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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땜질식 복지대책' 비극 불러…힘 받는 안심소득
서대문·인천 연이어 복지 사각지대 비극 발생
복지당국 대책 발표 무색…땜질식 대책 한계
전문가들 "기초생활보장 대신 소득보전 대안 고민할 때"
2022-11-29 17:38:51 2022-11-29 17:39:56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또다시 복지 사각지대에서 비극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되풀이되는 '땜질식 대책' 대신 안심소득을 포함한 소득보전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9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모녀가 숨진 채 집주인에게 발견됐다. 이는 정부가 '수원 세 모녀 사건' 재발을 막겠다며 복지 사각지대 개선책을 발표한 다음날인 25일 세상에 알려졌다.
 
서대문구 자택에서 숨진 60대 어머니와 30대 딸은 작년 11월부터 해당 주택에서 살았으나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복지 혜택을 받지 못했다. 이미 10개월 간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 500만원도 공제됐으며, 전기료 등 각종 공과금도 연체된 상태였다. 
 
이들의 주소지는 서울 광진구로, 지난 8월 구에서 복지 사각지대 조사를 위해 주소지를 방문했으나 이미 네 달 전부터 다른 이가 거주 중이었다.
 
지난 25일엔 인천 서구의 한 빌라에서 일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10대 남학생 2명은 경찰과 소방당국의 발견 당시 이미 숨졌으며, 부모는 현재 뇌사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40대인 부모는 별다른 직업이 없이 빚만 갖고 있었지만, 생활고 등 정부가 모니터링 중인 34종의 위험 신호 중 단 하나도 나타나지 않아 기초생활수급자나 위기 의심가구로 지정되지 않았다.
 
올 4월 창신동 모자 사건, 8월 수원 세 모녀 사건 등 올해만 해도 정부의 복지제도를 비켜간 안타까운 비극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24일 수집정보를 34종에서 44종으로 늘리고 위기가구 발굴모형을 확대하는 등 사각지대 개선책을 발표했으나 여전히 현장에서는 재발을 막기 어렵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전문가들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수집정보를 늘리더라도 근본적인 복지인력의 확충이 뒤따르지 않는 한 또다시 새로운 사각지대가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승연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스템을 고도화했더라도 현장을 가야 하는데 인력 여건상 다 갈 수 없는 수준이고, 지자체 재정상 늘리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정부는 민간 네트워크를 강조하지만 가스검침원·집주인·집배원이 발견을 해도 결국 공공이 움직여야 하는데 민간만으론 해결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근 드러난 복지 사각지대 사건들 대부분이 기존 수급자나 위기가구에 해당하지 않고, 채무가 갑자기 발생했거나 채권자를 피해 전입신고를 하지 않는 등 새로운 취약계층이 등장했다고 진단했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권에서 연체 독촉만 할 게 아니라 지자체나 신용회복 관련 기관과 연계해서 채무에 대한 상담이 이뤄졌다면 최악의 상황까지는 안 갔을 수 있다”며 “고위험군에 처해 숨기 이전에 일정액 이상 채무 연체가 발생하거나 신용도 하락 시 도와줄 수 있다면 예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 코로나 이후 경향을 보면 원래 빈곤가구가 아님에도 가족 내 부채나 돌봄 문제로 인해 급속도로 안 좋아지는 ‘한계가구’가 많아지고 있다”며 “전통적인 취약계층 외에도 보통의 경제상태에서 무너지는 계층들은 발굴도 안 되고 극단적 선택 확률도 상당히 높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로 대표되는 기존 복지제도를 매번 땜질식 처방하는 대신 보다 선제적인 소득보전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중위소득 85%까지 저소득일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서울시 안심소득 같은 소득보전제도를 통해 위기에 처하기 이전에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대안을 검토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발굴을 해도 지원할 수 있는 게 긴급지원 몇 개월인데 그걸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서울 안심소득이 기초생활보장과 달리 지원이 까다롭지 않고 생계급여 30%보다 높은 85%까지 지원해 이들이 안심소득을 받는다면 생활고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하는 단계까지는 안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은 “코로나 이후 대안적 소득보장체계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데 단순히 보편·선별이냐 또는 급여 수준이 적절하냐 문제뿐만 아니라,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을 대립하는 것으로 보지 말고 두 가지를 조합해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보다 적합한 형태를 고민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민중행동 조합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정부의 취약계층 생존보장 및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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