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꽤 오래 전부터 기획이 되고 있단 소식을 전해 들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영화에 여러 배우들이 출연을 고민 중이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일부는 보도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내부적으로 프로젝트 가동에 여러 문제가 있었을 듯싶다. 영화 한 편이 나오는 데 이 정도의 ‘덜그럭거림’은 사실 문제도 아니다. 무엇보다 진짜 문제는 이 영화의 파격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획 당시부터 언론의 주목도 크게 받았다. 출연 거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배우들도 고민을 거듭했지만 섣불리 결정할 수 없어 그랬던 듯싶었다. 연출을 맡은 장철수 감독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과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배우들이 ‘꼭 한 번 작업해 보고 싶은 연출자’로 꼽히던 감독이었다. 그의 신작 작업이니 당연히 호기심이 당길 만했다. 그렇게 이 작품에 여러 배우가 거론되고 또 거론되길 반복했던 듯싶었다. 도대체 누가 이 영화에 출연할까. 그리고 어떤 여배우가 이 영화 속 파격을 견딜 각오를 할까. 23일 그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개봉했다. 그리고 이 영화 속 여주인공 ‘수련’을 연기한 배우 지안은 이제 ‘파격’의 아이콘이 됐다.
배우 지안.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지안은 분명 낯선 이름이다. 2003년 전국춘향선발대회 춘향 진 출신이란 타이틀이 있다. 연기 데뷔작은 2015년 배우 마동석이 주연을 맡은 영화 ‘함정’에서 조연으로 등장했다. 방송은 몇 작품 있지만 눈에 띄는 배역은 아니었다. 그래서 낯설었다. 그런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보면 그가 결코 낯설게 느껴지진 않는다. 새장 속에 갇혀 사는 고혹적인 미모의 여인 ‘수련’이 곧 지안처럼 느껴졌다. 왜 장철수 감독이 그를 ‘수련’으로 선택했는지 고개가 백 번은 끄덕여질 정도였다.
“장 감독님은 2015년 ‘함정’ 시사회에서 만났었어요. 그때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질지는 몰랐어요. 재작년 초여름 때 감독님이 잠시 중단됐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신다고 저한테 연락을 주셨어요.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제가 ‘대지 같고 바다 같고 따뜻하며 기품 있는 여인’이라고 하신 말씀은 저도 뭐라 말씀을 못 드리겠어요(웃음). 아무튼 지금 너무 꿈꾸는 기분이에요.”
배우 지안.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전작 ‘함정’에서도 센 장면이 꽤 있었다. 하지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속 ‘수련’ 캐릭터는 그 강도 자체가 달랐다. 몇 년 동안 충무로에서 여러 여배우가 거론됐지만 출연 결정을 놓고 고심을 벌였을 정도로 그 수위가 남다른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단순하게 노출 수위만 센 작품도 아니었다. 내면의 감정 연기 그리고 독특한 설정에 따른 인물의 기본적 설정을 이해하고 드러내야 하는 연기력이 뒷받침 되야 하는 배역이었다. 이런 배역 출연 결정을 지안은 생각지도 못한 두 사람의 응원으로 결정하게 됐단다.
“시나리오 보고 솔직히 끌렸어요. 그런데 반대로 너무 강한 노출 수위 때문에 당연히 망설였죠. 근데 그때 가족들 가운데 친언니 둘이 출연을 응원했어요. 저도 놀랐죠. 당시에 ‘내 동생이라면 이 작품 안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배우 지안이라면 도전해 봐야 할 것 같다’라고 두 언니가 말해 줬어요. 노출만이 아닌 감정 묘사 부분이 배우로서 큰 성장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응원해줬어요. 지금 생각하면 두 언니에게 제일 감사해요.”
배우 지안.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속 ‘수련’을 보면 좀 이상한 지점을 느낄 수 있다.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딱딱한 말투와 무미건조한 표정 그리고 존재를 알 수 없는 존재감. 이른바 ‘그림자’ 같은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 이런 점은 일부에선 배우 지안의 연기력 논란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잘못 보면 충분히 그럴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지안의 연기는 ‘수련’을 이해하고 만들어 내는 데 반드시 ‘그렇게 해야 했던’ 이유로서 충분하다.
