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굉장히 이상한 선택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 8부작을 모두 본 뒤 소감이다. 작년 말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뒤 여러 혹평이 쏟아졌다. 제목 빗대 ‘고요한 참패’란 날선 비판이 쏟아졌다. 물론 극히 일부 언론은 ‘고요의 바다’가 한국 SF장르를 한 단계 끌어 올린 수작이란 평가도 냈다. 지극히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한다면 혹평과 호평 둘 다 잘못된 평가다. 지금까지 쏟아진 ‘고요의 바다’ 혹평과 호평 모두 결과에 대한 평가들뿐이다. 하지만 ‘고요의 바다’는 결과로 평가 받기 보단 과정으로 평가를 받고 시작의 잘못된 점을 지적 받아야 옳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꽤 괜찮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단 ‘시리즈가 아니었다면’이란 전제가 붙었을 때의 결과론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고요의 바다’는 40분 분량 8부작으로 제작됐다. 이미 널리 알려진 내용이지만 원작이 있다. 2014년 미장센 단편영화제 출품된 동명 단편 영화가 원작이다. 당시 배우 정우성이 이 단편을 보고 거침없는 상상력에 이끌려 장편 전환을 기획했고, 스크린이 아닌 넷플릭스 제작으로 방향이 선회됐다.
이 프로젝트 장점은 단편에도 등장한 기본적 상상력 출발점인 ‘아이러니’다. 가까운 근 미래가 배경. 환경 오염과 지구 온난화로 인해 담수화 부족 현상이 지구를 빠르게 잠식해 갔다. 식수는 생명 유지에 가장 중요한 키 포인트다. 전 인류가 식수 배급제로 전환된 상태에서 달 기지에 의문의 사고가 발생한다. 달 기지는 인류 생존 열쇠를 찾기 위한 중요 탐사 프로젝트였다. 우주 생물학자 송지안(배두나)과 탐사 대장 한윤재(공유)를 중심으로 선발된 탐사 대원들. 이들 목적지는 5년 전 사고로 폐쇄된 달 탐사기지 ‘발해’. 기지 안에 남아있는 중요 샘플 회수 후 지구 귀환 임무다. 하지만 이들을 태운 우주선이 달에 불시착한다. 어렵사리 발해 기지에 도착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대원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 시작한다.
'고요의 바다' 스틸. 사진/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탓에 SF장르라고 소개된다. 하지만 사실상 스릴러 장르에 가깝다. 폐쇄된 공간 속 인물들의 심리와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극도의 긴장감. 이 모든 요소를 뒤덮을 수 있는 전체 사건의 충격적 진실까지. 꽤 흥미롭고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를 두루 갖췄다. 배두나 공유 김선영 등 연기력이 보장된 배우들, 여기에 충무로와 드라마 그리고 연극 무대에서 발군의 숨은 실력을 보유한 재야의 고수들까지. 캐스팅 라인업 만으로는 흠결을 잡을래야 잡을 수조차 없다. 하지만 결과는 국내는 물론 글로벌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당히 강한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출발부터 잘못됐다. ‘고요의 바다’는 이른바 상당히 좋은 피지컬을 보유했다. 장편으로 전환될 요소(피지컬)가 충분히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단 점이다. 정우성이 단편에서 거침없는 상상력에 매료됐단 것도 그 점이었을 듯하다. 이 시리즈 최고 상상력, 바로 앞서 언급한 ‘아이러니’다.
'고요의 바다' 스틸. 사진/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속 시대적 배경은 가까운 근 미래. 인류를 지탱하는 필수 자원이 고갈된 시대다. 특히 물이 부족하다. 식수 배급권을 통해 사회적 신분 체계가 나눠질 정도의 세상이다. 이들은 물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요의 바다’ 속 주요 등장 인물들 모두가 그 물 때문에 죽는다. 물을 못 먹어서 죽는 게 아니다. 너무 많은 물 때문에 죽는다. 물이 고갈된 시대에 너무 많은 물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단 ‘아이러니’. ‘고요의 바다’ 기획을 담당한 정우성 그리고 출연 배우인 배두나 공유 김선영 등 베테랑 연기자들 대부분이 이 같은 ‘아이러니’에 매력을 느꼈다 전했다.
