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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불공정계약 여전…"프로모션 내세운 플랫폼 영향력이 원인"
2차 저작물 권리 보장 못받는 사례 속출
영향력 커진 플랫폼, 불공정 계약 책임 회피
2023-01-26 06:00:00 2023-01-26 06:00:00
[뉴스토마토 이선율 기자] "오리지널 작품을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는 A작가는 자신의 캐릭터 사업을 대행해준다는 회사에 지분 이용 허락을 해줬습니다. 그러나 그 회사는 저작권을 마음대로 등록하고, 상의 없이 동업자의 지분을 양도받아 53%의 지분을 얻은 뒤 원작자인 A작가에게 캐릭터의 사용을 금지하는 소송을 건 상태입니다. 지분에 대한 권한이 CP(콘텐츠제작사)로 넘어갔을때 저작 인격권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나쁜 사례 중 하나로, 실제로도 이런 일들이 많습니다."
 
(사진=카카오페이지 첫화면 캡처)
 
웹툰·만화·웹소설 등을 생산하는 창작자들이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김현희 한국만화가협회 부회장은 위 사례처럼 저작권을 양도하는 양도 계약서가 증가해 피해를 보는 작가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웹소설을 웹툰화하거나 여러 작가와 협업해 창작하는 사례가 늘면서 이러한 불공정 계약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최근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에 따르면 현재 업계에서 사용되는 연재계약서 대다수에서 불공정한 수익배분 기준을 포함하는 조항을 비롯해 과도한 비밀유지 조항 등과 같은 불공정 조항들이 공통적으로 발견됐습니다. 이외에도 재판관할 합의 조항, 상당한 이유 없이 급부의 내용을 회사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변경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 불공정한 손해배상 조항, 작가에게 부당한 금전의 반환·손해배상책임을 하는 조항, 계약기간 관련 불공정 조항, 상당한 이유 없이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 등이 빈번하게 악용되고 있습니다.
 
현장의 작가들은 불공정한 계약 사례가 전보다 많아져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아울러 이같은 문제는 네이버웹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플랫폼의 독점적 권한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독점적 권한 행사의 대표 사례는 프로모션입니다. 모바일 화면으로 웹툰을 본다고 할 때 작가들에게는 메인화면의 어느 자리에 노출되는지가 중요한데요. 여기서 자리 배치 권한을 쥐고 있는 곳이 바로 플랫폼입니다. 수익창출과 수익분배 등과 관련해 플랫폼이 절대적 권한을 지니고 있는 만큼, 여기에 종속된 창작자들은 불공정 계약 등과 같은 구조가 이어져도 반박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됩니다.
 
불공정 계약을 체결하고도 향후 불이익이 두려워 소송 등의 대응에 나서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고 합니다. 범유경 변호사는 "계약서에 어느 조항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바로 서명을 하는 작가분들이 많다"면서 "또 저작권, 계약기간 등과 관련해 분쟁이 생겼을 때 계약서에 비밀유지조항이 있어서 덜컥 겁을 먹고 자문하는 것조차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비밀유지조항이 있어도 변호사 자문까지 막는 건 사실상 불공정 약관으로 판단돼 무효가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콘텐츠 제작사(CP), 에이전시와 같은 중간 회사와의 관계로 인해 이뤄지는 불공정 계약도 최근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내놓은 '지난해 웹툰 작가 실태조사'와 '웹툰산업 불공정 계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작가들을 대상으로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 경험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58.9%가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를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계약 관련 불공정 행위 경험 중 '2차적 저작권, 해외 판권 등 제작사 및 플랫폼에게 유리한 일방적 계약'(40.8%)이 가장 많았습니다. 
 
웹툰시장 초창기 때엔 주로 작가와 플랫폼이 1대 1로 직접 계약을 맺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CP와 같은 중간자 역할의 회사와 계약을 맺는 방식이 보다 보편화됐는데요. 이 과정에서 계약 내용과 형태가 더욱 어렵고 복잡해졌습니다. CP 등 제작사 입장에선 계약 진행시 프로모션 권한을 쥐고 있는 플랫폼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에 독립적인 권한을 행사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또 플랫폼은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 삼아 계약구조의 정점에 올라 서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발생한 불공정계약 문제에 대해선 CP 등 제작사와 작가 간 문제라며 발을 빼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웹툰업계 한 관계자는 "작가에게 유리하게 계약을 해주는 좋은 CP사들도 있긴 하지만 최종적으로 플랫폼들이 이익을 가져가기 때문에 시장 가격 이상의 단가를 맞춰주기는 어렵다"면서 "CP사가 작가들에게 2차적 저작권을 받아낼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최종적으로 이익을 가져가는 플랫폼이 2차 저작권을 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플랫폼은 작가와 직계약을 하지 않기에 불공정계약 논란에서는 책임소지에서 자유로워진다"고 말했습니다. 
 
플랫폼들이 2차적 저작권을 활용하는 우선 협상권을 요구하는 일은 이제 관행처럼 이뤄지는 분위기입니다. 이 관계자는 "제작사 입장에서는 사실상 플랫폼의 우선협상권 요구를 거절할 방도는 없다"면서 "최선의 방어라면 플랫폼이 투자를 해 주거나, 아니면 시장 최고의 조건으로 2차 창작 기회를 마련하는 경우에만 플랫폼이 우선 협상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도록 주장하는 정도"라고 말했습니다.
 
이선율 기자 melod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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