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유럽연합(EU)이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 초안을 14일(현지시각) 발표할 예정입니다. 한국의 핵심 업종 중 하나인 배터리 산업에 EU의 압박이 가해지면서 관련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전경(사진=연합뉴스)
핵심원자재법, IRA와 유사…'EU발 배터리 업계 경고등'
13일 업계에 따르면 CRMA에는 전기차 배터리 핵심 원자재의 최소 10% 이상을 EU 역내 생산하고, 40%를 역내 가공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결국 핵심 원자재에 대한 EU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데요. 미국 IRA와 반도체 지원법 시행으로 한국 기업들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이번엔 EU발 배터리 업계 경고등이 켜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유럽산 광물을 육성하기 위해 중국 등 다른 지역의 광물을 규제하는 내용이 담길 경우 IRA와 같은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가 북미 생산거점을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핵심 광물의 중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입니다. EU는 전기차 배터리 등 친환경 산업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관련 기업에 제3국과 같은 수준의 보조금을 주기로 했는데요. 미국 IRA 보조금에 맞선 대책으로 풀이됩니다.
북미와 유럽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공식적인 반응은 자제했습니다. 다만 유럽이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조항을 추가한다면 기업들의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내부 우려가 팽배합니다.
"구체적 내용 나와야…자국 우선주의 심화" "예의주시" 업계 신중론
업계 관계자는 "CRMA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와야 알겠지만 자국우선주의가 심화되는 상황임은 틀림없다"면서 "일단 초안이 나오면 그에 맞춰 공급망 다변화와 현지화 등 시스템 재검토 등 추이를 지켜보면서 대응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관계자는 "보조금으로 공급망을 단단하게 하겠다는 의도로 보이는데, 이것이 국내 업계에 호재가 될지 악재가 될지는 모르는 상황"이라고 신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의 IRA처럼 확실하게 중국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것인지, 얼마나 보조금을 주겠다는 것인지 등 세부 내용이 나오지 않은 상태여서 예의주시하고 있을 뿐"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앞서 EU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중국의 봉쇄 정책으로 중국산 의존도가 높은 마그네슘,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은 바 있습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원자재와 및 에너지 공급망의 전략적 확보가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EU가 전기차 확대를 통한 탄소중립 달성 의지가 큰 권역인 만큼 CRMA를 통해 기업들에게 한층 강화된 환경 기준을 제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아울러 현지에서 원자재를 생산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통해 중국 등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장치를 마련할 것이란 게 업계 전망입니다. 이는 결국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포석이지요.
원자재 (CG)(사진=연합뉴스)
대중 의존도 낮추는게 과제…"정부·민간 협력 필요"
배터리 시장의 경우 우리나라가 선두권에 있지만, 각사의 기술력 만으로 방어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핵심 원자재의 대중 의존도를 낮춰야함이 시급한 과제가 됐습니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의 '이차전지 핵심광물 8대 품목의 공급망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배터리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 8대 품목 중 대중 의존도가 58.7%로 가장 높았습니다. 성장세도 가팔라서 대중 수입 비중은 2010년 35.6%에서 2020년 58.7%로 10년 새 23%포인트 급상승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무역협회는 보고서에서 "미국이나 EU의 규제 강화로 중국산 원자재를 사용하는 배터리는 국제 시장에서 외면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에 의존하는 배터리 공급망은 한국 배터리 생태계의 위협 요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정만기 무협 부회장도 최근 열린 '제2회 글로벌 통상포럼'에서 "공급망을 다변화해 배터리 핵심 광물과 희토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탈피하는 동시에 거대 수출시장인 중국의 중요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부회장은 "IRA와 CRMA 시행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로선 어느 때 보다 전략적인 정부와 민간의 통상·협력활동 전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EU가 탄소중립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결국 CRMA는 역내 산업 경쟁력을 강화키 위한 자국 우선주의 일환"이라며 "광물 확보를 비롯해 생산까지 아우르는 공급망 구축이 시급하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 정부도 K-배터리 업체들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도록 기술 경쟁력 강화 등 국가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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