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정진석 비상대책위원회가 우여곡절 끝에 14일 공식일정을 시작했지만 또 다시 좌초될까 우려가 짙다. 공교롭게도 이날 법원에서는 이준석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을 놓고 심문이 진행됐다. 이 대표 측은 '비상상황'을 구체화한 당헌 96조 개정의 소급적용을 문제 삼으며 아픈 곳을 파고 들었다. 법원이 이 대표 측 주장을 받아들이면 정진석 비대위는 지난 주호영 비대위와 마찬가지로 좌초된다. 태생 자체가 당헌 96조 개정을 기반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일단 법원 판결까지는 비대위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할 일도 태산이다. 당 내홍 수습에 나서는 한편 사의를 표명한 권성동 원내대표의 뒤를 이을 새 원내사령탑 선출도 준비해야 한다. 정기국회에 돌입한 상황에서 원내지도부의 공백은 뼈 아프다. 항해가 순조롭다는 전제로, 조기 전당대회도 준비해야 한다. 정통성과 권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이준석 대표의 계속된 공격은 한없이 부담으로만 다가온다.
비대위의 시작은 관례대로 국립현충원 참배로 시작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성일종 정책위의장 등 비대위원들은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정 위원장은 방명록에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고 쓰며 각오를 다졌다. "이익을 보면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나라 위기를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이는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여순 감옥에서 쓴 유묵이기도 하다. 정 위원장은 "당의 조속한 안정과 정상화가 필요하고 안정적 지도체제 확립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라며 "윤석열정부가 순항할 수 있도록, 제대로 힘차게 발진할 수 있도록 당정이 일체감을 갖고 힘을 모아야겠다"고 말했다.
14일 오전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비대위원들이 서울시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에 참배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새 비대위 가동은 지난달 26일 법원 판결로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의 직무가 정지된 이후 19일 만이다. 2차 비대위는 출범까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먼저 법원에서 문제 삼은 절차적 하자 해소를 위해 부랴부랴 당헌 96조를 개정, 비대위 출범 요건인 '비상상황'을 명확히 규정했다. 또 다시 좌초될까 우려에 당내 중진들 모두 비대위원장을 맡으려 하지 않자, 권 원내대표는 민주당 출신의 박주선 전 의원에게도 찾아갔지만 거절 당했다. 다시 정 위원장에게 삼고초려한 끝에 어렵사리 수락을 받을 수 있었다. 비대위원 인선도 구인난을 겪었다. 정 위원장은 유의동·이용호·최재형 의원과 윤희숙 전 의원 등에게 비대위 합류를 제안했지만 "어렵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어렵사리 원내외 인사를 섞어 13일 인선을 발표했지만, 주기환 전 광주시장 후보가 친윤 색채 부담에 곧장 사의를 표명하면서 대타를 구해야 했다.
주어진 상황도 만만치 않다. 권 원내대표 뒤를 이을 새 원내대표 선출이 시급해졌다. 비대위는 이날 현충원 참배 후 국회로 돌아와 첫 비대위 회의를 열고 새 원내사령탑 선출을 위한 절차부터 의결했다. 정 위원장은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를 원내대표 선거관리위원장으로 선임하고, 오는 19일 새 원내대표를 뽑기로 했다. 정책위의장도 새로 임명될 예정이다. 다만 윤핵관의 2선 후퇴 등으로 대통령실과 교감을 나눌 뚜렷한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지난 1차 비대위 좌초로 명예 회복이 필요한 주호영 의원 추대론이 제기되면서 추대와 선출, 어느 방향으로 갈피를 잡지 못했다. 주 의원은 2016년 바른정당 원내대표, 2020년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등을 역임한 바 있다.
국정감사 등 정기국회 전략도 마련해야 한다. 국감은 오는 10월4일부터 24일까지 치러진다. 새 비대위가 출범 즉시 원내대표 선거부터 나선 것은 원내지도부의 공백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정부 첫 국감이기 때문에 집권여당의 책무가 막중하다. 민주당은 여당의 내홍을 틈타 민생과 대여투쟁, 투트랙으로 전략방향을 설정하고 공세 준비를 마쳤다. '김건희 특검'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검찰 고발 등 초강수로 나선 상황에서 국감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국민의힘은 6·1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두고도 당권 투쟁에 몰두하면서 집권여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미 정당 지지도는 일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에 추월을 허용했고,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는 한때 20%대로까지 추락하는 등 국민적 신뢰를 잃었다. 특히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3고로 인한 민생경제 위기는 '심각' 그 자체다.
14일 오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3차 가처분신청(당헌 96조 개정 효력 정지)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차기 전당대회도 준비해야 한다. 정 의원은 첫 비대위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 "(전당대회)논의는 아직 거론되지 않았다"면서 "(전당대회를)언제 하겠다는 확정 시점을 못 박기 어렵지만 최종 전당대회 기일, 당대표 선출 기일로부터 50일 정도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합동연설과 TV토론 등 일정들을 역산해보면 50일 정도 전에 전당대회에 대한 스케줄이 잡혀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기국회가 12월9일에 끝난다. 정기국회가 종료된 직후부터 곧바로 전당대회를 준비한다고 해도 내년 1월 말이야 가능해진다. 게다가 내년 1월8일이 되면 이준석 대표의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가 풀린다. 이 대표의 당권 재도전과 유승민 전 의원과의 연대 여부는 비대위가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데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될 전망이다.
정진석 비대위가 출범했음에도 여의도의 시선은 비대위가 아닌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향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남부지법에선 이준석 대표가 당헌 96조 개정을 무효로 해달라고 제기한 3차 가처분신청 심리가 진행됐다. 새 비대위의 운명도 심문 결과에 달렸다. 법원이 이번 가처분에서도 이 대표의 손을 들어줄 경우 당헌 96조 개정에 기반한 정진석 비대위 역시 무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법조계에서는 이번에도 인용될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1차 가처분을 다뤘던 재판부가 이번 심문을 진행하고, 동일한 상황에서 똑같은 진술을 다루기 때문에 사실상 이 대표의 가처분이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무리한 당헌 개정으로 '소급적용'의 불씨도 남겼다.
이 대표는 법원 출석 전 기자들과 만나 "어차피 지난 가처분신청에서 법원에서 일정한 판단을 내린 부분에 대해 불복하는 것에 대해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며 인용을 자신했다. 또 "이번에 당헌 개정안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소급된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처분적 당헌 개정이기 때문에 법원에서 큰 고민 없이 판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해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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