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70대의 증명이다. 1947년생 배우 윤여정이 작년 한국 배우 최초이자 아시아 여배우로선 역대 두 번째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올해는 1944년생 배우 오영수가 미국 골든 글로브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는 국제(글로벌) 시상식은 아니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 부문 등 총 4관왕을 이룩한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는 로컬 영화제’라고 지적했던 발언은 지금도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같은 수상 기록이 위대한 이유는 다른 지점에 있다. 미국 사회에서도 콧대 높기로 유명한 백인 중심 잔치의 두터운 벽을 유색 인종 그것도 70대의 노 배우들이 먼저 허물어 냈단 점이다.
(좌) 윤여정 (우) 오영수. 사진/뉴시스
10일 발표된 오영수의 골든 글로브 수상을 포함해 작년 윤여정 그리고 재작년 ‘기생충’까지. 이런 변화는 할리우드 내부의 체질 개선에서 시작된 변화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할리우드는 백인 중심의 견고한 벽이 쌓인 채 성장한 시간이 무려 100년이 넘는다. 미국 사회의 또 다른 축인 흑인이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서 수상한 기록이 현재까지 채 5번이 되지 않을 정도다.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성은 지금까지도 할리우드와 아카데미 그리고 골든 글로브를 공격하는 가장 좋은 타깃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틀을 깨기 위한 변화가 최근 몇 년 전부터 이뤄지기 시작했다. 시상식의 ‘화이트 워싱’(백인 위주)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2014년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로 흑인 감독인 스티브 맥퀸 연출의 ‘노예 12년’에 작품상이 수여됐다. 작년에는 아카데미 주요 부문 3개 상이 모두 유색 인종 차지였다. 감독상에 중국계 그것도 여성 감독인 클로이 자오, 남우주연상은 흑인 대니얼 칼루야, 여우조연상이 70대의 아시아 여성 윤여정이었다. 특히 윤여정은 미국 영화계에선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생경한 인물이었다.
올해 오영수의 골든 글로브 수상 역시 마찬가지로 분석된다. 아카데미보다 더 보수적이란 골든 글로브는 올해 인종 차별과 부정부패 의혹으로 할리우드의 불참 러쉬가 이뤄졌다. 이를 위해 주최측인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이를 타파하겠단 의지를 드러냈다. 그 첫 번째가 오영수의 수상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영수의 TV부문 남우조연상 수상이 신호탄이 됐다.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 변화의 압권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을 바꾼 트렌스젠더 배우 미카엘라 제이 로드리게즈의 TV부문 여우주연상 수상이다.
이런 변화의 흐름에 편승된 단순한 수상 결과만은 아니기도 하다. 윤여정과 오영수의 연기력은 국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윤여정과 함께 작업을 했던 한 영화 관계자는 10일 오영수의 수상 직후 뉴스토마토와의 전화 통화에서 “작년의 윤여정 선생님이나 오영수 선생님은 작품 속에서 연기를 하시지 않는다”면서 “그 정도의 경력이라면 그냥 현장에서 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다”고 전했다.
이런 연기력 내공이 뒤늦게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콘텐츠 시장의 위기와 함께 다가온 변화 때문이다. 글로벌 OTT브랜드 넷플릭스를 선두로 한 OTT플랫폼이 ‘코로나19’ 시대 대세로 떠오르면서 ‘비대면 소비 시스템’이 주목 받게 됐다. 오영수의 ‘오징어 게임’은 이런 시스템의 최대 수혜 작품 중 하나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국내에선 무려 200편이 넘는 연극 작품에 출연해 온 오영수의 연기력은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이런 그의 연기력은 대중과의 플랫폼 접점 문제였을 뿐이다. 대중성보단 마니아층에 국한된 무대극 위주의 활동이 오영수란 대가의 실력을 알리는 유일한 벽이었던 셈이다. 결국 ‘코로나19’로 활성화된 OTT플랫폼이 대중은 물론 글로벌 확산의 기회를 만들어 주면서 오영수의 이번 수상까지 이어졌단 분석이 무리는 아닌 셈이다.
물론 이런 모든 요소를 배제하고 두 노장 배우의 연이은 수상이 정치적 산물이란 시각도 나오고 있다. 할리우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행보가 그 어느 시상식보다 크게 작용하는 무대다. ‘기생충’ 수상 결과가 당시 할리우드의 큰 손으로 불리는 이미경 CJ부회장의 영향력과 홍보 전략이 큰 힘이 됐단 점도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온 팩트다.
그럼에도 확실한 점은 작년 윤여정에 이어 오영수의 수상은 ‘인생은 70부터’란 말이 증명됐단 점이다. 포기하기엔 아직 이르다. 그리고 한 분야에서 묵묵히 정진하면 분명 결과는 따라오기 마련인 셈이다. 그걸 두 노 배우가 증명해 버렸다. 이젠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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