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평화의 섬 제주에서 바티칸까지-38)황홀한 금빛
2023-01-25 06:00:00 2023-01-25 06:00:00
한 해가 저물고 다시 새로운 날들이 뚜벅뚜벅 다가옵니다. 우리 모두가 꾸었던 꿈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 꿈에는 과연 다가가고 있는가요?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는 군산복합체와 다국적 기업이 기획하는 비극적인 결말이 뻔한 또 다른 전쟁이 기운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이 끝나면 대만해협이 될지 한반도가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의 꿈조차 꾸지 못하고 걸어가야 하는 길이 더 서글픈 것입니다. 해가 저물고 새로운 해가 떠오르는 이즈음, 우리는 어떻게 꿈을 찾을까요?
 
꿈을 찾기 위해서는 미친 열정, 광기가 수반돼야만 하는 것이리라! 평화는 분명 길 위에 누워 있습니다. 평화를 실현하는 일은 길 위를 한 걸음씩 걸어가면서 길 위에 누워있는 평화를 하나씩 일으켜 세워 같이 어깨동무하며 걸어가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수만 수백만 수천만의 평화와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서방 세계의 정치인들은 독립적인 인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대기업, 로비스트, 군산복합체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돈 봉투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법조계, 언론계는 물론 학계까지 사회의 엘리트 계층에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옭아매었습니다. 즉 경제가 사실은 정치, 군사를 포함한 국가 전반의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 역시 국가와 세계를 지배를 지배하려는 다국적 기업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습니다.
 
평화를 찾아가는 여정과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가치관이 한참 형성되던 시절에 ‘너는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살고 싶니? 뭘 하고 싶니?’라는 질문을 던지는 스승을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 그 아쉬움 때문에 내가 초로에 뇌경색으로 쓰러졌던 몸을 이끌고도 거리를 방황하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죽을 때 까지 한 번도 사용할 일이 없어 보이는 수학공식을 암기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열등감을 느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산으로 들로 여행을 다녔으면 ‘황홀한 금빛’으로 빛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방글라데시에 와서 제일 만나고 싶었던 것은 ‘황홀한 금빛’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지 않지만 기원전부터 시작한 문화의 보고, 순수한 사람들과 그들이 만드는 행복 에너지, 그 황홀한 금빛 에너지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고속도로의 길 위에서는 혼잡과 무질서. 소음과 먼지와 안개 속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간혹 다가와서 손을 내미는 미소 속에서 볼 수 있을 뿐이다. 여행자들이 일부를 보고 마치 다 본 것처럼 혹평을 하면 방글라데시인은 억울할 것입니다.
 
그러다 순간 깨달음을 얻습니다. ‘삶’자체가 바로 ‘황홀한 금빛’입니다. 삶이란 결국 한줄기 금빛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먹는 기쁨보다 배고픔 해소의 욕구가 언제나 더 강력한 것임을 이해하는 날, 살아가는 기쁨보다 생존과 번식이 바로 ‘황홀한 금빛’ 임을 나는 방글라데시 길 위를 걸으면서 깨달았습니다.
 
그는 항상 벵골어로 시를 썼습니다. 1912년 영문시집 기탄잘리가 영국에서 출판 된지 7개월 만에  아시안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서구인들의 눈에 타고르는 시인이라기보다 분명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서구에 지혜와 여유 그리고 자족이라는 삶의 가지를 전파해줄 성자나 예언자로 비쳐졌었습니다. 타고르의 시는 당시 인도인들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인도의 표준어인 산스크리트어가 아닌 지방 사투리 정도인 뱅골어로 시를 썼기 때문입니다.
 
방글라데시의 국가는 타고르가 지은 ‘나의 금빛 방글라’이다. 가사가 아름다우니 살펴보죠!
 
나의 금빛 방글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영원한 당신의 하늘과 바람은 내 삶에서 피리를 붑니다.
오, 어머니, 나는 팔군달에 당신의 망고 숲에서 나는 향기는 나를 미치게 합니다.
나, 황홀함, 황홀함이여!
오, 어머니. 나는 오로그하욘 달에 당신의 풍성한 들판에서
꿀처럼 달콤한 웃음을 보았습니다.
금빛 방글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타고르는 영국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자격증만 얻으려는 비교육적 대학 제도에 큰 실망을 하고 학업을 중단합니다. 그는 나중에 산티니케탄에 작은 학교 비스바 바라티를 세우는데 수업은 항상 자연과 함께 이루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비스바 바라티 ‘세계의 둥지’라는 뜻입니다. 그는 처음 인간의 순수한 영혼과 인성을 개발하는 차원에서 아슈람을 설립했습니다. 독립 후에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두루 가르치는 종합 교육 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교실 벽에 갇힌 교육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자연의 섭리를 배우도록 안내하는 학교입니다. 획일적인 학습을 탈피하여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도록 이끌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 자신 고유의 본성과 재능을 스스로 발현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학교가 학문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학문적으로도 특출하다.
 
헤르만 헤세도 기존의 교육제도를 비판하면서 폭넓은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자아실현의 여행길을 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나는 거기다 여행을 통한 공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환갑잔치를 크게 열었던 때, 즉 평균수명이 60도 안 될 때는 경쟁에서 낙오되고 잠시 뒤처지면 재기의 기회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사회가 인정하는 루틴대로 살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지금은 중고등학교 때라든지 대학 때 휴교를 하고 여행을 떠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떠나서 보고 듣고 느끼고 나서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하는지 찾은 다음에 공부해도 늦지 않습니다. 늦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지름길입니다. 다른 길로 잘못 빠져서 헤매느니 말입니다.
 
타고르의 교육철학은 이 한 마디로 명확해집니다. “무엇을 배웠는지 기억하지 않고 배운 것만 기억한다” 모든 사람은 천재이지만 모든 학생이 한꺼번에 성장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어서 “내 마음 속의 학교는 하나의 행복한 가정인 동시에 신성한 사원이어야 한다. 가르침은 경건한 삶의 일부이기에 인간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주어야 한다.”라고 했죠.
 
왜, 언제부터 교육이 남과 경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과연 경쟁 없는 교육이 가능한지 묻는 사람이 있다면 산티니케탄의 비스바 바라티를 통해서 타고르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학교는 잘하는 것을 가르치기보다 함께 잘 사는 법을 터득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강명구 평화마라토너가 평화달리가 103일째인 지난 11일 방글라데시의 청년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강명구 평화마라토너)
 
강명구 평화마라토너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