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주재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가 비판 된서리를 맞았다. 치솟는 물가와 금리, 환율로 민생의 어려움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촉발한 채권시장의 요동까지 더해졌음에도, 농담까지 주고받는 등 비장함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80분간 전국에 생중계되며 정부의 일하는 모습을 보이려 애썼지만, 내용 없이 '쇼'에 그쳤다는 비판도 더해졌다.
비상경제민생회의는 통상 윤 대통령의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로 전환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회의 끝까지 공개됐다. 민생을 챙기며 일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함이었으나 결과적으로 안일한 인식과 무능함만 드러냈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회의 종료 후 김은혜 홍보수석과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 등이 회의장을 배경으로 웃으면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까지 생중계 카메라에 포착돼 빈축을 샀다.
내용 역시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평가다. 국민들이 바라는 물가와 금리 안정 대신 부동산 방어 목적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50% 완화만 부각됐다. 민주당 내 경제통인 이용우 의원은 28일 한 라디오에서 "제목이 '비상경제민생회의'인데 비상이라고 하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고, 민생을 얘기하지 않은 회의였다"며 "국민들이 듣고 싶고, 아쉽고 가려운 데를 처방해주는 회의가 아니고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한 거다. 그런 회의는 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 의원은 LTV 50% 완화에 대해서도 계속된 금리 인상을 지적하며 "지금 시점에 맞지 않는 다른 동네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 농수산물 도매시장 화재현장을 찾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비상도, 경제도, 민생도 없었다"며 "리스크를 해소해야 할 정부가 리스크의 중심이 돼서는 결코 안 된다"고 질타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어제 회의는 농담과 인증샷 놀이가 난무한 맹탕 회의였다. 국가 경제의 총괄 책임을 진 대통령이 당장 숨이 넘어가는 국민 앞에서 '위기를 기회로 만들라'는 훈시나 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며 "늑장대응으로 사태를 키우는 것도 모자라 무능함을 덮겠다며 국민 앞에서 낯 부끄러운 쇼잉을 할 때가 아니다"고 맹비난했다.
2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인왕시장의 한 상점 TV 화면에 윤석열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민생회의가 생중계로 방송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우상호 의원은 "평소에도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이런 식으로 진행했다면 대한민국 큰일 난다"며 "쇼하지 말라고 했는데 쇼를 해버렸다. 너무 한가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우 의원은 "김진태발 자금 경색 대책을 내놔야지, 무슨 LTV 얘기를 하고 있나"라며 "이렇게 경제를 모르는데, 대통령이 이렇게 회의를 진행하니 오히려 걱정이 더 커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가 마르는 기업들은 망하냐 마냐 초를 다투고 있는데, 농담이나 찍찍 하는 회의"였다고 혹평했다. 채이배 전 의원도 "물에 빠진 국민들이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장관과 대통령이 한가로이 뱃놀이하고 있는, 전혀 비상하지 않는 비상경제민생회의였다"고 질타했다.
윤 대통령과 대선 경선에서 경쟁했던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과 기업이 지금 가장 듣고 싶은 것은 눈앞에 닥친 경제위기를 극복할 윤석열정부의 의지와 전략인데, 그게 없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과 장관들이 경제를 위해 애쓰는 모습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장밋빛 전망만 하기엔 지금 우리 경제가 너무 위험하지 않나. 노동개혁, 교육개혁, 연금개혁, 인구개혁 등 어렵지만 꼭 해야 할 개혁과제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 얘기가 없었던 것도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 위기의 핵심을 피하지 않고 국민 앞에 솔직하게 어려움을 얘기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쓴소리를 더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이어 이날 취임 후 처음으로 국가과학기술 자문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또 제대로 공부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민과 또 세계시민의 자유를 확장시키는 것"이라며 "과학기술은 바로 이런 자유의 확장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했다. 매 연설마다 강조해왔던 '자유'를 과학기술과 연동시켰다. 윤 대통령은 "메모리를 이을 차세대 반도체 기술은 물론이거니와 인공지능, 모빌리티 그리고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우주항공, 원자력, 양자컴퓨팅 등 12개 국가전략기술이 새로운 대한민국의 성장 엔진이 될 수 있도록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를 위해 "국가전략기술 분야 R&D(연구개발)에 향후 5년간 25조원 이상을 투자해서 초일류·초격차 기술을 확보하겠다"며 또 "국가전략기술 육성 특별법 제정 등 지속가능한 추진 체계를 법제화하고, 미래를 위한 준비에 정부 역량을 집중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이와 함께 지난 2017년 문재인정부가 채용 과정에서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도입한 '블라인드 제도'를 공공 연구기관의 우수 연구자 확보를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우선적으로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혀 또 다른 논란을 야기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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