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늦깎이 검사에서 0선 대통령으로
'8전 9기'사시 패스한 연수원 23기…'강골검사' 활약하다 '공개항명'으로 좌천
국정농단 특검 후 검찰총장 '초고속' 승진…조국사태로 여권·청와대와 대립
정치입문 4개월 만에 26년차 정치인 홍준표와 격돌…제1야당 대선후보로 선출
2번의 당 내홍 및 선대본 전면 개편…배우자 김건희 여사 논란에 곤혹도 치러
'정권교체' 위해 안철수와 후보단일화…사상 첫 검찰출신 대통령 탄생
2022-03-10 04:21:25 2022-03-10 10:41:02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10일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민영빈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사법고시 패스까지 9년이나 걸린 늦깎이 검사였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권력에 밉보여 평검사로 좌천도 됐다. 검찰총장으로 임명돼 검찰개혁을 이끌고자 했지만 정권과 사사건건 충돌하다 사퇴했다. 그렇게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한 그는 제1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이후 2번의 당 내홍과 배우자 의혹 및 논란을 마주해야만 했고, 야권 후보 단일화를 통한 표심 결집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모든 과정을 견뎌냈고, 끝끝내 야권 후보 단일화까지 이뤄냈다. 그렇게 '공정'과 '정권교체'라는 국민적 여망 속에서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것도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의원 0선' 대통령이자, 첫 '검찰출신' 대통령이다.
 
윤석열 당선인의 대학 시절. 9수 끝에 사법시험을 합격한 뒤 찍은 사진. (사진=국민의힘 선대본 제공)
 
윤석열은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그가 12·12사태를 주제로 한 모의재판에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 사건으로 경찰 수배를 피해 외가가 있는 강원도 강릉으로 3개월간 피신했다. 본격 사시 공부에 매진했지만 매번 사법시험 2차 시험에서 낙방했다. '8전 9기' 끝에 아홉 번째 시험인 제 33회 사법시험에서 합격하며 사법연수원 23기로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다.
 
1999년 김대중정부 당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발령받아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의 뇌물수수 혐의'사건을 맡았다. 김대중정부에서 경찰 실세로 꼽혔던 박 국장이었다. 윤석열은 개의치 않고 그를 소환해 하루 만에 자백을 받아냈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칼을 들이밀 수 있다는 성정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후 특유의 선 굵은 수사 스타일로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 불법대선자금 혐의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BBK 특검 △부산저축은행 사건 등 대형 사건 수사 때마다 차출됐다.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 요직을 거쳤다.  
 
윤석열 당선인의 검사시절 수사했던 사건들 갈무리. (사진=SBS '집사부일체' 화면 캡처)
 
윤석열 이름 석자가 전국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13년 박근혜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사건과 관련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윗선의 수사 외압을 폭로하면서다. 일명 '공개항명'이었다. 당시 그의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작심 발언은 연신 회자됐다. 이 사건으로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고 평검사로 2014년 대구고검으로 좌천됐지만,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강골 검사' 이미지를 대중에 제대로 각인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9년 7월25일에는 검찰개혁 적임자로 꼽혀 문재인정부의 두 번째 검찰총장으로 임명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살아있는 권력'에도 엄정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부터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의혹, 김학의 불법 출금 의혹 등 적폐 청산을 위한 수사를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청와대·여권과 멀어지다 못해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이때 검찰 편에 서서 검찰 입장만 대변한다는 이유로 '검찰주의자'라는 평가도 많다.
 
이후 조 전 장관 후임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020년 1월2일 임명되면서 윤석열과 문재인정부는 완전히 결별한다. 추 전 장관은 청와대·여권 수사를 담당했던 윤석열의 참모진을 인사 단행으로 와해시켰고,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서 윤석열의 추천 인사를 모두 승진에서 배제했다. 계속된 '추·윤 갈등'에 결국 윤석열은 지난해 3월4일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총장으로 임명된 지 588일 만이었다.
 
