도 동동한 가치다, 따라서 외부 환경이나 타인에 의해 침해받을 수도, 상처받을 수도, 평가될 수도 없다. 인간이 자신의 존엄성을 잃는다면 그 삶은 미생물보다 나을 게 없을 것이다.
 
나는 땅콩회항사건 이후 더 이상 그들이 나의 존엄성을 훼손하게 놔둘 수 없는 자각한 시민이 되었다. 그 사건 이후 내 삶은 오로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의 연속이었으며 아직도 그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비록 견고한 세상 은 쉽사리 바뀌지 않겠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의 외침이 계속해서 울려 퍼지다 보면 분명 다른 사람들의 가슴속에도 저마다의 존엄 이 깨어날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그 하나하나의 존엄이 깨어날 때 마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올 가능성이 커진다고 믿는다. 
 
모든 생물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으로 외부에서 에너지를 얻어야 한다. 이는 인간 또한 예외가 아니다. 현대인들은 노동을 대가로 생존에 필수로 필요한 여러 재화를 취득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현대 자본 권력은 때때로 빵 한 조각을 얻으려면, 노동자는 자신의 피와 살을 도려내 시장에 내놓고, 영혼마저 저당 잡힐 것을 강요한다.
 
이런 식으로 노동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만행에 사회가 관대하다보니 인간은 비용이나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각 권력 주체간의 상호 견제가 존재하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개인의 가치가 절대적으로 존중받는 민주주의가 일하는 현장에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계속 진보해 나가야 한다. 개별 시민의 힘은 여전히 미약할지 모르나 1987년 거리로 나온 수많은 시민의 연대가 최초의 근대적 민주화의 계기가 되었듯, 우리의 용기가 불러온 연대의 힘이 큰 물줄기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더 나은 방향으로의 전환을 가져오리라 믿기 때문이다.
 
박창진 바른선거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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