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미루고 미뤘던 개봉이었다. 12월 말 개봉일을 확정했다. 하지만 최근 다시 감염자 폭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확산되면서 개봉이 또 다시 미뤄졌다. 내년 1월 말 개봉이 확정됐다. 이 시기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한 달여 남긴 시점이다. 영화 ‘킹메이커’가 이 시기에 개봉하면서 묘한 추측까지 끌어 낼 듯하다. 이 영화는 고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선거 참모였던 고 엄창록씨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창작극이다. 영화 전체의 굵은 뼈대는 사실 그대로에 가깝다. 포털사이트 검색만으로도 두 고인의 관계와 당시 사건 일화를 엿볼 수 있다. 물론 영화 속 두 인물의 디테일한 관계 그리고 여러 설정은 온전한 창작이다.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은 이 영화의 초기 가제를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로 잡은 바 있다. 고 엄창록씨의 실제 별명이 ‘선거판의 여우’였다. 별명처럼 그는 여우 같은 꾀를 쓰며 상대를 전략적으로 무너트리는 ‘꾼’이었다. ‘선거’란 전쟁터의 명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영화 속에서도 묘사된 것처럼 ‘그림자’로만 불려왔다. 밝은 햇볕은 받으며 주류 정치 무대로 등장하지 못했다. ‘과정은 필요 없다, 오롯이 결과만 중요하다’ 생각한 그의 전략, 반대로 ‘과정이 정당해야 결과도 정정당당해 질 수 있다’고 믿은 고 김 전 대통령의 신념. 영화에선 고 김 전 대통령이 정치인 ‘김운범’(설경구), 고 엄창록씨가 ‘서창대’(이선균)란 인물로 등장한다. 누구의 신념과 전략이 더 올곧은 것이고 정의인지. 판단은 지금을 살아가는 관객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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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적 배경은 실제 두 인물이 활동하던 1960년대 말부터 19070년대를 거쳐 영화 마지막 1997년 말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고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된 것을 마지막 장면으로 막을 내린다. 물론 영화에서 15대 대통령 당선자는 김운범이다. 사실 김운범은 힘도 없고 빽도 없고 지지율도 그저 그런 인기 없는 정치인이었다. 당선은커녕 당연히 낙선이 확실한 상황에서 선거에 출마한 ‘돈키호테’ 같은 스타일이다. 그런 그의 모습이 이북 출신이면서 강원도 인제에서 약방을 하던 서창대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공화당 정권이 굳건하고, ‘관권’과 ‘금권’이 버젓이 자행되던 그 시절 서창대는 김운범을 통해 판을 깨버리고 싶은 욕심을 내 본다. 모두가 불가능하다 여기지만 그의 눈엔 가능성만 보였다. 그게 김운범이란 인물을 통해서만 가능해 보였다. 그의 올곧은 신념이 자신을 휘어 잡았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서창대는 ‘애기똥풀’을 동봉한 편지 한 통을 김운범에게 보낸다. 잘못 쓰면 독이지만 잘 쓰면 약이 되는 ‘약재’다. 서창대는 자신을 ‘애기똥풀’이라 비유한다. 그만큼 자신 있단 얘기다. 고지식한 정치인 김운범은 서창대의 자신만만을 믿어본다. 그 믿음은 현실이 된다. 서창대는 ‘이기기’ 위해선 정공법은 물론 상대를 속이는 계략에도 능수능란했다. 상대의 관권과 금권을 역으로 이용하는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한다. 그는 김운범이란 도구를 이용해 ‘공화당’ 정권을 무너트리고 제도권 밖에 존재하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도 제대로 대접 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한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서창대의 계책대로 김운범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다. 이제 대통령 선거다. 이에 앞서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한다. 김영호(유재명), 이한상(이해영) 등 같은 신민당 내 40대 신진 세력과 함께 공화당 정권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에 의기투합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김영호와 이한상의 지분 싸움이 존재한다. 당 대표인 강인산(박인환)과 지분 논의를 끝낸 김영호 그리고 캐스팅 보트를 쥔 이한상.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모르고 정공법만 고집하는 김운범. 누가 봐도 김운범의 경선 승리는 어렵다. 그럼에도 서창대는 또 다시 승리를 만들어 낸다. 이제 그는 ‘선거판의 여우’가 됐고, 김운범의 확실한 ‘그림자’가 됐다. 김운범에게 남은 것은 이제 대선이다. 서창대는 더 화끈한 계책을 내세운다. 문제는 마지막 한 판에서 김운범은 솔직함을 내세운다. 서창대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결과가 정의로우면 과정은 상관 없는 계책을 고집한다. 마지막 한 판에서 김운범과 서창대를 서로의 신뢰 관계에 금이 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은 민주주의를 꿈꿨다. 하지만 꿈을 얻기 위한 방법의 차이는 분명했다. ‘더 이상은 안 된다’며 선을 그은 김운범, 그리고 ‘왜 더 이상은 안 되냐’며 안타까워한 서창대.
