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지극히 개인적 관점이다. 상업 영화 장르에서 ‘뮤지컬’이란 개념은 장르적 속성이라기 보단 일종의 이종교배적 느낌이 강하다. 온전히 스크린에 투사된 영상 그리고 영상 이전 무대극. 그리고 노래가 결합된 상황. 상당히 낯선 결과물이고 대중성이란 포괄적 개념보단 마니아적인 취향의 해석력을 더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영화 역사상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 히트메이커’들은 대부분 상업 영화 장르가 큰 틀에서 완성되기 전인 1970년대 이전 탄생됐다. 지금 시각에서 보자면 ‘클래식’이다. 결과적으로 ‘고전’이라 명명된 이 장르가 21세기 전 세계 상업 영화 역사상 최고 거장으로 불리는 스티븐 스필버그 손에 재탄생 됐단 점은 그래서 의미가 심상치 않다. ‘클래식 중에 클래식’ 히트 넘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다.
1950년대 후반 미국 뉴욕 맨해튼 슬럼가 ‘웨스트 사이드’. 두 갱단이 치열한 텃세 싸움을 벌이는 지역이다. 폴란드계 백인 갱단 ‘제트파’ 그리고 푸에르토리코 출신 중심 남미 갱단 ‘샤크파’. 이들은 서로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인 앙숙이다. 웨스트 사이드는 몇 년 뒤면 모두 허물어지고 최고급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 하지만 제트파와 샤크파 모두 슬럼가 출신 빈민들. 그들은 이곳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또 더 이상 밀려날 곳도 없다. 그래서 서로에게 더욱 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릴 뿐이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미국에서 나고 자란 제트파 눈에 이민자 출신 샤크파는 고깝게 보일 뿐이다. 자신들의 자리를 조금씩 뺏어가는 약탈자들로 보인다. 샤크파의 뿌리인 푸에르토리코 이민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자신들을 유색인종으로 몰아붙이며 막 대하는 백인들에게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제트파라고 별 수 없다. 같은 백인이지만 정통 미국인들과는 다른 취급을 받는다. 물론 이들을 이렇게 벼랑 끝까지 몰아 붙인 이들은 돈 많은 백인 상류층 들이고.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하릴없이 서로를 혼내 줄 싸움질만 생각하는 양쪽이 또 다시 부딪친다. 양쪽 모두 참가하는 댄스파티. 한치의 양보도 없이 서로를 견제하며 댄스 대결을 벌인다. 그 순간 운명의 장난이 일어난다. 제트파를 만든 ‘제트파’ 전설 토니 그리고 샤크파 리더 베르나르도의 여동생 마리아. 두 남녀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단 번에 서로에게 반한다.
토니와 마리아의 사랑이 싹틀수록 제트파와 샤크파 대립은 더욱 격해진다. 제트파 리더 리프와 샤크파 리더 베르나르도가 일대일 대결을 벌인다. 이 대결을 알게 된 토니와 마리아. 마리아는 토니에게 도움을 청하고 토니는 두 사람 싸움을 말리러 현장으로 간다. 하지만 토니와 마리아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사고가 발생한다. 그리고 두 사람 관계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흘러가게 된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SF장르부터 액션 어드벤처 그리고 시대극과 드라마까지. 전 세계 상업 영화 역사상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아우라는 장르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힘 그 자체였다. 직접적 연출작부터 그의 손길이 닿은 기획 제작된 작품까지 언급한다면 모두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란 것은 상식이다. 그런 이 거장의 영역에 단 하나 빠져 있던 미지의 영역이 바로 ‘뮤지컬’이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스티븐 스필버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1961년 한 차례 영화로 만들어 진 스크린 원작 스토리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은 원형에 가깝다. 대립과 충돌의 얘기를 그대로 고스란히 담아냈다. 문제는 1950년대 후반 시대의 대립과 충돌 그리고 21세기 현재의 대립과 충돌 개념이 너무 벌어져 있단 점이다. 그 당시 사람과 사람의 충돌이 사건을 만들어 내는 구조였다면 21세기 현재의 충돌은 세계와 세계의 격돌이다. 이런 간극을 좁히는 점은 사실 딱 한가지였을 뿐일 듯했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방법이다. 고전 원형에 손을 대지 않는 연출 묘미를 살리며 클래식 전통을 살려내는 것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대립 구조다. 서로 앙숙인 두 집단 그리고 그 집단에 속해 있는 10대 남녀의 러브스토리. 하지만 이뤄질 수 없는 관계와 비극.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대립과 충돌이 만들어 낸 관계 그리고 사랑으로 이어진 희망 하지만 죽음으로 달려가는 비극적 스토리가 고전 클래식 히트 넘버 요소와 전형성을 고스란히 따라간다. 원작의 유명 장면인 발코니 러브 테마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전체 백미 중 한 장면.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런 전형성 안에는 뮤지컬 원작 히트곡 넘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투나잇’ ‘마리아’ 등 원작 뮤지컬을 단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은 뮤지컬 초보들조차 한 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명곡들이 가득하다. 오프닝 그리고 중간중간 이어지는 뮤지컬 영화 특유의 멋들어진 군무, 어지럽지만 치밀하게 계산되고 연출된 듯한 군중씬 등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고전의 원형 그대로. 그리고 21세기에 선보이는 1950년대 갈등의 스토리. 새로울 것 없다. 하지만 이 얘기에서 현재가 보이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갈등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 영화 속 푸에르토리코 샤크파의 스페인어 대사는 의도적으로 번역되지 않은 채 상영된다. ‘영어를 쓰라’고 강조하는 극중 대사가 기묘하게 현재의 미국 사회, 나아가 비주류에 대한 주류의 폭력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스틸.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상업 영화 사상 최고 거장이자 신으로 불리는 스티븐 스필버그다. 그가 말년에 신작으로 연출 컴백을 했고, 그 컴백 작품이 뜬금 없게도 뮤지컬 넘버란 것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하지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보고 난 뒤라면 이 거장의 선택이 지금 시대에 무엇을 얘기하려 했는지를 충분히 곱씹게 된다. 비록 영화이지만 비극으로 마침표를 찍는 이 얘기가 더 이상 현실에선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오는 12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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