“(웃음) 연기력 논란이라고 말씀하시는 기사도 솔직히 봤어요. 제가 좀 더 잘했으면 그런 말도 안 들었을 텐데, 저한테 아쉽죠. 우선 딱딱한 말투와 그렇게 보인 건 순전히 계산된 설정이었어요. 수련은 군인이에요. 그것도 장교에요. 반대로 제 상대역인 ‘무광’은 사병이죠. 제가 지시를 하는 입장이고. 더욱이 수련은 남편 사단장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여자에요. 새장에 갇혀 사는 관상용 새 같은 느낌이에요. 완벽하게 감정적으로 억눌려 사는 인물이죠. 결코 일반적인 사람이라곤 생각 안 했어요. 감독님도 그렇게 주문하셨고 제 의견에도 동의하셨고.”
배우 지안.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그는 못내 가장 안타까워했던 부분이 바로 이 영화가 ‘노출’로만 관심을 받고 또 ‘노출’에만 모든 것이 포커스가 맞춰지는 지점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이 영화에는 엄청난 수위의 ‘노출’이 등장하는 것은 맞지만 그게 이 영화의 ‘메인’이며 주된 관심사는 절대 아니다. 노출은 그저 수단일 뿐이다. 노출을 통해 이 영화 속 세계관이 말하는 허상과 인물 심리의 변화가 더욱 더 파격적이라고 설명했다.
“당연히 노출이 관심이 될 수 밖에 없는 건 인정해요. 그건 당연하다 여겨요. 그런데 노출보다 더 집중해서 보실 만한 지점이 정말 많은 영화거든요. 영화 속 세계의 아이러니하고 이질적인 공간을 보는 재미도 있어요. 수련과 무광이 감정적으로 수위를 높여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로우실 거에요. 그 변화의 심리에 맞춰 관객 분들의 감정도 따라가다 보면 왜 저 두 사람이 저럴 수 밖에 없는지를 이해하는 과정도 되실 듯하고요.”
배우 지안.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그런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지안은 누구도 모를 자신과의 싸움을 선택하며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 ‘수련’은 기본적으로 외로운 인물이다. 외로움에 사로 잡혀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집착하며 그 선택이 후회되지 않게 스스로를 다 잡아 가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지안은 그 감정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 노력을 위해 자신을 사정 없이 코너로 밀어 넣었단다.
“제가 느껴 보지 못했던 그런 외로움을 위해 실제로 절 고립시켜 봤었어요. 꽤 긴 시간 동안 사람도 안 만나고 연락조차 안하고 완벽하게 외부와 절 차단해 봤었어요. 그때의 느꼈던 감정을 촬영하면서 작품 속으로 끌어 오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어요. 제가 연기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그 감정과 결합해 ‘수련’에게 대입시키려 많이 노력했었죠. 거기에 감독님께서 저도 모르는 저의 다른 점까지 끄집어 내 주셨어요. 제겐 너무 소중한 작품이에요.”
배우 지안.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5년 전 ‘함정’ 출연 이후에도 꽤 많은 시나리오가 들어왔었다. 하지만 대부분 수위가 센 작품과 배역이 많았었단다. 이번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출연 결정도 있었고 출연 결정을 놓고 고심 중 두 언니의 조언도 있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란다. 노출이 있다고 피할 생각은 없고 노출이 문제가 될 건 아니라고. 그 안에서 배우로서 어떤 무엇을 가져갈 수 있는지 만을 고민해 볼 예정이란다.
“저 뿐만 아니라 어떤 배우라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노출은 항상 부담이 있죠. 하지만 노출이 있다고 꺼려할 지점은 아닌 것 같아요. 노출이 있고 없는 것은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이 작품을 출연해야 하는 이유와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놓고 하는 고민만 있을 것 같아요. 이 작품은 그 두 가지 중 ‘해야 할 이유’가 더 컸을 뿐이에요. 앞으로도 ‘해야 할 이유’가 더 큰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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