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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중재 ISDS③)"BIT·FTA 조항 손질 필요… 한국 정부, 대응역량 키워야"
법조계 "ISDS 조항 폐지" vs "현실성 없는 주장"
"한국이 ISDS 없다고 투자 못 받을 나라인가"
“도입 40년… 현 세계경제 체제와 맞지 않아"”
"투자자 보호조항 배제하면 해외투자 유치 일부 장애"
"폐지시 상대국 찬성 필요"…"미국·캐나다 나프타 개정 사례 참고"
2022-09-15 06:00:00 2022-09-15 06:00:00
[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국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하는 중재 신청 사례가 늘어나면서 ISDS(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제도) 문제가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법조인들은 이 제도가 투자자에 유리하게 설계돼 일부 개혁안이 필요하다는데 입을 모았지만 폐지 여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ISDS는 양자간투자보장협정(Bilateral Investment Treaty·BIT)이나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FTA) 투자자 보호 조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BIT 또는 FTA를 체결한 국가는 총 97개국(2019년 9월 기준)이다. 한국 정부가 해당국 투자자들로부터 ISDS 제소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법무법인 수륜아시아)는 “ISDS 제도가 도입된 지 40여년이 지났는데, 이 제도가 더 이상 지금의 경제체제와 맞지 않고 국민 경제에도 유익하지 않다는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며 “UN(국제연합)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가 의지를 갖고 기존에 체결한 BIT, FTA 국가 측에 ISDS 제도를 채택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전달한다면 충분히 (ISDS 폐지)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UN 산하 UNICITRAL(국제상거래법위원회)에서도 ISDS 제도 폐지와 근본적 개혁을 위한 기구를 운영하고 있다”며 “(ISDS 제도로 피해를 많이 본) 남미 쪽 국가 중 일부는 아예 (ISDS 조항을) 폐기했다”고 설명했다.
 
민변 국제통상위원회 노주희 변호사도 “ISDS를 배제 또는 개정을 하는 데 있어 국가 간 관계나 외교문제를 고려해야 하고, 국가 간의 합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쉽진 않겠지만 ISDS로 인한 폐해에 공감하는 나라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며 “과거 미국과 캐나다가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을 통해 ISDS를 배제했던 방식을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ISDS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나라인 미국은 지난 2018년 NAFTA를 고치는 과정에서 캐나다와의 ISDS를 완전히 폐기했다. 대신 멕시코와는 ISDS 제도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그해 네덜란드도 투자조약을 새로 마련해 인권, 환경, 노동법 관련 국내법과 국가 규제를 준수할 의무를 투자자에게 부여했다.
 
노 변호사는 “너무 오래된 BIT (투자자 보호 관련) 조항 등을 차근차근 살펴보고 (현 시대 상황에 맞게) 걷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이를테면 가장 불분명하고 광범위한 (투자조약은) 공정·공평 대우 의무를 위반했느냐 여부인데 이와 관련된 판례도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차별 대우 여부를 판단하는 범위보다 상당히 넓고 모호하다. 론스타도 이 부분을 활용했다”고 꼬집었다.
 
ISDS 폐지 시 해외의 국내 투자 심리가 위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한국이 과연 ISDS 제도가 없다고 해서 투자 받기 어려운 나라인가”라며 “투자의 기본원칙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인데 그 리스크까지 ISDS를 통해 무한대로 보장해주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지금 ISDS가 필요한 나라는 아니라고 보인다”며 “현재 한국의 사법부도 굉장히 신뢰할 만한 수준이고, 계약서에 적시된 관할에 따라 론스타, 엘리엇 등 해외 투자자도 그 나라(투자국, 적어도 선진국)의 사법부 판단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한국 FTA 체결 현황. (출처=산업통상자원부)
 
반면 현재 ISDS 폐지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ISDS 제도는 유지하되, 한국 정부의 국제중재 대응 역량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ISDS에서 한국 정부 측을 대리하는 한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는 “(ISDS를) 폐지하려면 BIT 조약에서 중재 조항을 없애야 하는데, 이미 상대국과 함께 만든 조약을 다시 의견을 같이해 폐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기존에 발생한 문제점들을 일부 보완하는 측면에서 살펴볼 수는 있겠지만, 애초에 그 조항(ISDS)이 들어간 것 자체가 우리가 상대국 투자자들을 보호를 해주겠다는 입장이었던 만큼 이제 와서 ISDS를 배제해버린다면 그만큼 한국에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는데 있어 일부 장애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제분쟁 전문가인 김재헌 법무법인 천고 변호사(법무법인 천고 대표)도 “애초에 ISDS를 우리 필요에 의해 받아들인 것인데 최근 (론스타 배상 판정) 이슈로 이 제도 자체가 전면적으로 부정적으로 비춰지지만 한국에 매우 불리하게만 작용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ISDS를 대체할만한 국제 투자 중재 담당 ‘상설투자법원’에 대해서는 “(국제투자 관련 코트가) 신설된다 해도 여기에도 결국 신뢰도의 문제가 발생하므로 단정적으로 (투자법원 신설이) ICSID(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중재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론스타 배상 판정은 시간이 다소 걸리긴 했지만 중재제도는 신속하고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낸다는 장점이 있다. ICSID 중재인의 판단이 법원 판사의 판단보다 더 안 좋은 판단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일축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아무래도 (해외 투자자들이) 국제투자분쟁 조정을 신청하면 우리나라에 불리한 측면은 있다”면서도 “그런데 애초에 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ISDS에 있는 게 아니라 정부의 행정지도에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론스타, 엘리엇 등과 같은 해외 투기자본이 선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넌센스”라며 “ISDS 제도를 폐지할게 아니라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갈 수 있도록 ‘사후규제’로 바꿔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 판정부가 지난해 11월15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을 두고 한국 정부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국가-투자자 간 ISDS 중재 심리를 진행하는 모습. (사진=제네바 특파원/연합뉴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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