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나현 감독은 영화 ‘프리즌’을 마무리한 뒤 멋들어진 스파이 액션 영화를 기획했다. 우선 주인공을 설정해 봤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본적 없는 정말 멋진 남자. 우선 ‘스파이’라고 하면 빈틈 없이 멋진 수트에 티끌 하나 없는 깔끔함이 떠오른다. 대표적 레전드 스파이 시리즈 ‘007’ 속 이미지. 톰 크루즈 주연 ‘미션 임파서블’은 또 어떤가. 그의 환상적인 외모는 여심은 물론 남심까지 홀릭시킨다. 나현 감독은 고민했다. 차별이 필요했다. 멋진 스파이, 그런데 강한 스파이. 우선 거칠고 무자비한 이미지가 떠올랐단다. 통제불능의 힘 즉 ‘무력’을 가진 인물. 주변 누구라도 눈빛 하나로 제압할 수 있는 카리스마. 영화 ‘야차’ 속 ‘지강인’이 딱 그랬다. 오죽하면 주인공의 별명이 사람 잡아 먹는 ‘야차’로 정했을까. 나현 감독은 그렇게 주인공을 연기할 배우를 떠올려 봤다. 이 정도로 엄청난 액션을 소화해야 할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 고민할 지점이 아니었다. 소화할 수 있다 확신한 배우는 딱 한 명이었단다.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이 배우에게 ‘야차’의 시나리오를 보내고 출연을 요청했다. 배우 설경구. 국내에서 영화 ‘야차’ 속 지강인을 연기할 배우가 그 외에는 달리 떠오르지 않았단 나현 감독의 말. 영화를 보기 전부터 100% 동의가 됐다. 영화를 본 후에는 200% 동의를 했다.
배우 설경구. 사진=넷플릭스
영화 속 캐릭터로 비춰지는 설경구는 거침없고 솔직한 모습이다. 물론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는 의외로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는 점이다. 그래서 솔직히 ‘야차’도 걱정을 많이 했었단다. 시나리오를 받고 읽어 본 설경구의 첫 인상은 ‘내가 해도 될까’였다고. ‘야차’의 지강인은 멋져도 너무 멋진 인물이었다. 못하는 게 없고, 모든 걸 전부 해결하는 만물박사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설경구는 감독에게 간곡히 부탁을 했단다.
“지강인 역할은 대놓고 ‘나 멋있다’라고 하는 것 같아서 솔직히 거부감이 있었어요. 제안 받았던 시기에 ‘좀 즐길 수 있는 액션 영화’를 고르고 싶었는데 ‘야차’가 딱 이었죠. 근데 배역이 너무 멋있어서 ‘내가 해도 될까’ 싶었어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제발 발이라도 땅에 딛고 좀 있게 해달라’고 부탁 드렸죠. 지강인 캐릭터의 톤을 좀 죽여 달라고 했던 거에요(웃음).”
설경구는 충무로에서 혹독한 자기 관리로 유명한 배우다. 과거 영화 촬영을 위해 수십kg의 체중을 늘리기도 했고, 반대로 그 정도의 체중을 감량하기도 했다. 이 정도의 관리를 위해 지금도 촬영 현장에서 아침마다 줄넘기를 수천 개씩 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루틴은 스태프와 동료들 사이에서 유명할 정도다. 그 정도로 체력이 자신 있었지만 ‘야차’는 그 이상의 액션을 요구했다.
배우 설경구. 사진=넷플릭스
“예전에는 좀 괜찮았는데 이젠 힘든 건 힘들더라고요(웃음). ‘야차’ 보시면 큰 술독이 많이 있는 공장에서의 액션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 장면만 2일인가 3일 정도 찍었어요. 그게 영화에선 중국이지만 실제 촬영은 강원도 정선에서 찍었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웃음). 우리 팀원들 보면 그래도 다들 젊잖아요. 제가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우리 팀원들을 따라갈 순 없겠더라고요.”
‘야차’ 속 설경구가 팀장인 블랙팀 멤버는 총 4명. 양동근부터 이엘 송재림 박진영. 네 사람은 각각의 캐릭터가 뚜렷하고 또 하는 일도 철저하게 분담돼 있다. 영화 속 역할은 지강인을 연기한 설경구를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팀원들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설경구의 리더십에 촬영 기간 동안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며 촬영 현장 맛집 탐방으로 ‘팀 단합’을 위해 노력한 멤버들이란다.