윤석열 당선인이 지난해 11월5일 전당대회에서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최종 선출된 뒤 당선 소감과 함께 각종 질문에 답했다. (사진=국민의힘 선대본 제공)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윤석열은 문재인정부와 대척점에 서면서 단숨에 야권 유력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전국 단위 선거에서 네 차례 연달아 패하면서 집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던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향해 숱한 러브콜을 보냈다.
 
사퇴 후 3개월 정도 재정비의 시간을 보낸 윤석열은 지난해 6월29일 윤봉길기념관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고 자유와 법치를 부정하는 세력이 더 이상 집권을 연장해 국민에게 고통을 주지 않도록 정권을 교체하는 데 헌신하고 앞장서라는 뜻이었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후 117일만으로 사실상 '대권 도전' 선언이었다. 이후 같은해 7월30일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했다. 
 
다만 입당 때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2번의 당 내홍으로 이어지는 수순을 낳았다. 이준석 당대표가 지방 출장을 간 사이에 열린 '입당식'은 올 1월 초까지 불거진 당 내홍의 시작이었다. 지난해 11월말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논란이 한창일 때 이 대표가 서울을 떠나 약 일주일간 잠행을 떠난 것과 올 1월 '윤-이 갈등'이 격화돼 밤새 의원총회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진 게 대표적이다. 
 
윤석열 당선인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 봉합 후 모습들. 1차 울산담판 이후 부산 서면 거리 함께 나선 선거운동(왼쪽)과 의원총회에서 화해하고 서로 꼭 안은 모습. (사진=뉴스토마토/뉴시스 갈무리)
 
이 대표와의 갈등 외에도 각종 논란에 휩싸여 입방아에 올랐다. 경선 토론회에서 손바닥에 쓴 '왕(王)'자가 카메라에 잡히면서 구설수에 올랐고, '전두환 미화 발언'이나 '개 사과' 게시물로 물의를 빚었다. 여기에 배우자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과 허위경력 기재 논란도 있었다. 잦은 논란은 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홍준표 후보의 맹추격을 허용하는 빌미가 됐다. 윤석열이 최종 대선후보로 선출됐지만 민심과 당심의 간극이 큰 후보가 뽑혔다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민심은 홍 후보를 향했던 탓이다.
 
하지만 윤석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둘러싼 각종 논란들을 정면 돌파했다. 당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이 대표가 있는 울산으로 직접 찾아가 담판을 지었고, 이후에 또 터진 당 내홍에서는 매머드급 선대위를 전격 해체하고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과 결별을 선언함과 동시에 이 대표를 안았다. 또 배우자의 허위경력 논란에는 배우자 김씨가 직접 나와 대국민 사과를 하도록 했고, 추후 공개행보를 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진화됐다.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 막바지로 치달을수록 원팀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경선 당시 토론회 전 기념사진 촬영(위)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공동기자회견 후 기념사진 촬영. (사진=뉴시스 갈무리)
 
본격 선거유세 활동을 치르면서는 당내 경선후보들과의 원팀을 이뤄내는데 애썼다. 처음은 원희룡 전 제주지사, 이후에 홍준표 의원, 마지막으로 유승민 전 의원이 차례로 선대본에 합류했다. 특히 원 전 지사는 선대본 정책본부장을 맡아 원팀을 중심축을 잡았다. 홍 의원과 유 전 의원은 상임고문직을 맡는 모양새로 원팀을 구축했다.
 
원팀을 이룬 윤석열은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로 꼽혀온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대선을 일주일 앞둔 지난 3일 드디어 결실을 봤다. 윤석열과 안 대표는 이날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 공동기자회견을 열었고, 가치 연대를 목표로 야권 단일화를 한 뒤 대선 후 합당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후 각종 유세 현장에서 윤석열은 안 대표와 함께 연단에 서 '정권교체'를 시민들에게 약속했다. 
 
윤석열이 걸어온 길은 결국 민심을 움직였다. 정치에 입문한 지 8개월여 만에 윤석열이 공정과 정의를 위해 소신을 지켜온 모든 행적들이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고, 그 기대감은 윤석열을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도록 했다. 윤석열, 그는 1987년 헌법 체제 이후 최초의 국회 경험 없는 '0선' 첫 검찰출신 대통령이다.
 
민영빈 기자 0empt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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