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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원전 친환경' 논란…사고저항성기술 난제·방폐장은 미루는 꼴
환경부 'K택소노미에 원전 포함' 방안 발표
9개월 만에 방향 전환…"EU, 절대적 기준 아냐" 비판
사고저항성핵연료 기술 없어…2031년 상용화 어려워
방폐장 부지 확보 지금도 늦어…"미래세대에 미뤄놓는 꼴"
2022-09-26 06:00:00 2022-09-26 06:00:00
[뉴스토마토 김현주 기자]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인 K택소노미에 '원자력 발전'을 포함시키면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와 사고저항성핵연료(ATF) 적용 시점·기술 부재 간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의 '방폐장 확보'도 부지 선정 절차에 착수 후 37년 이내에 시설을 마련해야하나 올해 당장 부지 선정에 돌입해도 2060년 방폐장 확보가 가능해 '원전'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제 2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쓰는 핵연료보다 안전한 '사고저항성핵연료 기술'이 필요하나 정부가 정한 시일 내 기술마련이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5일 <뉴스토마토>가 '원전' 전문가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종합한 결과, 원전을 포함시킨 K택소노미 결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킨 배경을 놓고 EU 사례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지적에서다.
 
환경부는 지난 20일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아 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원자력=그린에너지' 공식화에 대해 '말도 안되는 친환경 포장'이라며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K택소노미 초안에서는 원전이 빠졌지만 EU가 올해 7월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자, 환경부가 이를 반영해 K택소노미를 개정한 셈이다. 9달 만에 방향을 급전환하면서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박종운 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우리 정부가 EU택소노미를 기준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잘못됐다. 우리나라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EU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가는데 지금이 경제 위기 상황이니까 완전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임시적인 조치이고 영구적인 내용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성호 에너지전환정책연구소장도 "EU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 결국 다 재생에너지로 갈 것"이라며 "다만 과도기적으로 원전과 가스를 이용하기 위해 조건을 달아 택소노미에 포함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원전으로 재생에너지를 대체하겠다고 하니 방향성 자체가 다르다"고 질타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EU 택소노미는 하나의 참고 사항이고 우리가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기준은 아니다"라면서도 "환경부가 나름의 기준, 국내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 시점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방폐장) 조건 등은 문제로 지목하고 있다.
 
EU는 사고저항성핵연료를 2025년부터 적용하기로 했지만 원전 기술 연구개발의 유럽원자력산업협회(FORATOM)는 택소노미 요구를 총족할 수 없다며 성명을 밝힌 바 있다.
 
우리는 그보다 6년 늦은 2031년부터 적용키로 했지만 환경부 말대로 '도전적인 목표'일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와 EU도 사고저항성핵연료 기술이 없는 상태다.
 
핵물질은 지속적으로 냉각해야 안전성을 유지한다. 하지만 원자로가 냉각되지 못할 경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멜트다운(meltdown·원자로의 노심부가 녹는 것)이 발생할 수 있다. 사고저항성핵연료 기술은 멜트다운을 늦춰 사고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도 최근 논평을 통해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 시점을 2031년으로 지연하면 정부가 추진 중인 신규원전과 수명연장을 추진 중인 노후원전 10기는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될 수 있다"며 "녹색분류체계의 다른 조건을 충족한다면 국내 원전들은 향후 9년 동안 사고저항성핵연료 조건에 대한 유예를 받고 해당 조건은 사실상 유명무실 해질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2031년이 (사고저항성핵연료) 기술 상용화가 가능한 가장 빠른 시점"이라며 "기술이 상용화 안됐는데 적용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 2031년으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종운 교수는 기술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지금 사고저항성핵연료 연구는 이뤄진 게 아무것도 없다. 핵연료는 원자력이 이용된 기간 동안 모양이 바뀐 적이 없다. EU도 지금 관련 기술이 없다. 당장 몇 년 사이에 해결 될 문제가 아니다"며 강하게 지적했다.
 
이성호 소장은 "(결국) 멜트다운이 안되는 핵연료를 개발하겠다는 거다. 지금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상황인데 시간이 지난다고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고준위 방폐장 확보 시점도 논란거리다. EU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 시설과 관련해 2050년까지 문서화된 세부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준수 시한을 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부지 선정 절차에 착수 후 37년 이내에 시설을 마련하도록 돼 있다. 다시 말해, 올해 당장 부지 선정에 들어가도 방폐장은 2060년에야 준비되는 상황이다.
 
현재 고리원전이나 한빛원전 등 주요 원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 페기물은 2031년부터 순차적으로 포화 예정이다. 
 
박종운 교수는 "우리나라는 땅도 좁고, 방폐장 부지가 결정되면 반대가 클 것"이라며 "상황을 미래세대에게 미뤄놓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석 전문위원도 "2차 고준위 방폐물 기본계획 역시 부지확보와 건설에 37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기술돼 있을 뿐 언제, 어떤 부지에서 추진할지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주현 교수는 "과거에는 땅 속 깊은 곳에 묻는 심층처분과 관련해서 기술적 불확실성이 있었다. 500m 넘는 지하까지 파고 안전히 묻을 수 있을까, 지하 환경에서 방사성 물질을 영구적으로 격리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의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지금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기술적 진보가 일어났다.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도 심층 지하 처분장 인허가를 내줬다. 따라서 안전에 대한 확신이 지역 주민이나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25일 <뉴스토마토>가 '원전' 전문가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종합한 결과, 원전을 포함시킨 K택소노미 결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사진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현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 (사진=뉴시스)
 
세종=김현주 기자 kkhj@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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