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어떻게 해석 하고, 또 어디에 의미를 두느냐에 따라 ‘유령’의 존재감은 분명 달리 보일 듯합니다. '유령'은 2007년 출간된 중국 작가 마이지아의 소설 '풍성'이 원작입니다. 중국에선 영화와 드라마로도 이미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원작이 있단 것 자체가 이 영화의 해석을 돕는 기능을 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유령’은 연출을 맡은 이해영 감독 색채로 해석이 되는 것에 더 방점을 둔 것처럼 기능을 합니다. 설경구 이하늬 박해수 박소담 서현우 김동희 등 라인업 자체가 워낙 화려합니다. 하지만 이 배우들 모두가 의외로 극 안에서 기능적으로 움직이는 데 더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듯합니다. 또 실제로 그렇게 움직입니다. 결과적으로 ‘유령’은 상당히 세밀하고 촘촘하게 구축된 일종의 작전 설계도 안에서 움직이는 갇힌 자들의 게임처럼 다가옵니다. 쉽게 표현하면 바둑판 또는 장기판 위 돌들의 전투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꼭 그렇게 볼 수만도 없습니다. 흑과 백, 홍과 녹의 싸움 같은 이 게임은 여러 함정이 존재합니다. ‘그렇게 보여야’ 하는 무엇이 있고, ‘그렇게 보이면 안되는’ 또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게 정말로 보이는 그대로인지, 아니면 숨겨둔 진짜 얼굴이 있는지는 이 영화 결말까지 달려가보고 나면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유령’이란 제목이 꽤 와 닿을 수 있단 상상을 해봅니다. 잡고 싶지만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허상 같은 의심과 확신의 경계 속에서 이들 모두는 속고 속이고 잡고 잡히며 죽고 죽이는 굴레에 갇혀 버리게 됐습니다. 사실 의외로 간단하고 간결한 게임인데 말이죠. 그래서 ‘유령’을 보고 나면 분명 느낄 수 있는 한 문장이 떠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이 게임 굉장히 간결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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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은 실제 역사에 존재한 남화한인청년연맹, 즉 ‘흑색공포단’으로 불린 조직에 대한 호기심에 출발합니다. 중국 상하이를 근거로 실제 활동했던 이 조직이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도 있었다면’이란 상상이 배경의 한 조각입니다. 극중 시간적 배경은 1933년 일제 강점기 말 조선 경성. 조선총독부에 흑색단이 심어 놓은 고정 스파이 유령이 존재. 유령을 중심으로 한 흑색단은 신임 조선총독 암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합니다. 이 실패를 근거로 일본은 조선에서 활약 중인 독립군 토벌 및 자신들이 파악한 고정 스파이 유령 체포 작전에 나섭니다. 일단 이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인물은 신임 조선총독 경호대장 카이토(박해수).
영화 '유령' 스틸. 사진=CJ ENM
카이토는 비밀리에 내사를 진행, 조선총독부 내부에 존재한다 확신하는 유령 후보군 다섯 명을 압축 체포합니다. 그 인물들은 엄마가 조선인이란 이유만으로 좌천된 일본 명문 가문 후손 무라야마 준지(설경구), 총독부 근무 암호 기록관 박차경(이하늬), 조선 정무 총감 개인 비서 겸 애첩 유리코(박소담), 총독부 암호 해독 담당관 천계장(서현우) 그리고 총독부 통신과 직원 백호(김동희). 이들 다섯 명은 카이토에게 체포된 뒤 바닷가 벼랑 끝에 자리한 호화로운 호텔에 감금됩니다.
영화 '유령' 스틸. 사진=CJ ENM
카이토는 이들 다섯 명 가운데 무조건 유령이 있다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들을 압박해 자신이 유령이라 자수 하거나 누가 유령인지 고발하게 만들 생각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딱 하루. 그들이 갇힌 호텔 안은 전부 곳곳에 도청 장치가 가득합니다. 카이토는 자신이 이끄는 경호 부대를 통해 이들 다섯 명 용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합니다. 카이토의 감시 속에서 누군가는 빠져 나갈 궁리를, 또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와의 연대를 꿈꿉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을 포함해 의심을 받는 다섯 명 가운데에서 진짜 유령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켭니다. 카이토가 원한 게 바로 이런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럼 여기서 의문. 진짜 이들 안에 유령이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혹시 카이토가 유령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은 아닐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이 모든 게 유령이 설계한 거대한 덫의 일부 일까요.
