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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의 밴드유랑)무토, 동양 미학 만난 음의 추상
해외 공연서 결성…첫 데뷔 앨범 ‘Vast Plains’
거문고 돌려 활 켜고 미디어 아트 펼치고
우리 들판 떠돌며 양악-국악 조화 실험…“우린 국악계 펑크”
2022-06-29 16:00:00 2022-07-04 10:17:50
그룹 ‘무토(MUTO)’ 멤버들, 제제(ZEZE·신디사이저), 박우재(거문고), 박훈규(PARPUNK·그래픽 아트), 홍찬혁(미디어 아트). 사진=ⓒ국립극장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술대(국악에서 오른손에 끼워 줄을 퉁기는 연필 크기의 막대)로 타격하던 거문고를 뒤집어 활로 켜고, 신디사이저가 소리의 안개를 드리울 때, 음(音)의 회화는 붓질을 시작한다.
 
“술대가 점의 연주라면 활은 선의 연주입니다. 전자음악은 면을 만들죠. 이 소리들은 미디어 아트를 투과해 결국 공간이 됩니다.”
 
은은한 수묵의 동양적 미학이 칸딘스키의 추상 철학과 만나는 것만큼 기묘하다. 음은 땅을 형성하고 바람을 불러오며 산의 능선을 눈앞에 펼쳐낸다. 
 
21일 서울 마포구 인근 작업실에서 만난 그룹 ‘무토(MUTO)’ 멤버들, 제제(ZEZE·신디사이저), 박우재(거문고), 홍찬혁(미디어 아트), 박훈규(PARPUNK·그래픽 아트)은 최근 내놓은 데뷔 앨범 ‘Vast Plains’에 대해 “무너져 있는 이 화산섬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며 앨범 표지 그려진 그림을 들어보였다.
 
“이 섬이 있기까지 시간의 우여곡절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강렬한 폭발과 변화, 요동치고 무너지고 솟아나는 생명력을 시각과 소리로 표현한다면..”(박훈규)
 
21일 서울 마포구 인근 작업실에서 만난 그룹 ‘무토(MUTO)’ 멤버들, 제제(ZEZE·신디사이저), 박우재(거문고), 홍찬혁(미디어 아트), 박훈규(PARPUNK·그래픽 아트)은 최근 내놓은 데뷔 앨범 ‘Vast Plains’ 커버. 사진=MUTO
 
그룹은 일종의 창작 크루에 가깝다. ‘선 앨범 제작, 후 공연’ 형태의 일반 밴드나 음악가들과 행보가 다르다. 201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극장 ‘Centro Cultural General San Martín’ 공연을 위해 결성됐다. 이후 아트센터나비(2016), 국립극장(2017/여우락 페스티벌), 다빈치 크리에이티브(2019), 헤럴드 디자인 포럼(2019),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20~2021/창작 국악팀 ‘입과손스튜디오’와의 공동 연출작 ‘두 개의 눈’)를 거치며 국악과 전자음악, 미디어 아트 간 삼중 비율을 연구해왔다.
 
팀명 ‘무토(戊土)’는 광활한 대지를 일컫는 사주 용어. “동양의 웅장한 산(거문고)과 서양의 거대한 땅 덩어리(전자음악)가 만난다는 그림이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한국어든, 영어든, 프랑스어든 쉽게 발음할 수 있는 단어기도 하고요.”(박훈규)
 
앨범 문을 여는 첫 곡 ‘Straight Line’부터 음의 진경이 펼쳐진다.
 
술대로 거문고를 때려 생성시킨 장단의 잔향은 시간의 흐름을 분절하듯 입체적이다. 곡의 중반으로 향하면 거문고를 돌려 켜는 활의 선율이 새벽 공기처럼 깔린 신디사이저(‘무그 서브 37’) 전자음 위를 너울거린다. 이들은 “서양 악기가 동양 미학인 여백을 만들고 반대로 국악기가 전면에 나선다면 어떨까 실험을 펼쳐봤다”고 설명했다. 박우재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국악계의 펑크(Punk)”라며 웃는다.
 
“거문고 소리는 흙처럼 거칠고 묵직한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음악에선 가창자의 역할을 합니다. (거문고가) 노래를 잘 할 수 있도록, 전자음악은 빈자리, 여백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죠.”(제제) 
 
MUTO '2018 에르메네질도 제냐 XXX 런칭 공연' 사진=ⓒ김재우
 
제제는 일렉트로닉 그룹 이디오테잎의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이디오테잎 때 드럼과 함께 때리고 부술 듯 전면에 나서던 제제의 신디사이저 이펙터(음 변형) 효과는 본작에서 대체로 한걸음 물러서 있다. 거문고의 질감과 공간감이 부각되도록 음을 다듬어가며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수록곡 ‘Sonnet’처럼 국악과 양악이 록 같은 마찰음들을 일으키며 의외의 간헐적 긴장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수록곡 ‘Harm’(‘상처주다’란 뜻과 ‘하모닉스’의 중의)에서는 거문고를 연주하다 실수로 튀어나온 음 이탈을 전자음악과 섞어대는 예술적 농담도 흥미롭다.
 
앨범의 전체적인 서사 구상은 자연에 대한 영감으로부터 비롯됐다.
 
아르헨티나 공연 직후 박훈규와 홍찬혁이 함께 본 이과수 폭포, 자연의 경외감이 이들을 이끌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란 산과 들판의 미학은 무엇인가” 질문하기 시작했고, 광대패처럼 전국을 떠돌며 드론을 날려보기로 했다. 한국의 명산들을 관찰하고 제작한 영상(2017년 국립극장 공연 ‘두 개의 산’에서 선보임)을 시작으로 이번 앨범의 전반적인 밑그림을 그렸다.
 
거문고의 무수한 점들이 연결하는 선(‘Straight Line’)은 산(‘Mountain’)을 그리고, 붉은 달빛(‘Red Moon’)을 눈앞에 일렁인다. 
 
MUTO '2018 에르메네질도 제냐 XXX 런칭 공연' 홍찬혁(왼쪽)과 박훈규. 사진=ⓒ김재우
 
박훈규와 홍찬혁은 그룹의 음악을 물리적인 시각의 캔버스로 구현하는 역할을 한다. 해외 공연 때는 LED 조명을 설치하고(홍찬혁), 드론을 활용한 영상(박훈규)도 제작한다. 하반기에는 판소리까지 결합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올린 ‘두 개의 눈’ 앨범을 내고 XR 뮤직비디오도 선보일 계획이다. 이날 기자가 미리 본 뮤직비디오에서 시뮬레이션으로 작업한 심청가의 인당수는 뚱땅거리는 거문고 장단에 맞춰 화면을 삼킬 듯 넘실거렸다. 오는 1~2일 국립극장 내 달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여우락페스티벌 무대에도 오른다.
 
“우리 모두가 각자만의 보더라인(경계)에 선 사람들이지 않나 생각이 들었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호기심을 느낀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서로의 작업 물에 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존중할 수밖에 없고 색다른 예술적 가능성을 실험할 수 있는 것이죠.”(박훈규)
 
마지막으로 멤버들은 이번 앨범을 ‘마음 속 이과수폭포를 찾는 과정’에 비유했다.
 
“파타고니아와 망망대해를 보고 자연의 거대함에 압도됐지만, 그렇다면 무토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세상 밖에서 찾기보다 내 안의 풍경을 찾아야할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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