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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당신의 미래, 의심하지 마세요
2021-12-03 00:00:00 2021-12-03 00:00:00
“난 내가 뭘 잘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다른 애들은 전부 잘하는 게 있는데. 내가 잘하는 게 있긴 한 걸까.”
 
나들이 가던 중 딸이 던진 말에 운전대 잡은 손이 휘청거렸다. 사춘기 딸이 자신의 고민거리에 대한 첫 토로를 했다. 딸을 키워온 이후 나름 가장 센 발언이었다. 아빠로서, 부모로서, 무언가 그럴듯한 말을 해줘야 한다.
 
무슨 말을 할까. 올해 돌아가신 아버지와 아직도 매일 잔소리 중이신 어머니가 어릴 적 내게 무슨 말을 했던가 잠시 생각했다. “좋은 대학 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선 학벌이 중요하다” “대학 못 가면 인간 취급 못 받는다등 공부하란 말밖에 기억이 안 났다.
 
나도 딸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단 말을 해야 할까. 잘하는 게 없는 건 잘할 때까지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더욱 집중해서 공부하란 말을 해야 할까. 하지만 난 그런 말 할 자격 없다. 나 또한 공부하란 부모님 말씀 지겹게 안 들었다. 그리고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채 대학생이 됐고, 졸업해 사회에 뛰어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거나 패배자의 길을 걷고 있는 건 절대 아니다.
 
그래, 잘하는 게 무엇인지 몰라도 된다. 인생 어찌될 지 정말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구분해 선을 긋는 것이 아니다. 잘하는 게 없거나 잘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만 현재를 사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미래는 정말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우리 삶을 이끌어 간다.
 
갑자기 머리가 정리되는 느낌이다. “, 그냥 모르겠으면 지금부터 그리고 제대로 알 때까지 최선을 다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놀고 최선을 다해 동생과 싸움도 좀 하고, 최선을 다해 밥 먹고 최선을 다해 잠도 자.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내가 잘하는 거 좋아하는 거 나중에 저절로 알게 돼 있어.”
 
딸에게 내 얘기를 들려줬다. 난 세상에서 글 쓰는 일을 가장 싫어했다. 초등학교 때 독후감은 한 번도 제대로 써 제출한 적 없다. 군복무 시절 훈련소 입소 후 부모님에게 보내는 첫 편지가 쓰기 싫어 차라리 얼차려를 받았다. 그랬던 내가 글 써서 밥 벌어먹는 인생을 살고 있다. 좋아해서가 아니라 잘하기 때문에 선택한 일이었는데 잘하다 보니 좋아하게 됐다. 어렸을 적 글쓰기가 싫어글쓰기는 내가 못하는 일이라 미리 단정지어 버렸다면 지금 기자생활을 하는 미래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딸! 지금부터 굳이 무언가 찾으려 말고 일단 그냥 가봐. 길을 알고 가면 마음은 더 편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길의 가능성을 놓칠 수도 있어. 그러니 잘하는 건 나중에 찾고 일단은 이 길 저 길 다 가보는 거야. 어때?” 새침했던 딸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번지는 게 백미러로 보인다. 옆에 있던 아내도 잘했단 눈짓을 보낸다.
 
불확실성이 큰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다.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불안은 우리 마음을 잠식해 여유를 빼앗는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진 사람들은 당장 확실히 눈에 보이는 물질에 집착하고 물질 잣대로 서로를 평가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더 큰 불안을 제공한다. 그래서일 것이다. 아직 13세밖에 안 된 어린 딸이 잘하는 게 없다며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한 모습을 보인 것은.
 
하지만 인생, 계획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재미있고 그래서 살아볼 만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을 느껴 현재를 자책할 바엔 아무 생각 없이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게 훨씬 낫다. 하루하루 충실히 쌓인 현재는 미래의 언젠가 그 빛을 발한다. 이 명확한 인생의 진리를 딸도 알게 되고 지금 고민하는 당신도 알게 됐으면 좋겠다. 2013년 여름 ‘설국열차홍보차 내한했던 틸다 스윈튼과 인터뷰 당시 그가 개인적으로 전해 준 조언이 있다. 그 조언을 지금 모두에게 전한다. “당신이 눈치 채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인생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당신의 미래, 의심하지 마세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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