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자 국민의힘과 정부는 26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최근 안보 이슈를 부각하고 '종북 주사파'를 언급하며 색깔론까지 들고나왔지만 여전히 대통령 지지율이 정체된 상황에서, 노태우정부의 '범죄와의 전쟁'처럼 윤석열정부의 '마약과의 전쟁' 역시 국면 전환용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8시 국회에서 열린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당정협의회에서 "당정은 최근 젊은 층 중심으로 퍼지는 마약류 범죄와 오남용 문제가 일상을 위협하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며 "정부 역량을 총결집해 마약 관리와 범죄에 대해서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국무조정실장 주관 마약류 대책협의회를 구성, 총리실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 △검찰 전국 4대 권역에 관계부처 합동 특수수사팀 운영 등 강력 수사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과 불법 유통 관리 △청소년을 위한 마약류 예방 교육 및 홍보 내실화 △마약류 중독 치료·재활·예방 지원 확대 등이 제시됐다.
당정은 마약 범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며 "마약 청정국의 지위를 되찾겠다"고 강조했다. 성 정책위의장은 "과거처럼 특정 계층이 은밀한 경로를 통해 마약을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SNS 등 손쉬운 경로를 이용해 10대에서부터 연령을 가리지 않고 마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모든 역량을 동원해 마약을 국민의 일상에서 완전히 퇴출하겠다"고 말했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 역시 "마약이 일상생활에 침투해 민생을 더욱 어지럽히고 있다"며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총동원해 마약사범을 뿌리 뽑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당정협의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날 마약류 관련 당정협의회는 윤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 선포에서 비롯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2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마약이 관리 가능한 임계치를 넘어 국가적 리스크로 확산되기 전에 전 사회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이 절실하다"고 말했다고 대통령실 이재명 부대변인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이에 앞서 지난 21일엔 제77주년 경찰의 날을 맞아 "기민한 대응을 통해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리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이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13일 대검찰청에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마약류 범죄에 엄정 대응하라"고 지시 내린 뒤 서울·인천·부산·광주 등 4대 검찰청에 마약 범죄 특별수사팀이 설치됐다. 앞서 한 장관은 지난달 8월 "마약 밀매 등 수사가 진짜 민생"이라며 이른바 검수완박 시행령으로 알려진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시행령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윤석열정부의 '마약과의 전쟁' 선포에 이은주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25일 의원총회에서 "들끓은 민심에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노태우정부와 무엇이 다른가"라며 "손쉬운 '한건주의' 정치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노태우정부는 '범죄와의 전쟁' 선포로 국면전환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 10월4일 국군보안사령부의 광범위한 민간인 사찰 의혹이 폭로됐는데, 열흘가량 뒤인 13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을 발표했다. 이미 1989년부터 폭력조직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검찰의 수사 실적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정운영)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리려는 여러 가지 카드 중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국면전환에 효력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지금 국민들의 관심은 마약과의 전쟁이 아니고 경제 위기가 터지냐 마냐다. 경제·민생·외교 문제 관련 대통령에게 쏠린 무능함 지적,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보여야 할 능력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라고 짚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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