“우리 팀원들 ‘끝내주죠’(웃음). 코로나 초반 시기라 사실 그땐 음식점 문 연 곳도 몇 군데 없었어요. 근데도 현장에서 어떻게 해서든 영업하는 곳을 찾아서 한잔씩 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죠. 아! 방역 수칙 잘 지키면서 했습니다 하하하. 우선 실제 배우로서도 당연하지만 개성들이 너무 강하고 달라요. 양동근의 유연함, 송재림의 마초적인 모습, 진영이의 모범생 같은 단정함, 이엘의 액션 소화력. 정말 지금도 블랙팀에 대한 애정이 참 많아요.”
배우 설경구. 사진=넷플릭스
강도 높은 액션은 직접 체력을 관리하며 소화했다. 그 가운데 많은 장면을 자신이 이끄는 ‘블랙팀’ 멤버들과 함께 했다. 워낙 프로페셔널하기에 어려웠지만 즐기면서 재미있게 현장을 소화했단다. 하지만 아무리 즐겁게 소화하려고 해도 안됐던 게 ‘야차’ 현장에서 한 가지 있었다고. 바로 외국어 연기다. 우선 설경구는 과거 ‘역도산’에서 유창한 일본어 연기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야차’에선 업그레이드가 됐다.
“극중에서 일본어로 얘기를 하다가 중국어로 곧바로 넘어가고 다시 일본어로 자연스럽게 넘어오는 장면이 있어요. 진짜 죽겠더라고요(웃음). 감독님도 외국어 연기에 특히 신경 써 달라고 하셨고. 현장에서 액센트를 잡아 주시는 선생님도 계셨는데. 절 진짜 괴롭히셨어요(웃음). 외국어 액센트가 테이크 마다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면 같을 수가 없더라고요. 나중에는 연기까지 잘 안돼서 제가 선생님을 협박했죠 하하하. ‘나 디테일하게 소화 못하니 너무 건들지 말라고’(웃음)”
‘야차’ 연출을 맡은 나현 감독도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었다. ‘야차’는 중국 선양이 배경이지만 사실 중국 선양에서 찍은 장면은 단 한 컷도 없다. 대만과 홍콩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이 국내 촬영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문제 때문이기도 했고, 영화란 매체의 제작 환경을 고려한 여러 지점도 있었다. 설경구는 제작진의 고생을 거론하며 박수를 보냈다.
배우 설경구. 사진=넷플릭스
“정말 제작진 대단해요. 아마 국내에선 제주도 빼곤 안 가본 곳이 없을 거에요. 영화가 다 그렇지만 제작 환경 때문에 한 씬을 촬영하는 데 들어가는 장면, 들어가서 바라보는 장면 그리고 다시 나오는 장면의 실제 촬영 장소가 다 다른 곳에서 이뤄진 게 진짜 많았어요. 그걸 한 장소에서 찍은 것처럼 연결하는 게 정말 어려운데 스태프들과 감독님의 계산이 거의 완벽하게 합을 이룬 거죠.”
설경구는 자신의 첫 번째 1000만 영화 ‘실미도’를 거론하면서 ‘야차’와의 묘한 공통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야차’는 상당한 카타르시스와 액션 수위로 보는 이들의 맥박수를 끌어 올리는 얘기다. 하지만 그 안에서 연기를 하고 인물로 살아온 설경구는 어떤 부분에선 이 영화의 슬픈 정서가 느껴져서 안타깝단 생각마저 들 때가 있었다고 전했다.
“서글픈 사람들의 얘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국가로부터의 배신을 당한 사람들. 그 배신도 계획된 것이고. 그렇게 목숨을 잃고 사라져도 존재 조차 인정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스파이란 사람들이. 그런데도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제가 출연했었던 ‘실미도’ 속 인물들과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죠.”
배우 설경구. 사진=넷플릭스
‘야차’는 이른바 ‘열린 결말’의 성격으로 마무리를 한다. 스토리 자체의 해결은 마침표를 찍는다. 하지만 속편을 기대하는 듯한 인상으로 영화의 결말이 완성된다. 연출을 맡은 나현 감독은 속편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단다. 하지만 최근 ‘야차’가 공개된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시청률 3위까지 치솟으며 인기를 끌고 있다. 좋은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속편 제작도 가능할 듯 하다. 팬들도 설경구의 ‘야차’를 더 보고 싶어할 것 같다.
“(속편 출연 여부는) 지금 그걸 말할 수 있겠어요(웃음). 우선 ‘불한당’ 이후부터 간간히 액션이 들어오는 데 요즘 또 들어오기 시작하네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액션이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되고 나니 요령이 생기더라고요. 예전에는 상대만 보고 하는 액션이라면 지금은 전체가 눈에 보이게 됐죠. 감정을 담는 액션 작품이 있다면 고려해 보고 싶네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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