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그를 떠올리면 몇 가지 코드가 있습니다. 우선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 입니다. 대부분의 배우들의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 사투리를 피나는 노력 끝에 지우고 표준말을 익힙니다. 배우라면 응당 그래야 하는게 맞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배우, 데뷔 당시부터 너무 강한 사투리 억양 탓에 대사는 고사하고 캐스팅이 된 상태에서 편집이 되거나 또는 대사 없는 병풍 배역으로 나서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배우에게 사투리를 빼면 상상이 안될 정도입니다. 이 배우 특유의 사투리 억양이 워낙 강한 매력이 돼 버렸습니다. 오죽하면 이 영화에선 이 배우의 외국어 억양에서도 경상도 사투리가 들릴 정도입니다. 두 번째는 코믹한 이미지입니다. 앞선 사투리 억양 탓입니다. 그리고 최근 일부 공개 리얼리티 프로그램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그의 털털한 성격 탓이기도 합니다. 워낙 진국인 성격 때문에 작품 속에서 조차 과장되고 희화화된 모습을 자주 선보여 왔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배우, 대한민국에서 카리스마로치면 첫 손가락에 꼽혀도 이견을 달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말이죠. 국내 최 정상급 패션모델 출신에서 몇 년째 신인 영화배우 그리고 이젠 진짜 ‘배우’라고 스스로를 소개할 수 있게 됐단 배정남에 대한 얘기입니다.
배우 배정남. 사진=CJ ENM
배정남은 여전히 그리고 아직도 모델 출신이란 이미지가 강한 배우입니다. 워낙 패셔너블하고 또 멋진 스타일과 일상으로 그를 동경하는 팬들과 후배들이 정말 많습니다. 물론 정작 본인은 모델 출신이란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면서도 배우로서 성공에 대한 갈망이 워낙 컸었습니다. 그럼에도 작품 운이라고 해야 할지. 뚜렷한 인상을 남길 만한 작품이 없었는데 ‘영웅’이 본인에게 왔다며 이젠 ‘배우’라고 주변에 본인을 소개한답니다.
“’영웅’전까진 ‘뭐해요’라고 질문 받으면 솔직히 ‘배우’라고 소개를 못했어요. 그런데 이젠 ‘배우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소개합니다(웃음). 제가 잘해서 ‘배우’라고 뻐기는 게 아니라, 저 같은 인지도의 배우가 감히 윤제균 감독님과 작업을 했습니다. 그럼 저도 충분히 ‘배우’라고 소개해도 되지 않을까요 하하하. 감독님이 연락 와서 ‘책 하나 주려고 한다’라고 하셔서 ‘바로 가겠습니다’하고 달려가서 읽어보지도 않고 ‘하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린 게 ‘영웅’입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하하하.”
영화계에선 익히 알려진 내용이지만 윤제균 감독은 작품 캐스팅에서 배우의 연기력도 당연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사람 됨됨이, 즉 인성도 아주 중요하게 보는 연출자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평소 배정남을 주의 깊게 본 적도 없고 사실 배정남과 그 이전까지 접점 자체가 없었던 윤 감독이었습니다. 그의 배정남 캐스팅은 사실 약간의 지인 찬스가 있었답니다.
배우 배정남. 사진=CJ ENM
“제가 출연 했었던 ‘미스터 주: 사라진 VIP’ 제작사 대표님이 윤 감독님에게 ‘부산 출신 후배인데 잘 맞으실 거다’라고 절 소개해 주셨답니다. 당연히 전 연락 받고 존경하는 감독님 뵙는 자리라 달려갔죠. 중요한 건 그땐 감독님이 뭘 준비 하시는지 알지도 못했고 캐스팅 자리도 아니었어요. 근데 그때 식사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았는데 절 좋게 봐주신 거 같아요. 그리고 얼마 뒤 책 보내주신다 하신 거죠. 만나 뵙는 것만으로도 신입 모델 시절 최고의 디자이너 선생님 쇼 런어웨이에 선 기분이었죠.”
그렇게 배정남에게 온 배역은 극중 안중근의 조력자인 ‘조도선’. 실제 역사에 분명히 존재한 독립운동가로서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 함께 참여한 조력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만약이란 가정이 붙지만 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인물이 안 의사가 아닌 조도선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 우린 조금 다른 역사를 배우게 됐을 것이고. 실제 역사에서 안중근은 ‘하얼빈’ 그리고 조도선은 하얼빈 직전 ‘채가구’역에서 대기 중이었습니다. 이토 히로부미를 태운 기차가 어디에서 설지 몰랐기에 두 역을 모두 거사 장소로 삼았던 것입니다.