영화 '유령' 스틸. 사진=CJ ENM
‘유령’은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일제 강점기가 배경입니다. 하지만 연출을 맡은 이해영 감독은 ‘유령’을 장르적으로 꾸미고 싶었던 듯합니다. 완성된 결과물에서 ‘일제 강점기’란 배경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해도 서사 전개에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건 바꿔 말하면 이 얘기 자체 모티브이면서 시작이 되는 ‘흑색공포단’ 얘기가 실질적으로 기능적으로만 소비 됐단 뜻입니다. 이건 이 영화의 ‘흠’이라기 보단 다른 포인트를 바라봐야 한단 얘기입니다.
영화 '유령' 스틸. 사진=CJ ENM
‘유령’의 첫 번째 포인트는 ‘관계’일 듯합니다. 극중 호텔에 갇힌 용의자 다섯 명 그리고 그들을 심문하는 카이토. 이들 여섯 명은 의외로 촘촘한 ‘보이지 않는’ 서사로 연결된 관계들입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서사는 극 자체의 긴장감을 끌어 올리는 동력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사실 ‘누가 유령인가’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게 아닙니다. ‘유령’ 정체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초반 드러납니다. 그럼 이 영화가 결말까지 달려갈 수 있게 선택할 수 있는 동력은 ‘목적’입니다. 이 영화 서사의 목적은 총독 암살. 결과적으로 ‘유령’은 누가 유령인지를 알아 맞추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그건 호텔 밖을 나간 뒤 전개되는 과정을 위한 속임수에 불과했습니다 그 이후의 선택, 그리고 그 선택을 선택할 수 밖에 없던 시대적 배경 그 배경 안에서 숨쉬던 인물들의 내면. 그 내면이 형성될 수 밖에 없던 시대 정신의 추락 등. 호텔이란 폐쇄 공간에서 벌어지는 치밀한 두뇌 게임과 그 게임을 만들어 버린 시대의 잔혹함이 양립된 당시의 강제성 등이 복합적으로 버무려진 결과물 같았습니다.
영화 '유령' 스틸. 사진=CJ ENM
그래서 ‘유령’은 사실 시선, 즉 해석을 어디에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영화 초반 이후부터 중반 이후까지 벌어지는 호텔 안 폐쇄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각각의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 충돌하는 일종의 심리 액션에 버금갈 정도였습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이 예상 밖으로 클래식하게 구성 됐단 점입니다. 1970~80년대 추리소설 세계관을 엿보는 듯 옛 맛이 가득했습니다.
영화 '유령' 스틸. 사진=CJ ENM
하지만 호텔을 벗어난 뒤부턴 ‘유령’의 호흡은 빠르게 변주됩니다. 클래식한 밀실 추리극이 대중성을 보장하는 액션 블록버스터로 탈바꿈합니다. 호텔을 경계로 안과 밖의 톤 앤 매너가 너무도 극단적으로 나뉩니다. 이 경계를 각각의 인물들이 느끼고 또 안고 있는 보이지 않는 태생적 콤플렉스에 대한 원인을 끌어와 해석한다면 의외로 쉽게 공감이 됩니다. 극중 등장하는 요제프 폰 슈테른베르크 감독 연출 마를레네 디트리히 주연의 1932년작 ‘상하이 익스프레스’도 그에 대한 힌트가 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고립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이 영화와 ‘유령’ 전체 플롯이 괴이할 정도로 맞닿아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합니다. 지독한 영화광으로 알려진 이해영 감독의 세밀한 설정이라면 일면 수긍이 되는 지점 입니다.
영화 '유령' 스틸. 사진=CJ ENM
‘유령’은 밀실 추리극 스타일에 고전 클래식 감성을 끌어온 ‘버디’(앞에 어떤 단어를 붙이고 싶다. 그 단어가 이 영화의 가장 핵심 스포일러다) 무비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걸 하나로 융합시킨 이해영 감독의 스타일을 관객이 어떻게 받아 들일 지에 대한 호기심이 되겠습니다. 이해영 감독의 스타일이 대중성을 넘어선다면 ‘유령’은 분명 전례가 없는 스타일의 장르 영화로 주목 받아도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만큼은 분명 확신할 수 있습니다. 개봉은 오는 18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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