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선율 기자]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고팍스가 원화마켓 거래에 합류하게 되면서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이후 얼어붙었던 금융권 실명계좌 물꼬를 튼 것은 고팍스가 처음이다. 그러나 여전히 금융당국이 실명계좌 발급에 보수적인 상황 속 시중 은행들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라도 태도의 전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고팍스는 지난 15일 전북은행과 실명 확인 입출금 계정 서비스 계약을 완료하고, 발급확인서를 취득했다. 고팍스는 은행과 협의해 원화마켓 사업자로서의 변경신고서를 조만간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제출할 예정이다. 사업자 변경 신고 수리는 최대 45일가량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4월 중으로 원화마켓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비트코인. 사진/픽사베이
현재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실명계좌를 받은 거래소는 가상자산거래소로 신고수리한 총 26곳의 거래소 중에서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고팍스 총 5곳뿐이다.
나머지 21곳의 가상자산 거래소들은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해 코인마켓으로만 운영하면서 큰 손실을 입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고팍스의 경우 특금법 시행 전만 하더라도 국내 거래소 중 4~5위권 수준의 거래량을 유지해왔지만 코인마켓으로만 운영이 제한되면서 거래량이 절반 이하로 급감한 상태다. 업체들은 가상자산 시장은 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면 하루 빨리 실명계좌를 확보해 운영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고팍스 소식이 들려오며 일말의 기대를 거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사실상 시중은행들 입장에서도 가상자산 거래소 등 분야를 막론하고 거래처를 늘리는 일이 다급한 실정이다. 생존을 위한 경쟁력 확보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디지털 금융이 가속화되면서 은행들의 오프라인 점포가 축소되고 있고, 인터넷 전문은행, 빅테크의 금융업 진출 등으로 경쟁은 더욱 치열지고 있다. 고팍스와 계약을 체결한 전북은행의 태도 변화는 이러한 어려움들을 타개하기 위한 고민이 반영된 조치로 관측된다.
서점에 비트코인, 암호화폐 관련 서적이 진열된 모습. 사진/뉴시스
중소 거래소 한 관계자는 "고팍스가 먼저 스타트를 끊어줘서 다음 실명계좌 발급도 수월해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면서 "4대 거래소가 아닌 이상 이미 신고 수리가 완료된 상황이라 좀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은행들도 더 많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 측면에서 고팍스 소식은 반가운 일"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도 이번 전북은행의 조치에 환영의 뜻을 전했다. 한국블록체인협회는 "지난해 특정금융정보법 시행 이후 금융당국의 가상자산사업자 심사를 통과했음에도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이 막혀 코인 마켓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다른 거래소들에도 좋은 선례가 되길 바란다"며 "여타 가상자산거래소에게도 공정한 기회가 제공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는 실명계좌를 늘리는 것은 국내 가상자산 생태계 확대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내다봤다. 또 코인마켓 거래소들의 경영을 정상화해 거래소 독과점 논란을 해소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성후 한국디지털자산사업자연합회 회장은 "은행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은행은 생존차원에서 전국화를 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면서 "가상자산 산업이 그간 비주류 경제권에 머물러있다가 최근에는 주요 경제권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은행들의 실명계좌 발급이 활발하게 이뤄지면 국내 가상자산 산업 발전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금융당국 및 은행권에서는 가상자산 고객들의 60% 이상이 소득불안 계층인 2030 세대인 점을 감안해 청년층 및 소득불안 계층 자산보호 차원에서 아직 실명계좌를 발급받지 못한 21개 코인마켓거래소에 대해 조속한 기간 내에 은행 실명계좌가 발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선율 기자 melod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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