영화 '킹메이커' 스틸.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2017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흥행 역주행 그리고 골수 마니아를 만들어 낸 변성현 감독은 그 이후부터 시간을 무려 60년 전으로 돌린다. 1960년대 정치판의 물고 물리는, 속고 속이는 선거에 주목한다. 전작 ‘불한당’에서도 그랬고, ‘킹메이커’에서도 그랬다. 그가 주목한 판의 목적은 ‘힘’이고 ‘권력’이었다. 그 판은 세상을 좌지우지했다. 그 판을 거머쥐는 사람이 모든 것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반대의 한 남자는 버림을 받는다. 그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그리고 과정을 끌어가는 인물은 한 남자와 또 다른 한 남자가 모든 걸 의미한다. 변성현 감독이 ‘불한당’으로 큰 재미를 본 뒤 습득한 듯한 공식이다. 단 두 작품이지만 ‘불한당’과 ‘킹메이커’는 꽤 그럴듯하게 닮은 구석이 많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시계를 무려 60년 뒤로 돌린 그 곳에서도 무언가를 얻고 모든 것을 잃는 남자가 각각 자리한다. 김운범은 언제나 밝은 빛 속에서 모든 것을 정의롭게 그리고 공정하게 상식적으로 끌어간다. 과정이 공정하니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요즘 시대 우리가 기억하는 정치판의 슬로건이다. 들어봤다. 그리고 그는 지금을 책임지는 시대 정신의 시작이다. 지금을 보기 위해 60년 전 엄혹했던 시기로 시계를 되돌려 지금의 소중함을 되새기자는 의도라면 수긍된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김운범과 같은 곳을 바라봤지만 사실 서 있던 곳은 정반대였던 서창대.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것에만 집중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얻어야 했다. 그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었다. 처음부터 욕망을 드러내진 않았다. 그는 단순히 김운범을 통해 엄혹한 세상 속 차별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점차 그의 빛을 통해 희망이 아닌 욕망을 나아가 욕심을 바라봤는지도 모른다. 영화에선 그가 선택했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던 방식을 시대의 흐름에 잡아 먹혀 버린 과거의 정치였다. 그때도 지금도.
영화 '킹메이커' 스틸.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시대를 조망했고, 지금을 되돌아 보게 한 얘기다. 맞다. 하지만 이 얘기가 기묘하게도 어설퍼 보이는 건 의외로 변성현 감독 장기라고 소개되는 남자와 남자의 관계성 조합이다. 브로맨스라 불리는 두 남자 얘기를 통해 기묘한 감정 격돌을 그려낸 ‘불한당’의 이입은 ‘킹메이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운범은 그 자체로 가장 완벽한 얘기이며 존재감이다. 반면 서창대는 그가 갖고 있던 희망과 욕망의 간극이 이 영화에선 드러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 김운범과 서창대의 관계가 ‘킹메이커’란 얘기를 위해 아주 단순하게 기능적으로만 존재하고 있단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두 남자의 관계가 기능적으로만 존재하게 되니 얘기 자체의 무게가 한 없이 가냘퍼 질 뿐이다. 실제 이 영화 속 얘기는 포털사이트 ‘엄창록’ 검색에 고스란히 등장한다. 영화 속 잔가지만 사실상 각본 단계와 각색 과정에서 더해지고 창작됐을 뿐이다.
영화 '킹메이커' 스틸.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코로나19’로 인해 2021년 12월 29일 개봉에서 1월 말 설 연휴 기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선택이 호재가 될지, 아니면 이후 한 달여 뒤 실제로 벌어질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악재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할 듯하다. 물론 호재와 악재의 당사자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2022년 1월 말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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