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게이션)‘뜨거운 피’, 허무의 세계 속 깡패의 전형성
2016년 출간 동명의 원작 소설 스크린 전환…주먹 통한 진실
지키고 싶던 한 남자, 모든 걸 잃은 뒤 선택한 ‘허무의 쓸쓸함’
2022-03-18 01:01:01 2022-03-18 01:01: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생존을 얘기한다. 살고 싶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살고 싶은지가 중요하다. 조폭이다. 깡패다. 뭐가 됐든 나쁜 놈들이다. 그들이 살고 싶단다. 우리의 도덕적 관점 안에서 그들의 생존은 반대로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그릇된 관념일 뿐이다. 그럼 이런 얘기를 왜 해야 하는지, 이 얘기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깡패들의 생존, 처절할 것이다. 그 처절함 속에 자리한 어떤 감정이 주된 정서가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얘기는 허무에 대한 얘기로 귀결되면 가능해지는 흐름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세상은 아무것도 없다. 극단적인 이면의 세계, 영화 뜨거운 피가 말하는 세상이다.
 
 
 
영화 뜨거운 피 2016년 여름 출간한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작가 김언수가 쓴 이 소설을 같은 작가이자 영화계에서 오랫동안 각본 작업을 해온 작가 천명관이 연출 맡은 첫 장편 감독 데뷔작이다. 참고로 뜨거운 피는 한때 영화계에서 판권 경쟁이 일어날 정도로 탄탄하고 생생한 필력이 살아 있는 작품으로 입 소문 나 있었다.
 
영화 '뜨거운 피' 스틸. 사진=키다리스튜디오
 
시간적 배경은 1990년대 중 후반이다. 공간적 배경은 부산의 작은 해변가 포구 구암’. 이 곳을 두고 각각의 이익과 뒷거래 그리고 서로간의 이권 문제로 배신과 연합을 일삼는 깡패들의 얘기를 그린다. 중심인 인물은 부산 구암 토박이 희수(정우).
 
희수는 어린 시절부터 구암의 실제인 관광호텔 만리장사장 손 영감(김갑수) 밑에서 일하고 있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촌구석 늙은 조폭 사장의 뒤처리나 하는 중이다. 손 영감을 대신할 후계는 언감생심이다. 손 영감의 유일한 핏줄은 조카가 조직에서 버티는 중이다. 이런 답답함은 도박판을 전전하며 해소했고 이뤄놓은 건 없이 도박 빚만 늘어갈 뿐이다. 희수는 앞날이 깜깜하고 답답하다. 결에는 오랫동안 사랑해 온 연인(윤지혜)과의 결혼도 앞두고 있다. 고민이 많던 희수에게 평소 호형호제하던 주류도매업자(김해곤)가 성인오락실 사업 동업을 제안한다. 또한 이 사업 안착을 위해 지역 내 라이벌 조직이던 마약 유통업자 용강(최무성)을 경찰에 넘긴다. 이제 희수는 손 영감에게 작별을 선언하고 성인오락실 사업으로 승승장구한다.
 
영화 '뜨거운 피' 스틸. 사진=키다리스튜디오
 
승승장구할수록 다른 조직과의 크고 작은 마찰이 거듭된다. 각각의 마찰들을 처리하고 거듭할수록 희수는 점점 거칠어지고 괴물이 돼 간다. 깡패였고 조폭이었고 건달이었지만 지역 내 상인들과 주민들에게 신망을 얻고 살던 그였다. 따르던 동생들도 많았다. 그런데 점차 이 모든 것이 자신을 떠나가기 시작한다. 사랑했던 연인의 아들 아미(이홍내)도 거칠게 살아온 아이였지만 자신을 아버지처럼 따르던 녀석이다. 그런데 다른 조직의 손에 잃는다. 연인도 떠나간다. 모든 것을 잃은 희수는 부산의 거대 조직 영도파실제인 30년 지기 철진(지승현)으로부터 모든 비밀을 듣게 된다. 자신을 손 영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자신의 삶의 궤적 자체를 설계해 지금에 이르게 한 장본인이 바로 영도파 회장의 밑그림이란 것.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은 희수다. 모든 것을 알게 됐다. 자신이 사랑했고 자신이 좋아했고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모든 것을 잃었다. 희수는 이제 모든 것을 돌려야 한다. 돌릴 수 없지만 모든 것을 알게 된 이상 그저 당한 것으로 모든 것을 마무리할 수는 없다. 돌릴 수 없다면 최소한 당한 만큼은 갚아줘야겠다.
 
영화 '뜨거운 피' 스틸. 사진=키다리스튜디오
 
뜨거운 피는 제목처럼 뜨겁게그리고 더 뜨겁게를 외친다. 남자들의 얘기란 점 그리고 그 남자들이 조폭이고 깡패란 점. 그럼에도 주된 정서를 이끌어 가는 그들이 조폭과 깡패가 아닌 이른바 낭만파 조폭에 가까웠던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초반 정서는 조폭의 살벌함과 음습함 그리고 축축한 내음이 기분 나쁘게 풍겨 나오지만 정우가 연기하는 희수의 생생함이 이 모든 것을 찍어 누르며 꽤 그럴듯한 밸런스를 맞춰 나간다. ‘부산 토박이정우가 이해하고 또 몸 안에 담아 새겨 놓은 부산DNA’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영화 '뜨거운 피' 스틸. 사진=키다리스튜디오
 
문제는 원작을 해석한 방식일 듯하다. 모든 서사가 희수에게 집중돼 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원작 소설은 두터운 분량답게 모든 인물이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하지만 영화로 전환된 뜨거운 피는 희수 개인의 서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희수를 위해 모든 인물이 기능적으로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희수를 중심으로 둥글게 배치된 모든 인물들이 기능적이다 보니 각각의 에피소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맛도 상당히 떨어진다. 희수와 각각의 인물이 만들어 내는 에피소드는 분명 탄력적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걸 전체로 묶어 연결하면 굉장히 어지럽다. 장르적으로 느와르 그리고 복선을 유기적으로 활용하고 싶었던 듯한데 전체적 맥락으론 산만할 뿐이다. 차라리 희수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스토리라면 이런 장르의 일반화된 전형적 흐름을 따라갔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다.
 
영화 '뜨거운 피' 스틸. 사진=키다리스튜디오
 
시대의 흐름상 조폭 그리고 깡패 아니면 건달을 활용한 생존과 허무의 주제는 고리타분한 면모를 감출 수 없게 됐다. 정우의 연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빛을 발한다. 그게 안쓰럽게 느껴지는 부산 느와르다. 천명관 감독에겐 작법과 연출의 차이를 분명히 느끼게 했을 경험으로 작용한 작품이었을 것이다. 개봉은 오는 23.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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