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형식이 먼저인가, 표현이 우선인가.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에 맞먹는 뫼비우스 논쟁거리다. 2010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 두 편을 연달아 히트시킨 장철수 감독이 2014년부터 붙잡고 있던 문제작이다. 충무로에선 이미 수 많은 배우들이 출연 리스트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특급 스타들부터 그 해 가장 뚜렷한 존재감을 보인 배우들까지. 이 작품에 한 번쯤 출연 거론이 안된 배우들이 없을 정도다. 물론 실제 이 작품이 그 배우들 손에 돌고 돈 ‘헌 책’이라 확신할 필요는 없다. 그건 반대로 이 작품이 그만큼 한동안 충무로 최고 화제작이었단 사실을 반증하는 또 다른 루머일 뿐이다. 그 루머 중심은 이 영화가 원작으로 삼은 작품의 파격성 때문일 듯하다. 이 영화 원작은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 작가이자 중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옌롄커가 썼다. 그리고 이 작품, 엄청난 노출이 등장한다. 물론 노출이 메인 포인트는 아니다. 수단이다. 이걸 어떻게 스크린으로 옮기느냐가 무려 8년 동안 충무로에서 돌고 돈 이 작품에 대한 소문의 실체를 확인시켜 줄 해답이었을 듯하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원작과 영화 제목이 동일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형식과 표현 방식에서 고민의 흔적이 역력했다. 국내엔 2008년 발간된 소설이다. 이 소설 배경은 중국 마오쩌둥 시대가 배경. 폐쇄적 사회주의 시대 속 억압과 그에 반발된 욕망적 해방을 대비시킨 표현 방식은 이 작품 백미이자 하이라이트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 텍스트 언어에서의 표현주의일 뿐. 비주얼 언어에서의 표현방식은 분명 차이를 보여야 한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이 논리적 고민 속에 빠져 힘겨워 했던 지점이 수면 위 파장을 일으키는 원인처럼 드러난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스틸.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내용은 간결하고 무리가 없다. 출세를 꿈꾸는 병사 무광(연우진)은 사단장(조성하) 사택 취사병으로 발탁된다. 사단장의 젊은 아내 수련(지안)과 우연히 깊은 관계에 빠진다. 그 관계의 늪에 빠진 무광은 좀처럼 헤어나오질 못한다. 점차 빠져드는 늪이 욕망인지 출세에 대한 욕구인지 헷갈려질 정도다. 이제 두 사람은 욕망과 욕구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서로에게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된다. 물론 현실이 존재한다. 무광은 시골에 아내와 아이를 둔 어엿한 가장이다. 수련 역시 남편 사단장이 있는 유부녀. 두 사람은 윤리적 관념과 법적 굴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빠져드는 육욕과 물욕의 줄타기는 무광과 수련의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이젠 두 사람조차 서로에 대한 관계의 흔들림을 느낀다. 그 흔들림이 미묘하게 다른 방향성을 갖고 있단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관계의 무게 추를 한쪽으로 급격하게 밀어 버린다. 이 관계, 분명 잘못됐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스틸.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온전히 ‘파격’이란 코드에 포커스를 맞추고 출발했고 과정을 설명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획일화를 우선시하는 사회주의 시스템 속에서 욕망과 욕구는 금기의 영역이다. 모두가 동등한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개인은 집단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 그런 시스템은 역설적으로 위계와 뚜렷한 군부대를 배경으로 이 시스템의 모순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모순의 가장 핵심적 근원인 개인의 욕망과 욕구를 건드린다. 그걸 표현하기 위한 가장 적절하면서도 가장 완벽한 코드가 ‘성’(性)이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스틸.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가장 날 것 그대로의 욕망과 욕구를 위해, 그리고 위계의 가냘픈 모순을 지적하기 위한 ‘성’의 대입은 가장 적절한 방식이다. 온전히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두 남녀 사이에 위계는 이미 사라진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러닝타임 흐름에 따라 수련과 무광의 베드신에 등장하는 의복의 차이가 뚜렷하고 명확해지는 게 이 방식을 드러내려는 연출의 시선일 듯하다. 수련이 군복에서 드레스 결국에는 온전한 나체로 무광을 받아 들이는 장면은 단순한 흐름이라기 보단 위계의 허울을 드러내는 가장 적절한 연출 방식이었을지 듯하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스틸.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두 남녀의 딱딱하고 경직된 대화체 구성도 미묘하다. 문학적 가치 훼손을 최대한 덜하고 싶은 감독의 욕구다. 1970년대 사회주의 중국 사회를 대변한 공간적 스토리를 위해 고려한 지점일 수도 있다. 참고로 영화 속 배경은 중국이 아닌 가상의 사회주의 국가다. 수령과 주석 그리고 군복 등은 북한과 중국의 ‘그 것’을 묘하게 뒤섞은 느낌이다. 이 같은 선택은 공간 속 캐릭터들에게 서사의 장치를 드러낼 수 있는 대사 톤을 조정하게 만든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속 ‘무광’역의 연우진, ‘수련’역의 지안 두 사람 대사가 낯선 느낌은 이런 전제가 깔린 계산된 장치라고 해석하면 될 듯하다. 공간의 서사에 묻힐 수 있는 인물의 서사를 드러나게 힌 설정이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스틸.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문제는 이 영화, 평단과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을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감독이 자극을 위해 이 영화를 선택하지 않은 것도, 두 주연 배우 열연이 노출에만 집중되는 것도 분명 안타깝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그 뒤에 숨은 이유가 분명 존재하는 얘기다. 이 영화를 혼란스럽게 하는 점은 가장 앞에서 언급한 형식과 표현의 충돌일 듯하다. 형식과 표현은 양립될 수도 있지만 선택될 수도 있는 지점이다. 형식 안에 표현이 포함돼 있을 수도 있고, 표현 안에 형식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굳이 선택하자면 전자에 가깝다. 형식 안에 표현이 포함된 영화다. 감독은 원작 훼손을 최대한으로 조율하고 싶었던 듯하다. 영화는 무대극과 스크린 중간 어디쯤 존재하는 이종교배 느낌으로 탄생됐다. 전체 프로덕션의 낡은 느낌은 문학적 가치의 형식을 우선시 해버린 연출과 제작의 선택으로 인해 이 영화 표현 방식인 ‘노출’의 의미를 바닥으로 끌어 내려 버렸다. 노출에만 집중되게 흐트러진 집중도가 아쉽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스틸.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1차 초기 편집본은 무려 3시간에 육박했다 한다. 상영 버전 역시 146분으로 결코 짧지 않다. 하지만 개봉 이후 감독판이 공개된다면 분명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소한 평가 절하될 결과물은 아니란 쪽에 힘을 주고 싶은 이유다. 오는 23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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