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건산연 원장이 뉴스토마토 인터뷰에서 부동산 시장에 대한 설명하고 있다.(사진=건설산업연구원)
[뉴스토마토 백아란 기자] "지금과 같은 금리인상이 지속되고, 분양시장의 침체가 풀리지 않는다면 중요한 위기의 발생 가능성에 대해 부인하기 어렵다. 지금의 위기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정책수단은 바로 규제 완화를 통한 분양시장의 연착륙 유도다."
이충재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은 최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를 통해 부동산 시장과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잇단 금리인상과 집값 하락전환, 인플레이션 우려로 유례없는 거래절벽이 발생하면서 주택 거래 환경이 악화한 만큼, 시장 안정화 측면에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7월 건설산업 싱크탱크인 건설산업연구원 수장에 오른 이 원장은 1980년 국토교통부 전신인 건설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후 40년 넘게 건설교통부 부동산평가팀장, 국토해양부 공공주택건설추진단장, 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을 지낸 건설·주택·도시계획 분야 전문가다.
건설·부동산 시장, 녹록지 않아…속도감 있는 대응 필요
그는 최근의 건설·부동산 시장에 대해 레고랜드발 자산 유동화기업어음(ABCP) 채무불이행 사태와 금리인상·원자재 가격상승·미분양 확대 등으로 하방압력이 커졌다고 평가하면서도, 안정적인 공급 여건의 조성과 시장 형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주택은 기본권의 하나인 주거권이 실현되는 공간이라는 의미 외에도, 투자자산 그리고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라며 "주택가격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주택가격을 높여야 한다'거나 '낮춰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맞지 않다"면서 "정부가 취해야 할 태도는 향후 시장에서 발생하는 주택수요에 맞춰 안정적으로 공급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줌으로써 시장 내에서 가격이 안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배제 △임대차 시장 안정화 방안 △세제 정상화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등의 정책에 대해선 "지금의 위기상황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정책수단은 바로 규제 완화를 통한 분양시장의 연착륙 유도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정부의 정책방향은 바람직하다"면서도 "정책의 실행속도와 수요자 측면에서의 실제 체감 측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지금과 같은 금리인상이 지속되고 분양시장의 침체가 풀리지 않는다면 건설·부동산시장 전반의 위기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시장을 조기에 안정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원 규모를 보다 확대하고 지원 속도를 높이는 등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미다.
시장 안정 위한 정책적 뒷받침 필요…지나친 공포 경계해야
이 원장은 "정부가 발표한 '50조+α 시장안정대책'과 그 이후에 발표된 5대 금융지주의 95조원 자금 지원, 총 2조8000억원 규모의 PF-ABCP(프로젝트파이낸싱-자산유동화기업어음) 매입확대 조치와 같은 유동성 공급대책에도 불구하고 건설 현장에서는 상황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서 "분양시장이 빠르게 냉각되고 있는 것도 전반적으로 개발사업의 자금조달여건을 크게 악화시키면서 개발사업의 정상적인 추진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라고 판단했다.
또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건설업계 전반에 커다란 어려움을 초래하고 있고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감축 역시 건설업계 차원에서는 신규사업 물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어 건설업계의 상황은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다만 공포심리가 지나치게 커지는 상황에 대해선 우려를 표했다.
이 원장은 "(중국 부동산 업체 45%가 부실하다는 IMF 경고와 달리) 국내 건설사는 과거 두차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리스크 관리 역량이 어느 정도 높아진 것이 사실"이라며 "지난 수년간 부동산금융시장 내 참여자가 다원화되고 금융조달방식이 고도화되면서 증권사, 부동신산탁사 등과 건설사업의 리스크가 분산되고 있는 측면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최근에 언급되는 어려움이 마치 모든 건설사들이 겪고 있는 것처럼 확대해석하는 것은 오히려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들어 건실한 건설사들의 자금조달까지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라고 부연했다.
'미국 금리인상 속도' 관건…유동성·지방건설사 향배 '주목'
향후 위기 극복과정에서 부동산 시장의 턴어라운드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나 눈여겨봐야 할 지표로는 '미국 금리인상 속도 변화'를 꼽았다.
이 원장은 "최근 금리가 너무 빠르게 오르면서 자금 수요주체인 (개발사업 시행주체를 포함한) 기업 입장에서 자금 조달수단의 만기가 짧아지고 금리도 높아지는 문제가 발생해 왔는데, 이는 (기업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해 왔다"면서 "최근 미국 물가상승률이 다소 둔화되면서 금리인상 속도도 다소 조정될 기미가 보이고 있고, 만약 금리 인상속도가 진정된다면 부동산PF시장에서의 위기감 역시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 정부는 부동산시장 경착륙을 막기 위해 단계적으로 부동산규제 완화 조치들을 취해오고 있다"라며 "이러한 조치들이 얼마나 빨리 시장반응으로 이어질지는 예측이 쉽지 않지만, 만약 부동산분양시장에서 온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그로 인해 분양률이 다시 높아지는 흐름을 보이게 된다면 위기 상황에 대한 턴어라운드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부동산 PF로 촉발된 부동산 유동성 위기와 지역건설업계 어려움 등에 대한 대응이 시급한 과제"라며 "국토의 균형발전과 국민의 전체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실용을 중시하는 방향에서 시장과 정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지식 허브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아란 기자 alive020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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