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탄소중립과 기후위기는 유행어가 아니다
입력 : 2021-12-06 06:00:00 수정 : 2021-12-06 06:00:00
어느 한 시기에 널리 쓰이다가 사라지는 단어나 구절, 또는 한동안 여러 사람의 입에 널리 오르내리는 말을 유행어라고 한다. 가장 최근 유행하는 말로는 드라마 오징에거임에 등장하는 ‘깐부’를 꼽을 수 있다. 딱지치기나 구슬치기와 같은 놀이를 할 때 동맹을 맺고 놀이 자산을 함께 공유하는 가장 친한 친구, 짝꿍, 동반자를 뜻하는 은어다.
 
새로운 정책을 기획하고 예산을 배정하는 정부 부처에서 최근 탄소중립과 기후위기 대응이 화두다. 공무원들의 입길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전반기에 공무원들의 뇌와 입을 점령했던 포용, 혁신이란 단어들이 밀려나고 그 자리를 탄소중립과 기후위기가 대체된 듯한 인상을 준다. 포용, 혁신, 탄소중립, 기후위기와 같은 말은 단순한 단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자 비전이다.
 
이명박 정부 때는 녹색성장이란 말이 지금의 탄소중립처럼 공무원 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기후변화와 환경훼손을 줄이고 청정에너지와 녹색기술의 연구개발을 통하여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는 등 경제와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성장을 우리는 녹색성장이라고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끝나고 얼마 뒤 잘 알고 지내던 한 고위관료가 이렇게 털어놓았다. 당시 녹색 또는 녹색성장이란 말이 들어간 예산이나 정책, 프로그램은 제대로 따지지 않고 예산을 배정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부처에서 앞 다퉈 실제로는 녹색성장과 무관하거나 관련성이 떨어지는 정책에 이들 단어를 넣어 예산을 따는 것이 유행병처럼 번졌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관료들이 이와 비슷한 행태를 최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2050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하겠다며 내년 2조5천억 원 규모의 기후대응기금을 신설하기로 했다. 한데 기금 집행 대상에 기후위기 대응을 거스르거나 관련성이 약한 사업을 대거 포함해 최근 국회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교도소에 운동기구를 확충하고 쉼터를 조성하는 사업도 탄소중립을 위한 녹색 사업으로 둔갑했다. 공공시설에 정원을 꾸미거나 실내정원을 만드는 일도 ‘탄소중립 도시 숲 조성’이란 이름표를 달고 낙점을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는 지리산, 한라산, 미시령 등에 친환경, 즉 전기 산악열차를 운행하기 위한 사업으로 72억 원을 배정해달라는 것도 들어 있다. 산악열차 궤도를 만들려면 산림훼손은 불가피하다. 이것이 기후 대응 사업이라니 정말 황당하다. 그동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공무원들이 예산을 배정받고 싶어도 받기 어려웠던 사업들에 녹색 칠을 해 국회와 국민을 속이는 행태인 셈이다. 한마디로 녹색이 아닌 걸 잘 알면서도 녹색이라고 시치미 떼는 것이다. 이는 겉과 속이 다른 표지갈이에 다름 아니다. 
 
이런 사이비가 활개를 치면 진짜도 의심받는다. 정책에는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가 봐도 이상한 사이비 탄소중립·기후대응 사업을 진짜라고 오리발을 내미는 관료들의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과거 이명박 정부 때 이미 성공적인 경험을 한 바가 있기 때문에 그런 썩은 전통이 지금에 와서도 재현되는 것이 아닐까싶다. 하지만 더는 공무원들의 이런 행태를 묵과해서는 안 된다. 국회가 엄격하게 심사해 제동을 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감사원 등이 나서 끼워 넣기 행태가 어떻게 벌어질 수 있었는지, 해당 부처와 기관의 장들과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알고도 묵인했는지를 낱낱이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행정적인 책임도 물어야 한다. 또한 그런 일이 두 번 다시 이런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탄소중립 목표 달성과 기후위기 대응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펼치라고 지시했으면 했지 사이비 탄소중립·기후대응 사업을 끼워 넣으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이번 사안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또 문제가 될 만한 사업들을 철회하고 없었던 일로 치부하며 넘어갈 문제도 결코 아니다. 이런 행태는 우리 사회가 온 힘을 기울이고 국민이 하나가 되어 힘쓰고 지향해야 할 탄소중립과 기후대응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다. 이런 발상과 행태를 보이는 관료는 탄소중립·기후위기 사회의 적이다. 정말 그 끼워 넣기 사업들이 꼭 필요한 것이라면 녹색 옷을 입혀 속이려 하지 말고 제 모습 그대로 인정받는 것이 올바른 태도다. 탄소중립과 기후위기는 잠시 반짝 관심을 받는 유행어가 아니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보건학 박사(jjahnpar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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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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