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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해영 감독 “‘유령’ 잡는 얘기 아니에요”
“제목 ‘유령’, 기억되지 못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명확한 언급 담았다”
“그 시대 아픔과 비극, 영화에서 만큼은 찬란함으로 마무리 했으면”
2023-01-25 07:00:36 2023-01-25 07:00:36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일단 독전을 만든 이해영 감독 차기작이란 타이틀만으로도 유령은 기대를 해봐도 좋을 듯합니다. 이해영 감독은 충무로에서 유명한 작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연출 데뷔작 천하장사 마돈나부터 페스티벌’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그리고 그의 이름을 진정으로 널리 알린 독전까지. 장르를 넘나들고 표현의 한계를 무너트리는 힘으로서 본인의 존재감을 국내 영화계에 각인시켜 왔습니다. 그런 그가 주목한 신작이 바로 유령입니다. 중국 소설 풍성을 원작으로 한 유령은 앞서 중국에서도 한 차례 영화화가 된 작품입니다. 국내에 개봉한 유령은 중국 작품의 리메이크가 아닌 원작 소설의 판권을 구입해 새롭게 각색해 만든 오리지널입니다. 그래서 더 주목해 볼만한 존재감이 뚜렷합니다. 일단 이해영 감독 연출작입니다. 그의 골수 마니아 팬들에겐 무조건 봐야만하는 이유가 충분합니다. 그리고 혹시 원작을 본 관객들에게 유령은 반드시 봐야만 하는 이유를 전합니다. 일단 소설과 결말이 다릅니다. 중국판 유령과도 전혀 다릅니다. 이해영 감독은 이 다른 결말에 대한 해석만으로도 유령은 원작이 존재하지만 분명 다른 개념의 오리지널이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해영 감독의 이런 의견에 부인하기 보단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해영 감독. 사진=CJ ENM
 
우선 제목부터 질문했습니다. 원작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풍성입니다. 바람의 소리란 뜻입니다. 그런데 영화로 변환되면서 국내에선 유령이란 제목이 됐습니다. 영화를 보면 실체가 없는 스파이에 대한 의미를 뜻하는 유령일 수도 있고, 반대로 유령처럼 실체가 없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그 시절의 시선과 지금의 기억을 가리키는 말 같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 속 제목인 유령의 정확한 뜻을 알고 넘어가야 할 듯했습니다.
 
우선 원작과 달리 서사의 흐름이 많이 바뀌어서 원작 제목의 의미를 살릴 수가 없었어요. 전 개인적으로 제목에 대해선 관대한 편이에요(웃음). 크게 고민하지는 않는 스타일인데. 어느 순간 유령이란 단어가 떠올랐던 것 같아요. 직관적인 단어라서 나쁘지 않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극중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다란 대사도 나오는데, 그에 부합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기억되지 못한 독립운동가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언급도 필요했기에 제 나름의 속내가 움직인 듯한 것도 지금 생각해 보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워낙 장르적 스타일에서 자신만의 색채가 강한 연출자로 유명한 이해영 감독입니다. 전형적 장르 파괴를 넘어서 자신만의 색깔로 장르를 구축해 버리는 능력은 타고 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유령역시 그랬습니다. 일단 유령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완성된 유령에서 일제 강점기란 배경을 고스란히 들어낸다고 해도 영화 전체 서사의 흐름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영화 '유령' 현장의 이해영 감독. 사진=CJ ENM
 
그런 생각은 안해봤는데 다시 한 번 저도 보겠습니다(웃음). 지금 제 생각을 말씀 드린다면, 어떤 대의를 이루기 위해 목숨마저 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얘기인데. 그걸 제대로 풀어내려면 어떤 배경이 필요할까 고민할 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을 빼고 가능할까 싶어요. 그런 배경을 역사 속에서 찾으려 했고 그 힌트와 뿌리로 흑색공포단 얘기가 눈에 들어왔죠. 흑색공포단을 기본 베이스로 지금의 얼개가 만들어졌는데 관객 분들이 어떻게 봐 주실지 궁금해요.”
 
인터뷰 내내 유령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이해영 감독과 함께 고스란히 기사로 옮길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함께 웃었습니다. 이유는 유령자체가 큰 반전이 포함돼 있고, 그 반전이 영화 중반이 조금 지난 뒤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반전을 기준으로 영화의 장르적 성격까지 완전히 바뀌어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많은 얘기를 했음에도 다시 말하면 많은 것을 숨기면서 대화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펼쳐졌습니다. 꼭 영화 속 유령으로 의심되는 5인방처럼 말이죠.
 