‘고요의 바다’는 이들 모두가 느낀 아이러니에 방점을 찍고 달려야 옳다. ‘고요의 바다’ 최고 셀링포인트 역시 이들 모두가 느낀 ‘아이러니’다. 하지만 정작 판이 깔린 상황에선 다른 곳에 시선을 쏟고 또 이곳 저곳 두리번거리는 통에 장르적 핵심인 집중도가 크게 떨어진다. 폐쇄된 공간, 이 공간에서 벌어진 몇 년 전 사건의 비밀, 송지안이 가진 의문에 대한 불필요한 카메라 포커싱, 지구와 달 기지 사이에 벌어지는 의견 차이에 대한 간극 조절 등 너무 많은 내용이 매회 40분 분량 러닝타임 안에 전부 우겨 넣어졌다. 매 순간 단 한 가지, 혹은 몇 가지 요소를 통해 하나의 핵심으로 끌고 가는 연출 방식이 너무 간절한 타이밍이었다. 하나의 시퀀스를 하나의 단편처럼 연출을 해버리니 같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반복된 스토리로만 다가오게 돼 굉장히 지루한 러닝타임이 돼 버렸다. ‘고요의 바다’에 대해 ‘고요하다’란 혹평이 쏟아진 배경이 여기에 있을 듯하다.
'고요의 바다' 스틸. 사진/넷플릭스
각각의 시퀀스가 한 편의 단편처럼 연출이 됐으니 느껴지는 지루함은 이 시리즈 자체 첫 기획에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게 한다. 원작 단편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원작 컨디션이 어떤 정도인지 알 수 없기에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점은 30분 내외 단편을 120분 분량 장편이 아닌 40분짜리 8부작, 즉 총 320분이 넘는 스토리로 전환시킨다면 10배 이상의 무엇을 끌어왔어야 옳다. 아마도 원작 단편 역시 컨디션 자체가 ‘아이러니’에 방점이 찍힌 플롯 구조였을 듯하다. 정리하자면 장편 영화 세 편 분량의 넷플릭스 시리즈로 전환된단 것 자체가 무리한 선택이었다. 이 지점은 초기 기획 단계에서 충분히 먼저 걸러졌어야 옳다.
당연히 120분 분량 내외 장편 영화 밑그림 안에 ‘고요의 바다’는 담겨 질 수 있는 구조다. 초보 연출 감독 문제도 아니다. 기본적 원작 단편 자체의 탄탄함(관람하지 않았지만 넷플릭스 8부작 시리즈로 미뤄 짐작하면)이라면 초보 연출자조차도 충분히 컨트롤할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무엇보다 이 시리즈를 연출한 감독이 원작 단편을 만든 감독이라면 이 확신은 팩트가 된다.
'고요의 바다' 스틸. 사진/넷플릭스
결과적으로 ‘고요의 바다’가 인정해야 할 패착 원인이라면 스토리와 구성이 아니다. 이건 결코 지루한 얘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형 SF영화 수준을 끌어 올린 수작도 아니다. 꽤 탄탄한 장르 상업 영화를 책임감 없이 8부작 드라마로 전환시킨 책임 소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뿐이다. ‘코로나19’ 이후 상영업 시장의 극심한 불황에 따른 OTT전환 결정이 배경이었다면 좋은 콘텐츠가 근시안적 기획에 망가져 버린 첫 번째 예로 남아 버릴 작품으로만 기억돼야 한단 점이 ‘고요의 바다’ 입장에선 가장 슬프다. 넷플릭스 서비스 중.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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