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미쳤다’란 표현이 텍스트 그대로의 의미보다 ‘찬사’에 대한 의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기괴하다’란 표현은 그 의미 그대로 쓰여지지만, 대부분 중의적 의도는 설명 불가능한 어떤 지점을 대체할 때 사용된다. ‘미쳤다’와 ‘기괴하다’의 사용법이 의도 그대로였다면 차라리 다행스러울 것이다. 그 반대 의미와 요즘 사용법 그 중간 어딘가에 존재할 수 있을까. 쥘리아 뒤크루노 감독 ‘티탄’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내리고 싶다. 쥘리아 뒤크루노 감독은 올해 열린 제74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티탄’의 연출자다. 이 감독은 74년 역사 칸 국제영화제에서 1993년 ‘피아노’로 ‘패왕별희’(감독 첸카이거)와 공동 수상한 제인 캠피언 이후 두 번째 황금종려상 수상 여성 감독이다. 여성 감독 단독 ‘황금종려상’ 수상은 칸 국제영화제 역사상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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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탄’에는 양극단의 표현이 집중된다. 당연히 나쁜 쪽과 좋은 쪽이 혼재된 표현과 찬사다. 나쁜 쪽도 의미 그대로 ‘나쁜’게 아니다. 거칠고 예술성에서 극단을 보이는 지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더해진 것은 일괄적이다. ‘기괴하다’란 점. ‘티탄’은 굉장한 하드코어 스타일의 영화 작법을 채용했다. 눈을 질끈 감게 만들고 손을 꽉 쥐게 만들어 손바닥에 손톱 자국을 패이게 할 정도다. 사실 따지고 보면 ‘과하다’ 싶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티탄’을 넘어선 하드코어 작품들은 넘치고 또 넘친다. 그럼에도 ‘티탄’이 ‘괴물’이라 표현된 것은 앞선 그것들과의 뚜렷한 차별성이다. 전후 맥락의 극단적 생략. 국내 영화계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는 ‘개연성 타령’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다. 이 영화 속 모든 것은 ‘이유’가 없다. 처음부터 그랬다.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그렇기에 개연성은 ‘티탄’에선 의미가 없다. 이건 그 자체로 온전한 팩트다. 쥘리아 뒤크루노 감독이 수상 직후 “괴물을 받아 준 칸 심사위원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한 바 있다. ‘티탄’은 그렇게 괴물로 태어난 ‘괴물’ 그 자체다.
영화 '티탄' 스틸. 사진/(주)왓챠·(주)영화특별시SMC
주인공 알렉시아(아가트 루셀)는 어린 시절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 사고로 인해 수술로 머리에 티타늄 보조기구를 심은 채 성장한다. 이후 성인이 됐다. 춤을 추는 댄서가 됐다. 그가 춤을 추는 곳은 클럽인지 아니면 어떤 목적이 있는 곳인지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것은 수 많은 고성능 차량과 남성들. 알렉시아를 포함해 여성들은 차량 위에서 춤을 춘다. 남자들은 그들을 보고 성적 판타지와 흥분을 쏟아낸다. 알렉시아의 머리 오른 쪽 귀 뒤편에는 어릴 적 티타늄을 박은 수술의 상처가 기묘한 문양으로 드러난다. 묘한 상징성으로 다가온다. 날카롭고 강렬하다. 또 공격적이다. 샤워 도중 자신의 머리카락과 동료의 은밀한 부위 피어싱이 뒤엉킨다. 알렉시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잡아 뜯는다. 귀 뒤 티타늄 상흔이 칼이 된 듯 상징적 장면이다. 상흔 뒤 티타늄은 영화 제목 ‘티탄’처럼 인간의 물성 자체를 바꿔 버린 전복의 상징과 모멘텀이다. 이 장면부터 알렉시아의 기행과 인간적 물성은 변화와 변질을 거듭하면서 폭주한다.
자신을 기다린 남성 팬의 치근댐과 성적 접촉 시도에 머리의 비녀 모양 액세서리로 가차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맥락이 없다. 그저 죽였다. 죽인 남성이 남긴 상흔을 씻기 위해 샤워를 하던 중 끔찍한 소리에 이끌려 밖으로 나간다. 그곳에선 알렉시아를 기다린 건 자동차. 완벽한 나체의 알렉시아는 차에 올라탄다. 자동차와 인간의 성적 접촉. 샤워실에서 동료 여성의 은밀한 부위 피어싱과 엮인 자신의 신체를 힘을 뜯어 버린 순간부터 알렉시아의 위태로웠던 ‘인간의 물성’은 끊어졌다. 그 이후부터 알렉시아는 인간과 기계 중간 어딘가 새로운 존재가 돼 버린 듯했다. 살인에서도 감정의 맥락이 없다. 자신을 위협하는 대상에 대한 물성 자체를 인식 못한다. 그의 ‘물성 부존재’는 이제 폭주뿐이다. 자신의 동료조차 느닷없이 살해한다. 이 장면에서도 알렉시아의 인식론은 여과 없이 드러난다. 여성 동료와의 성적 접촉과 살인이 그에겐 경계의 부존재다. 급기야 알렉시아는 자신의 부모까지 살해한다. 직접적 살해 장면이 등장하지 않지만 ‘당연히 죽였을 것’이라 여겨진 장면으로 ‘물성 부존재’에 기름을 붇고 불을 당긴다. 화면에서도 거대한 화염은 솟구친다.