“(웃음)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까요. 원작의 각색 기준을 말씀 드려야 이해가 쉬울 듯하실 것 같네요. 일단 원작 소설은 국내에 출간이 된 적이 없어요. 그래서 번역된 파일로 읽었는데, 그 정보를 바탕으로 기본적 뼈대만 남기도 완전히 재구성을 했죠. 원작 자체가 밀실 추리극이고, 마지막에 유령이 누군지 밝혀지면서 끝이 나요. 근데 그게 저한테는 매력적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연출을 거절하려 했죠. 그 시기에 문득 유령이 뭘 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쪽으로 포커스를 맞춰서 풀어갔어요. 의외로 잘 풀려 나갔죠.”
 
영화 '유령' 스틸. 사진=CJ ENM
 
유령을 보면 중요한 장소로 영화관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영화관에는 특이한 영화가 한 편 상영 중입니다. 자신이 영화를 좀 잘아는 영화광이거나 혹은 50대 이상이라면 눈에 확 들어오는 영화입니다. 해당 영화 여주인공은 여성 스파이 영화 대명사이자 주인공으로 유명했던 마를레네 디트리히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주연을 맡았던 상하이 익스프레스가 상영 중이었죠. 뭔가 의도를 한 것 같았습니다.
 
“’상하이 익스프레스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 제가 생각한 유령의 박차경 이미지가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어요. ‘상하이 익스프레스가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얘기를 그리는 데, 그 영화의 포스터 하나로 여러 설명을 할 필요 없이 관객 들에게 무슨 느낌을 던지고 싶었죠. 판권 사용료로 돈 좀 들었습니다(웃음). 그리고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1924년 작품인 장화홍련전도 나와요. ‘유령의 전체적인 주제 그리고 결말과 잘 부합되는 작품이란 생각에 차용했죠.”
 
유령을 가만 보면 젠더, 즉 성별에 대한 의문도 생깁니다. 주요 캐릭터들이 여성입니다. 박차경 유리코 난영 등. 반면 남성 캐릭터들은 서사의 주변으로 배치했습니다. 이해영 감독의 어떤 의도가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일단 그는 전작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도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독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시피 두 남자의 중심축이 굳건한 범죄 드라마였습니다. ‘유령은 세 명의 여성이 중심에 서 있습니다.
 
영화 '유령' 현장의 이해영 감독. 사진=CJ ENM
 
제가 제일 거북스러운 게 남녀 서사로 유령이 분리돼 읽히는 것이에요. ‘유령에선 남녀 캐릭터 모두 너무 중요해요. 우린 습관적으로 남녀 캐릭터가 공존할 때 위계를 잡아 버리잖아요. 그런 위계가 유령에서 만큼은 잡히질 않길 바랐어요. 혹시 영화를 보신 분이 있으시다면 한 번만 더 봐주세요. 그땐 유령에서 성별을 지우고 봐주세요. 그럼 자신하는 데 분명 다른 게 보이실 겁니다.”
 
유령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공간에 대한 미학일 것입니다. 우선 주요 인물 5명이 갇힌 절벽 위 호화로운 호텔, 일제 강점기 스타일이라고 하기엔 유럽식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호텔 내부의 호화로움도 눈길을 사로 잡는데 한 몫을 합니다. 호텔뿐 만이 아닙니다. 극중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황금정이란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상을 투여했다고 하지만 묘한 이질감이 넘쳤습니다.
 
어떤 격차라고 할까요. 그런 걸 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 좀 영화적인 공간이 필요했어요. 드러나는 공간은 최대한 화려하게 보이고 싶었죠. 호텔은 정말 화려하고 서구적인 느낌이 강한데 반대로 사람을 짓누르는 느낌이 강하게 있어야 했어요. 위치로 절벽 위에 있어서 탈출도 불가능하죠. 그런 이질감은 지하실의 폭력적인 공간을 대변하는 느낌도 나타내죠. 사실 마지막에 다 파괴 되잖아요. 그런 걸 생각하면 무조건 화려해야 했어요(웃음). 파괴의 카타르시스도 느끼셔야 하니.”
 
이해영 감독. 사진=CJ ENM
 
유령을 본다면 아마도 결말에 대한 얘기도 상당히 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어 낼 것 같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유령의 스타일리시함과 멋들어짐 나아가 박력은 아마도 많은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최고의 선택이라고 칭찬을 받아 마땅한 마무리로 등장합니다. 이해영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꼭 이런 점만은 느껴 주길 바랐다고 합니다.
 
제가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독립운동에 대한 자료들을 조사할 때 가장 절 사로 잡은 감정은 찬란함이었어요. 독립운동가들의 목숨을 건 희생과 투쟁이 모두 지금 우리가 느끼는 찬란함으로 남아 있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 감정을 스크린에 그대로 담고 싶었어요. 그 시대가 담고 있던 아픔과 비극을 그나마 영화에서 만큼은 찬란함으로 승화시켜주고 싶었죠.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찬란한 승리의 순간으로 유령을 마무리 하고 싶었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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