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2014년 7월 영화 ‘명량’이 개봉했다. 누적 관객 수 1761만을 동원했다. 8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 기록은 유효하다. 그리고 당분간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사실상 ‘전무’하고 또 ‘후무’할 기록으로서 국내 상업 영화 시장에 이 기록은 가장 꼭대기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8년이 흘렀다. ‘명량’을 만든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장군 3부작 프로젝트’ 두 번째, ‘한산: 용의 출현’을 선보인다. ‘한산’은 임진왜란 초기 이순신 장군이 나선 ‘한산대첩’이다. 그리고 부제 ‘용의 출현’은 중의적 의미. 우선 이순신이란 한반도 역사상 최고 영웅의 ‘출현’을 의미하는 게 첫 번째.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상징 거북선이 등장해 압도적 승리를 거둔 ‘한산대첩’, 즉 거북선 등장이 두 번째 ‘용의 출현’이다.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에서 첫 번째 ‘명량’이 불이었다면 두 번째 ‘한산: 용의 출현’은 물이다. 하지만 ‘명량’의 불보다 더 뜨겁다. 그리고 더 거대하다.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은 부장 ‘희립’에게 고한다. “지금 우린 더 압도적 승리가 필요하다”라고.
‘한산: 용의 출현’은 임진왜란 초기 벌어졌던 이순신 장군 승전 가운데 최대 전공 중 하나인 ‘한산대첩’을 그린다. 한산대첩은 흔히 임진왜란 3대첩(행주대첩, 진주대첩)가운데 하나로 불리고, 나아가 한반도 역사를 통 틀은 3대첩(을지문덕 살수대첩, 강감찬 귀주대첩)중 하나로도 역사학계가 꼽는 우리의 실제 위대한 역사다. 무엇보다 한산대첩은 전 세계 해전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이른바 ‘포위섬멸전’을 펼친 전투로 기록돼 있다. 이 해전 방식은 이순신 장군의 고유한 해전 진법으로 유명한 ‘학익진’이다. ‘한산: 용의 출현’에선 ‘바다 위의 성’으로 불리며 왜의 명장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함대를 섬멸할 때 등장한다. 이 과정은 영화 후반부 ‘전율을 넘어선 그 이상’으로 표현된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임진왜란 발발 이후 단 15일 만에 한양까지 치고 올라온 왜의 위세. 그리고 한양의 궁을 버리고 피신한 선조. 이후 한양 탈환을 위해 모인 수만의 조선군이 단 몇 천의 와키자카 친위대에게 대패를 한 사실을 전한다. 와키자카는 왜를 지배하는 태합(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받아 북상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 든다. 하지만 이 같은 결단을 내리기 위해선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을 섬멸해야 한다. 잘못할 경우 왜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보급 라인이 끊긴다. 더욱이 왜의 수군들은 ‘복카이센’이라 불리는 전설의 바다 괴물들에게 연이어 패배를 하고 있었다. 와키자카와 그의 군대는 육지에서의 연전 연승 속에서도 조선 수군을 섬멸하지 않으면 조선 정벌은 있을 수 없다 판단, 견원지간이나 다름 없는 ‘가토 기요마사’에게까지 원군을 요청한다. 와키자카는 태합의 책사 ‘칸베에’의 지지를 등에 엎고 원군으로 참여한 가토의 수군 전체를 묘책을 써 취한다. 눈에 가시 같던 가토마저 제거한 와키자카. 가토의 철갑선 수군 대부대를 손에 넣은 와키자카는 베일 속 ‘복카이센’ 그리고 조선 수군을 이끄는 이순신의 존재를 얕봤다. 와키자카는 수하들과 함께 조선 정벌 목적을 넘어선 야욕을 드러낸다. 조선을 넘어 명나라 정벌에 대한 욕심이다. 이를 통해 태합의 최측근으로 발돋움할 기회를 잡으려 든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와키자카는 바다와 육로 두 곳에서 동시에 조선 수군 핵심 이순신을 칠 계획을 세운다. ‘복카이센’이라 불린 거북선의 공포 역시 ‘메크로부네’ 즉 ‘맹인선’이라 낮춰 부르며 군 사기 관리에 만전을 기한다. 또한 최측근을 조선 수군 진영에 침투시켜 거북선 설계도 탈취 계획까지 세운다. 하지만 이미 이순신의 첩자가 와키자카 군영 내부에서 활약 중이었다. 조선 앞바다에서의 전면전에 앞서 두 진영의 치밀하고 치열한 첩보전이 물밑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와키자카는 이미 가토의 수군을 손에 넣고 전라좌수영 총공격을 앞두고 있다.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역시 부산포 앞바다에 집결해 있는 와키자카 대군을 맞설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에 앞서 출격해 큰 전공을 세웠지만 문제점을 드러낸 거북선 출격이 불투명하다. 이순신은 거북선 제작 총괄 책임자이자 돌격대장 ‘나대용’과 만난다. 와키자카 대군과 맞설 전투에 문제점이 보완된 거북선 출격은 장담할 수 없다. 결국 이순신은 ‘거북선 없는’ 출격을 선언한다. 반면 나대용은 초기 출격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한 신형 거북선 제작에 박차를 가한다. 