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병남 기자] 앞으로 은행 퇴직연금 가입자도 상장지수펀드(ETF) 투자가 가능해졌다. 증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좇아 고객 이탈이 늘자 은행들이 일종의 고육책을 꺼내든 것이다.
하나은행은 22일 확정기여형 퇴직연금(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가입자들이 ETF에 투자할 수 있는 '퇴직연금 ETF'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은행은 증권사와 연계해 실시간 ETF 시세를 조회서비스를 제공하고, 매매 주문은 신탁업자인 은행 명의로 증권사에 전송해 처리하는 형태다. 이 때문에 증권사 수준의 실시간 매매는 어려워 거래 체결은 시차를 두고 이뤄지는 지연매매 방식으로 진행된다.
김미숙 하나은행 연금사업단 단장은 "퇴직연금 ETF 출시를 통해 다양한 퇴직연금 포트폴리오 구성과 함께 수익률 관리도 가능해졌다"며 "손님들께 더 나은 수익률로 보답하는 퇴직연금 1등 은행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국민은행은 최근 '퇴직연금 ETF 거래 플랫폼' 운영을 위한 증권사 모집에 들어갔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퇴직연금의 자산운용 다양화와 고객의 상품 선택권 확대를 통한 경쟁력을 강화를 목표해 관련 서비스 도입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신한은행도 서비스 도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퇴직연금 ETF 매매는 증권사에서만 취급됐다. ETF 매매 자체가 금융투자업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은행들은 신탁상품을 통해 ETF 매매를 하고 있었다. 일부 은행이 최근 퇴직연금에 한해 ETF 매매를 희망한다고 금융당국에 비조치의견서를 내기도 했지만, 당국은 해당 업무가 은행 몫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ETF을 통한 퇴직연금 운용을 희망하는 가입자들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은행들은 손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게 됐다. 미래에셋, NH, 한국투자, 삼성증권 등 4개 증권사에 따르면 DC형 퇴직연금과 IRP 계좌에서 이뤄지는 ETF 투자 잔액은 2019년 1836억원에서 올 9월말 2조2199억원으로 12배 가량 불어났다. 같은 기간 은행·보험에서 증권사로 이동하는 IRP 규모도 5배 늘었다. 시장 상황이 이렇자 증권사들은 올 초부터 개인 IRP 수수료 무료 정책 마케팅을 펼치면서 적극적인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은행들은 대응에 나섰지만, 여전히 서비스는 증권사에 비해 경쟁 열위다. 기존 ETF 매매와 마찬가지로 신탁 계약으로 서비스를 구성할 수 밖에 없어 증권사와 같이 실시간 매매를 할 수 없어서다. 이렇게 되면 ETF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인 실시간 매매를 통한 빠른 현금화(환금성)이 사라진다. 또 고객 입장에서는 계약이 한 단계 더 늘어 추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일단 하나은행은 수수료는 자신들이 부담하겠다는 울며 겨자먹기식 카드를 꺼내들었다. 후발 은행들도 같은 선택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이 퇴직연금 계좌에 ETF 매매 서비스를 도입하거나 시도하면서 증권사와의 시장 경쟁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 한 은행 창구에 고객이 금융 서비스를 가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병남 기자 fellsic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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