영화 '티탄' 스틸. 사진/(주)왓챠·(주)영화특별시SMC
개연성이란 차원은 여기까지 오면 의미와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다. 알렉시아는 급기야 자신의 성적 젠더 전복까지 일궈낸다. 연속된 살인의 유력 용의자로 거론된 그는 머리를 깎고 코뼈를 스스로 부러뜨려 남성 ‘아드리앵’으로 변모한다. 경찰서에서 알렉시아는 한 남성과 만난다. 10년 전 실종된 아들을 찾고 있는 남자 빈센트. 앞서 알렉시아는 ‘10년 전 실종된 아들을 찾는다’란 광고를 봤다. 그 아이로 자신을 변화 시켰다. 하지만 남자가 됐다. 10년의 시간이 존재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못 알아볼 빈센트가 아니다. 알렉시아도 두렵다. 그런데 빈센트는 알렉시아를 아들 아드리앵으로 받아 들인다. 이제 그는 아드리앵이다.
문제는 남자가 된 아드리앵의 배가 불러온단 점. 여자 알렉시아일 때 차와 나눈 성적 접촉이 문제였다. 생리가 끊기고 시커먼 기름이 ‘그곳’에서 흘러나온다. 가슴에선 하얀 모유가 아닌 시커먼 기름이 뿜어져 나온다. 점점 불러오는 배는 살이 트고 찢겨지면서 번쩍거리는 쇳덩이를 드러낸다. 알렉시아, 아니 아드리앵은 당황한다. 이제 관객들도 당황한다. 알렉시아는 여자인가, 아드리랭은 정말 남자이고 빈센트의 아들일까. 뱃속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명일까. 그게 아니면 뭘까. 그리고 빈센트는 정말 알렉시아를 아드리앵으로 아는 걸까. 아니면 이 모든 걸 보는 우리 관객이 뭔가 착각하는 걸까.
영화 '티탄' 스틸. 사진/(주)왓챠·(주)영화특별시SMC
‘티탄’은 극악스럽다.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장면이 꽤 많다. 손을 꽉 쥐고 두 다리를 움찔거리게 만드는 내용이 거의 전부다. 하지만 ‘티탄’보다 더 극악스러운 영화들은 너무 많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극악스럽다’란 표현을 독점한다면 무조건 찬성이다. 순전히 연출을 맡은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물성 배제론’에 힘을 얹는 일종의 전복형 ‘원죄론’에 기인한다.
‘티탄’이 비슷한 부류의 작품보다 더 잔인하고 더 끔찍하고 더 무모할 정도로 극단성을 띄는 점은 ‘그냥 그렇다’는 원론적 접근법 때문이다. 이건 이런 말이다. 우리 사회는 모든 면에서 시스템을 탓한다. 규범을 탓하고 규율을 문제 삼는다. 인간에 대한 성악설과 성선설이 지금도 명목적으로 대치된 상황이지만, ‘티탄’은 ‘그냥 그렇다’란 점에 시선을 둔다. 알렉시아는 그렇게 머리 속 티타늄 조각으로 인해 변모된 게 아니다. 사실 그는 그냥 그렇게 태어난 인간일 수도 있다. 그게 잘못은 아니다. 그는 그렇게 태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했다. 그렇게 태어난 게 그에게 문제라면 그걸 억제하는 모든 시스템과 규율 규제 규범 자체가 문제다. 일종의 역설적 접근법이다.
영화 '티탄' 스틸. 사진/(주)왓챠·(주)영화특별시SMC
역설이지만 오히려 ‘정설’일 수도 있다. ‘티탄’ 속 감정은 가장 원초적이면서 가장 근본적 지점이다. 그냥 그대로 그렇게 있던 모든 것들에 대한 얘기다. 알렉시아는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다. 빈센트는 처음부터 알렉시아가 아들 아드리앵이 아니란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둘 다 그 자리에 그렇게 존재하고만 있다. 존재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알렉시아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궈나간 살인과 성적 접촉(‘섹스’란 행위와는 다른)은 ‘티탄’의 위압적이고 악독한 묘사의 ‘부연’이 아닌 일상의 범주에서 해석될 기괴함이다.
하지만 ‘티탄’에게 일관되게 ‘기괴’하고 ‘충격’적이란 수식어가 따라오게 만든 점은 종국의 마침표에 존재한다. 영화 자체의 종결점에 등장한 경악스런 비주얼은 이 영화를 단순한 관람이 아닌 체험의 영역으로 끌고 간 감독의 진짜 노림수다. 사실 ‘티탄’은 ‘그냥 그렇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기어코 괴물이 돼 버린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 자아를 만나기 위한 기이하고 기묘한 여정이다.
영화 '티탄' 스틸. 사진/(주)왓챠·(주)영화특별시SMC
‘티탄’을 ‘괴물’이라 부른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수식어를 전부 끌어와 동의하고 싶다. ‘티탄’에게 올해 최고 영예를 기꺼이 선사한 칸 국제영화제가 드디어 영화 언어의 틀을 깨는 시작을 마련했다. 다시 단언하지만 ‘티탄’은 괴물이다. 더 놀라운 점은 그 괴물이 우리 모두에게 존재한 단 걸 증명했다. 우리 모두가 ‘티탄’이다. 12월 9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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