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한전을 위한 변명
입력 : 2022-06-29 06:00:00 수정 : 2022-06-29 06:00:00
2000년대 초 김대중정부 시절 한국전력을 6개 발전자회사 분리 구상이 처음 제기될 때 산업자원부 직원 워크숍이 열린 적 있었다. 필자도 그때 산업자원부 기자로서 함께했었다. 주된 토론 주제는 한국전력 분할을 골자로 한 발전사업 구조 개편이었다.
 
한전의 발전사업을 자회사로 나누고 한전은 그 전기를 사고파는 역할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민간기업이 생산한 전력도 사들인다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민간부문의 발전사업 투자도 촉진될 것이라는 기대도 제시됐다. 그렇게 시작된 발전자회사 분리는 우여곡절 끝에 노무현정부 시절 마무리돼 지금과 같은 6개 발전사가 탄생했다
 
중요한 것은 전기요금을 정부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발전사들의 경쟁에 맡긴다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써 발전사들끼리의 원가 경쟁을 벌이는 한편 전기료가 오르거나 내릴 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바로바로 조정되게 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런 취지대로 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전기요금은 이미 지금보다 높아졌겠지만, 요즘처럼 에너지 효율이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전기요금 결정되는 방식을 보면 애초의 취지와 다른 것 같다. 요금 조정은 여전히 정부가 결정한다. 이럴 바에는 발전자회사를 분리하느라 홍역을 치른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부가 결정권을 행사하더라도 원가 변동 요인은 곧바로 반영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만 지금 이마저 안 되고 있다, 기름과 가스 등 국제 발전 연료 가격은 오르는데 전기요금은 정부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문명은 전기 없이 지탱될 수 없다. 앞으로도 전기차를 비롯해 전기를 이용해 작동하는 문명의 이기들이 계속 나올 것이다. 전기는 다른 재화와 달라서 외국에서 수입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발전산업이 건실하게 운영되고 건실한 생산공급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 지난 2020년 12월 전기요금의 연료비 연동제가 도입된 것도 그런 취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도입된 시기가 불운이었다. 코로나19 전염병이 창궐하고 민생고가 깊어졌다. 연료비 연동제가 실행되기에는 여건이 너무 나빴다. 연동제에 따라 전기요금을 올리면 자영업자 등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자영업자들을 살려야 한다고 정부 예산을 풀면서 전기요금으로 다시 빼앗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 누구라도 달리 더 좋은 선택을 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 요금을 제때 충분히 올리지 않았는지 지금 와서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일은 충고할 수 없다는 옛말처럼 그런 비난은 지금 무의미해 보인다.
 
문제는 이제부터이다. 한국전력이 올해 1분기에만 7조7000여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는 등 적자 수렁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연말까지 20조~30조원의 적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때문에 한전은 회사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그마저 머지않아 한계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런 적자 수렁에서 구출해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정부는 우여곡절 끝에 요금을 27일 조금 올렸다. 한전으로서는 불만스러운 인상 폭이다. 그렇지만 물가 불안이 심각한 요즘 인상 요인을 모두 반영하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사실은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한전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까지 요구받고 있다. 이에 따라 요즘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다. 자회사나 부동산, 지분을 매각하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자회사까지 포함해 성과급을 반납해야 한다니, 한전 직원들은 아마도 부글부글 끓어오를 듯도 하다.
 
물론 지금의 적자 사태에 한전의 잘못은 없다고 여겨진다. 정부나 정치권의 요구를 감수한 결과일 뿐이다. 그렇지만 이 기회에 지금까지 방만하거나 낭비를 유발하는 요인이 없었는지 성찰하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것은 모든 '공공기관'에 요구되는 것이다. 특히 한전은 대표 공기업으로서 그런 요구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조금이라도 흡수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한전은 언젠가 요금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누리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신뢰부터 얻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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