또한 이순신은 출정 준비에 앞서 스스로 ‘바다 위의 성’이란 해법을 제시한 와키자카와의 전투 승리 열쇠인 ‘학익진’ 계획을 수립한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1592년 음력 7월 8일 한산도 앞바다 견내량, 왜의 수군 수백 척 전투함 ‘세키부네’와 지휘선 ‘안택선’ 대부대. 와키자카는 자욱하게 낀 안개를 방패 삼아 좁은 수로 ‘견내량’에 집결, 이순신을 유인한다. 반면 판옥선 수십 척으로 한산 앞바다에 집결한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이들을 끄집어 내야 한다. 일촉즉발 개전 상황에서 조선과 왜를 대표하는 최고 명장 두 사람의 지략 대결은 스크린을 찢는 카리스마로 대체된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한산: 용의 출현’은 사실 별다른 드라마를 전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존재하지만 구태의연한 드라마는 없다. 역사 자체 실존성을 바탕으로 사건의 존재성을 명징하게 살리는 것에 집중한다. ‘명량’의 이순신이 불처럼 뜨거운 용장이었다면 역사적으로 좀 더 앞선 ‘한산’의 이순신은 뛰어난 지혜를 겸비한 ‘지장’(智將)으로 그려졌다. ‘유비무환’ 정신으로서 주변의 어떤 모략 그리고 불안에도 자신만의 믿음을 굳건히 하며 조선의 근간을 지키는 마지막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한다. ‘한산: 용의 출현’에서 박해일이 연기한 ‘이순신 장군’이 별다른 감정의 흔들림을 보이지 않는 것 자체가 이런 의도를 투여시킨 김한민 감독 의도이자 연출 이유가 아닐까 한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순신 장군 지혜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의 대척점에 선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뛰어난 지략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실제 왜의 명장으로 유명한 와키자카의 지략은 어떤 시각으로 보더라도 뛰어난 장수임에 틀림없단 확신을 갖게 한다. 이런 점이 오히려 고요하면서도 굳건하고 또 묵직한 무게감으로 자리를 지키는 이순신 장군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임진왜란 이후 정유재란 발발 후 일어난 ‘명량해전’에 앞서 열린 ‘칠전량해전’에서 조선 수군 괴멸을 자초한 원균은 ‘한산’에서 이순신의 위압감과 그에 대한 열등감을 갖게 하는 여러 단초를 얻게 하는 인물로 역사의 기록 그대로를 담아낸 듯하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이런 인물들의 첩보전과 지략 대결에도 불구하고 ‘한산: 용의 출현’은 영화 후반까지 무려 51분간 이어지는 한산대첩 해전이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스스로 증명한다. 물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완성시킨 ‘한산: 용의 출현’ 속 해전은 국내 상업 영화에서 비교 대상이 불가능한 완성체를 온전히 투영시킨다. 물살에서 움직이는 조선 수군 판옥선의 무게감 그리고 왜 수군의 전투함 세키부네의 빠른 몸놀림이 가상 현실에 가까운 수준으로 체감력을 높인다. 그리고 등장하는 거북선. 1척이 아니다. 또한 한 종류가 아니다. 영화 시작과 함께 등장한 ‘복카이센’(바다괴물)의 위력을 더욱 높인 업그레이드 버전 ‘거북선’까지 전투에 참여한다. 이 장면에선 김한민 감독이 이순신 장군 3부작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거북선’ 연구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했는지 체감될 만한 묘사가 수 없이 스크린에 쏟아진다.
사실상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영화 막바지에 등장하는 ‘학익진’에서의 전군 전함 전포 사격 장면이다. 할리우드 특급 블록버스터에서도 느낄 수 없는 카메라 워킹은 장대함을 넘어 위대한 순간을 고스란히 잡아낸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이미 8년 전 ‘명량’의 기록적 흥행 가도 속에서도 제기됐던 ‘국뽕’ 논란은 이번에도 여전할 듯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반론은 여전하다. ‘국뽕’ 맞다. 하지만 이건 엄연하게 우리 역사에 실제 기록돼 있는 사실이다. ‘한산: 용의 출현’으로 느낄 수 있는 그것은 ‘국뽕’이 아닌 ‘위대함’이다. 우린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이 영화를 보고 압도적 승리의 역사를 보유한 우리의 자긍심을 마음껏 드러내도 좋을 듯하다. ‘한산: 용의 출현’ 속 용은 ‘이순신 장군’ ‘거북선’에 대한 중의적 의미다. 그리고 또 하나 더. 바로 우리의 자긍심이다. 개봉은 오는 27일.
P.S 이순신 장군을 포함 각각의 등장인물 대부분이 ‘명량’ 속 인물들로 이어지는 전사(前史)형태를 띈다. ‘명량’ 속 정씨여인(이정현)이 말을 못하게 된 사연, 그리고 그의 남편으로 등장한 임준영(진구)과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공개된다. 일본인 ‘준사’가 ‘항왜’로 돌아선 이유도 등장한다. ‘명량’에서 와키자카가 왜 그렇게 이순신을 두려워했는지도 ‘한산’을 보면 알 수 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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