“이번 작품 준비하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또 알게 된 게 많습니다. 조도선이란 이름, 정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왜 이제야 이 분을 알게 됐는지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실제 역사에선 안중근 의사를 소개 받았는데, 굉장한 명사수이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러시아 말에도 능통해서 통역도 담당하셨답니다. 제일 안타까웠던 점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을 마감하셨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 점이 너무 안타까웠죠.”
배우 배정남. 사진=CJ ENM
배정남은 기억에 남는 여러 촬영 가운데 ‘영웅’의 명 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법정 재판 과정을 꼽았습니다. 이 장면은 ‘영웅’의 원작인 동명의 뮤지컬에서도 최고 명 장면으로 꼽히는 시퀀스입니다. 이 장면에서 그 유명한 ‘누가 죄인인가’란 노래가 터져 나옵니다. 이 장면을 찍으면서 배정남은 평소라면 결코 느껴보지 못할 감정이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경험해 봤다고 떠올렸습니다.
“재판에서 안 의사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시잖아요. 근데 제가 문득 실제 조도선이 된 느낌이 오면서 ‘만약 채가구에서 이토가 내렸다면 내가 사형이었을 텐데’란 생각이 들면서 피가 끓더라고요. 그 감정과 함께 눈물이 터지는 데 진짜 기분 묘했죠. 사실 그 장면에서 시나리오에는 ‘말 없이 눈물을 흘린다’였는데 눈물이 터질 거 같아서 꾹 참았어요. 결국 감독님께 ‘흐느낄 것 같다’라고 말씀 드리니 한 번 찍어보자 하셔서 그렇게 했는데 한 번에 오케이가 났죠. 살면서 흔치 않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배정남은 인터뷰 동안 ‘안 시켜 주시니 못했던 것이다 시켜주시면 정말 제대로 진짜 잘 할 자신이 있다’며 ‘하면 된다’는 말을 계속 하면서 의욕을 드러냈습니다. 2023년 41세가 된 그는 여전히 작품이 고프고 또 여전히 언제까지나 파릇파릇한 신인의 자세로 작품을 대하면서 즐겁게 행복하게 노력하려고 준비하고 있단다. 돈과 명예보다 그에게 중요한 건 행복하게 즐겁게 배우로서 호흡하고 즐기는 것이라고.
배우 배정남. 사진=CJ ENM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돈? 벌 마음만 있다면 진짜 제대로 벌 수 있습니다. 이건 뭐 건방진 소리가 아니라 진짜 배우 일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함께 해보자고 주변에서 말씀하시는 분들 많아요. 같이 하면 또 성격상 완전 올인해서 끝을 봐야 하니 전 진짜 자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바라보는 건 돈이나 성공이 아닙니다. 제 행복입니다. 제가 뭘 할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낄까. 현재는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계속해서 배우 일이 그 중심이 될 것 같습니다. 전 지금 완전 준비된 마흔입니다. 그리고 이제 배우라고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다 하겠습니다(웃음).”
인터뷰 말미에 배정남에게 가장 큰 보물과도 같은 반려견 벨의 근황을 물어봤습니다. ‘배정남’하면 거의 상징이자 아이콘과도 같은 반려견 벨. 배정남보다 벨을 더 많이 알아볼 정도로 주변에서 사랑을 많이 해준다며 활짝 웃는 배정남입니다. 하지만 현재 안타깝게도 벨이 크게 아파서 요즘 배정남의 가장 큰 근심이라고 하네요. 작년 8월 벨의 디스크가 터져서 전신이 마비가 된 상태랍니다. 현재는 용인의 반려 동물 케어 센터에서 지낸다네요. 이날도 인터뷰 후 용인으로 내려갈 예정이라고 웃는 배정남입니다.
배우 배정남. 사진=CJ ENM
“10년 전 지인의 도베르만 새끼를 분양 받아서 함께 살고 있는 제 가족이죠. 지금 10세 정도 됐는데 사람으로 치면 70대 할머니에요. 최선을 다해 보호하고 있고 마지막까지 제가 반드시 함께 할 겁니다. 우리 벨 때문에 제 인생이 달라졌으니 벨의 인생도 저로 인해 달라질 수 있게 노력해 보려고 합니다. 열심해 해야죠. 진짜 너무너무 행복하고, 벨과 함께 산책할 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즐겁게 일할 생각입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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