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전 대표(왼쪽)와 유승민 전 의원(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이준석 한숨 덜었더니 이제 유승민."
윤석열 대통령이 계속된 '정적'의 등장에 한숨만 커지게 됐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집권 5개월 차까지 이준석 전 대표에 발목이 잡혔다면, 앞으로는 유승민 리스크를 감내해야 한다. 당장 내년 초 있을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관건이다. 유 전 의원의 출마가 유력한 상황에서 당권이 유 전 의원을 비롯한 비윤계로 넘어갈 경우 여당의 안정적인 국정운영 뒷받침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국민의힘은 지난 6일 법원 판결로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의 효력을 인정받았다. 앞서 좌초된 주호영 비대위 판결과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비대위를 이끄는 정진석 위원장은 이 전 대표가 '윤핵관 호소인'으로 지목한 인물로, 윤 대통령의 통제권 아래에 있다. 6일 같은 날 소집된 당 중앙윤리위원회는 7일 자정을 넘긴 마라톤회의 끝에 이 전 대표에 대한 당원권 정지 1년의 추가징계를 의결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눈엣가시였던 이 전 대표를 마침내 털어내는 순간이었다.
이 전 대표와의 갈등은 집권 초반 국정 운영을 발목 잡는 주요 요인이었다. 특히 권성동 전 원내대표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내부총질 당대표")가 노출, 이 전 대표를 향한 윤 대통령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여권은 급격한 내홍에 휩싸였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최저치인 24%(한국갤럽·8월5일)로 급락했다. 당은 권성동 직무대행 체제를 마감하고 서둘러 비대위로 전환했지만 법원 판결에 제동이 걸렸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둘 중 하나는 죽어야"라고 표현할 정도로 당 내분은 최고조에 달했다.
주호영 비대위가 좌초되자 국민의힘은 당헌 96조 개정을 통해 당의 '비상상황'을 명확히 규정, 이를 토대로 2차 비대위인 정진석 비대위을 출범시켰다. 앞서 판결과 소급적용 문제까지 얽히면서 법조계에서는 같은 판결을 예상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출근길에 관련 질문을 받자 "다른 질문을 해달라"며 "제가 당무에 대해서는 답한 적 없지 않느냐"고 말을 아꼈다. 당정분리 기조를 재확인한 셈이지만, 더 이상 이준석 리스크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지도 엿보였다.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1월 여의도역 5번 출구 앞에서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문자에서 확인되듯 윤 대통령 입장에서 이 전 대표는 '내부총질' 자체였다. 두 사람은 대선 과정에서도 수차례 충돌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7월30일 이 전 대표가 부재 중인 상황에서 기습 입당해 '이준석 패싱' 논란을 일으켰다. 1차 신경전을 빚었던 양측은 선대위 운영을 놓고 갈등 끝에 이 전 대표가 지방으로 돌연 잠적하면서 극한 대립에까지 이르렀다. 울산 회동을 통해 갈등을 봉합했지만, 12월 또 다시 충돌을 빚었고 의원총회에서 화해하며 서로를 감싸 안았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표가 '연습문제'라고 낸 '지하철 출근길 인사'는 윤 대통령이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수모였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정치신인이었던 윤 대통령은 출근길 인사가 낯설었고 시민들은 추위에 인사도 받지 않은 채 발길을 옮겼다.
두 사람의 갈등은 대선 승리 이후에도 이어졌다. 이 전 대표의 공격 대상도 점차 '윤핵관'에서 '대통령'으로 옮겨졌다. 마침내 '전두환 신군부'에 비유되는 말까지 나오는 등 두 사람은 전면전으로 치달았다. 여론전에 강한 이 전 대표에게 윤 대통령은 문자 파동 등 공격 빌미를 계속해서 제공했고, 이 전 대표는 이를 소재로 삼아 라디오 등 언론을 종횡무진 누볐다. 여권의 집안싸움에 전통적 지지층인 영남과 보수층마저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국회가 제1당인 민주당에 막힌 상황에서 여권 내홍마저,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간신히 이준석 리스크를 벗어나는가 했던 윤 대통령은 이제 유승민 전 의원의 독기를 마주하게 됐다. 특히 미국 뉴욕 순방 중 있었던 '비속어' 논란은 유 전 의원이 민주당보다 더 강한 톤으로 비판하며 반대편에 섰다. 유 전 의원은 지난달 25일 "막말보다 더 나쁜 게 거짓말"이라며 "벌거벗은 임금님은 조롱의 대상이 될 뿐"이라고 일침했고, 29일 경북대 특강에서는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는 코미디 같은 일을 당장 중단하고 깨끗하게 사과하고 지나가야 한다"고 발언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해외 순방에 대해서도 "윤석열 대통령님, 정신 차리십시오. 정말 X팔린 건 국민들"이라고 한껏 깎아내렸다.
유 전 의원의 차기 전당대회 출마는 사정권으로 들어왔다. 여론도 유 전 의원을 응원하고 나섰다. 넥스트위크리서치가 KBC광주방송과 UPI뉴스 의뢰를 받아 지난 4~5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차기 당대표 적합도 조사에서 유 전 의원은 29.7%를 얻어 7주 연속 1위를 달렸다. 2위인 나경원 전 의원(12.2%)과는 두 배 넘는 격차를 보였다. 유력 당권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3위(9.8%)로 처졌다. 무엇보다 유 전 의원은 TK에서도 25.7%로 선두를 차지하며,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배신자' 늪에서 탈출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여권 내에서는 윤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손'이 차기 전당대회에서 작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10일 한 라디오에서 "윤 대통령이 아무리 당무에 간섭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유 전 의원이 대표가 되는 것은 죽어도 못 볼 것"이라며 "윤핵관인 권성동 혹은 윤상현으로 단일화 시켜서 유승민과 1대1 구도를 만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행히도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대통령 힘이 가장 막강한 집권 초기인 데다 당의 주류 역시 친윤계인 점 등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다 차기 총선 공천을 염두에 둔 의원들 및 출마 희망자들의 줄서기까지 감안하면 당을 이번 기회에 친정체제로 재편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반대로 유 전 의원에게 일격을 당한다면 당의 지원은 포기해야 하는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릴 수 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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