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넷플릭스 SF영화 ‘정이’는 ‘이해’란 시선으로 어디를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 들이느냐, 그 지점이 이 작품을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드는 핵심 포인트가 될 듯 합니다. 일단 ‘정이’는 SF장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파고 들면 SF 하위 장르로 불리는 ‘사이버펑크’ 계열로 해석하면 좀 더 적절한 포인트가 눈에 훨씬 많이 들어올 것입니다. 연출을 맡은 연상호 감독은 ‘정이’를 단편 소설 형식으로 처음 구상했답니다. 물론 처음에는 영상화에 대한 계획도 크게 없었답니다. 하지만 고 강수연이란 배우의 클래식한 연기톤과 존재감 그리고 모성을 기반으로 한 인간성에 대한 다른 해석을 접목시키는 수정 작업을 거치면서 필연적으로 SF장르에서 파생된 ‘사이버펑크’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합니다. 일단 ‘사이버펑크’, 즉 기술에 지배당한 억압적 사회 분위기 속 인간성 상실이 기반이 된 일종의 디스토피아 세계관. 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걸작으로 불리는 ‘공각기동대’가 있습니다. ‘정이’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에 대한 질문, 나아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근원적 궁금증 그리고 그 의문을 해석하는 방식과 그 방식이 만들어 내는 나 그리고 나와 다른 상대와의 관계 등 상당히 복잡하고 중의적 질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질문 안에서 ‘정이’는 많은 해답을 관객들에게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 ‘정이’는 답을 내리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을 나열하면서 관객 각자가 해답을 찾아가게 보이지 않는 길을 안내하는 일종의 길라잡이 같은 존재에 가깝습니다. 쉽지 않은 주제를 가장 쉬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 그게 바로 연상호 감독의 의도일 듯합니다.

‘정이’는 기본적으로 디스토피아에 대한 얘기입니다. 황폐화된 먼 미래의 지구, 인간이 더 이상 거주할 수 없게 된 지구. 인간들은 우주 밖 공간에 초대형 거주 시설 ‘쉘터’를 만들어 띄웁니다. 수십 개가 넘는 쉘터가 건설돼 지구 밖 궤도에 안착합니다. 하지만 이후 몇 개의 쉘터가 연합해 자치공화국을 선포, 나머지 쉘터를 공격합니다. 공격 받은 쉘터들 역시 연합해 이에 대적하고 그 중심에 용병 집단이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인물이 바로 윤정이(김현주)입니다. 그는 평범한 엄마였지만 가난과 아픈 딸 치료비를 위해 전쟁에 뛰어든 강한 모성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전투에서 승승장구하던 윤정이는 일약 전쟁 영웅이자 특급 스타로 쉘터 연합국 주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주요 작전 수행 도중 목숨을 잃게 됩니다. 연합국 고위층은 죽은 윤정이의 뇌를 복제해 가장 완벽한 전투 AI용병 생산 계획에 돌입합니다.
영화 '정이' 스틸. 사진=넷플릭스
일단 ‘정이’가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답습’인가 아닌가에 대한 의문을 짚고 넘어가는 게 첫 번째일 듯합니다. 답습이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정이’의 서사를 이루는 각각의 플롯과 배치에 따른 설정 자체가 결코 새로울 것이 없게 됩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사이버펑크 ‘룩’(Look) 개념으로 바라본다면 관점의 전복이 분명 발생됩니다. 설정 자체가 아닌 기본적 시각화에 따른 ‘룩’으로서 ‘정이’가 추구하는 방식이 곧 장르가 됩니다. ‘정이’를 보면서 느껴지는 다양한 할리우드 영화 레퍼런스 자체가 결과적으로 ‘룩’ 개념에서 설명하자면 올곧은 방식의 장르 전환을 따라간 것이라 봐야 합니다.
영화 '정이' 스틸. 사진=넷플릭스
좀 더 들어가면 ‘정이’는 일종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설명을 사이버펑크 방식을 통해 설명하려 노력한 표현이라 봐도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아이덴티티, 즉 ‘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할 때 내면을 담아내는 방식으로서 영화적 표현 한계성을 넘어서려는 연출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른바 정형화되지 않은 부정확한 비주얼 나열이 이에 해당할 듯합니다. ‘정이’는 이런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아이덴티티를 근거로 접근합니다. 서현(고 강수연)이 로봇 ‘정이’를 대하는 방식 나아가 그를 통해 죽은 엄마에 대한 모성 그리고 모성을 통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려 드는 서사의 전개. 그 중심에 ‘정이’ 자체가 담으려 노력했던 장르적 특색과 그것을 넘어서는 주제 의식 및 표현 전달 방식을 새롭게 치환하려는 노력 등. 때문에 극중 등장하는 관계 설정 가운데 고 강수연이 연기한 ‘서현’ 캐릭터 자체가 ‘정이’의 주제를 함축하는 상징처럼 존재합니다. 서현을 중심으로 서사 흐름을 치환 시키면 ‘정이’의 보이지 않던 내면의 정체성까지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영화 '정이' 스틸. 사진=넷플릭스
‘정이’의 진짜 핵심은 극 후반 이뤄지는 서현과 로봇 정이의 교감입니다. 연상호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앞서 끊임없이 언급하며 붙잡고 온 관계가 만들어 내는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이 아닌 로봇을 통해 서현은 가장 인간다움의 실체에 더 접근하려 노력합니다. 그 안에서 ‘정이’는 올바르게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그것을 짚어냅니다. 역설적으로 그 순간 진짜 인간다움이 가장 인간답지 못한 모습으로서 모든 것으로부터 소멸돼 가는 과정을 중첩시켜 보여줍니다. 그래서 가장 무겁지만 또 가장 근원적이고 근본적 질문이 ‘정이’ 마지막 장면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도대체 그게 무엇이고 그 기준은 누가 정한 것 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영화 '정이' 스틸. 사진=넷플릭스
‘정이’는 이처럼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위해 사이버펑크란 장르적 표현 방식을 끌어와 설명한 것입니다. 태생적으로 가장 적절한 방식을 찾아 대입시킨 것이죠. 답습이란 차원으로 ‘정이’를 바라보고 해석한다면 연상호 감독이 던지는 질문의 중첩 속에 갇힌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연상호 감독 질문이 ‘정이’의 존재감을 가치 있게 만드는 핵심으로서 의미가 있다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정이’란 작품을 위해 연상호 감독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 재미와 흥미만으로 소화시키기엔 결코 가볍지 만은 않습니다.
영화 '정이' 스틸. 사진=넷플릭스
최소한 국내에서 사이버펑크 계열 표현 방식을 끌어온 이 작품의 ‘룩’을 보는 것만으로도 본질적 즐거움을 끌어 안고 가는 것 자체의 재미는 분명 증명 받아야 옳습니다. 1월 20일 넷플릭스 공개.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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