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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천국에서는 돈 많이 버세요"
2021-09-30 06:00:00 2021-09-30 06:00:00
9·10월이면 한국의 산과 들에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을 볼 수 있다. 가을 전령사 중 하나인 국화향이 그윽하게 코끝으로 전해올 때면 묘한 감정을 자극하곤 한다. 누구에게는 기분을 좋게 하는 묘한 감정일 수 있고 혹자에게는 막연함의 묘한 감정일 수 있다.
 
기분을 좋게 하는 묘한 감정은 발길 따라 가을 길을 떠나게 할 것이고, 막연한 자에게는 근심, 걱정을 더해 헌화가 되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 앞에서는 헌화의 발길이 이어졌다. 국화 향기를 품은 곳은 자영업자들의 잇따른 죽음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였다.
 
서울 마포의 선술집 앞에도 추모 메모와 국화꽃이 놓여졌다. 농자재 배달 사업을 하던 어느 자영업자의 안타까운 소식도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사회적 고통이 가중되면서 한계상황 내몰린 자영업자들의 비극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천국에서는 돈 많이 버세요'라는 추모글을 보면, 도대체 ‘돈’이 뭐길래 죽음으로 내모는 사회경제적 구조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룰 ‘성’의 길다 ‘장’. 우리는 성장이라는 이름하에 무한한 생산 활동을 벌여왔다. 생산성은 곧 생활수준의 상승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생산성은 그 나라의 경제성장률을 결정짓는 주된 요소다. 코로나19가 세계 경제를 위기로 감염시키면서 주요국들의 성적표는 휘청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유수 세계 기관들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려 잡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기존보다 0.2%포인트 상향한 4%를 전망했다. 지난 3월 3.3%, 5월 3.8%로 상향 조정한 데 이어 넉달만에 또 다시 끌어올린 전망치다.
 
큰 충격이 없을 경우 올해 4% 이상의 달성은 무난할 수 있다는 게 정부 안팎의 분석이다. 경제성장률 전망은 장미빛인데 왜 서민의 삶은 더 최악일까.
 
바로 ‘고용 없는 성장’ 때문이다. 지난달 취업자는 2760만3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51만8000명(1.9%) 증가했다. 이를 놓고 홍남기 부총리는 “고용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페이스북에 자화자찬을 늘어놨다.
 
하지만 실제 실업률을 따져보면, 공식 통계보다 0.3%포인트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공개한 ‘코로나19와 실업률 하향편의’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조정 실업률은 공식 실업률보다 평균 0.29%포인트 높았다.
 
코로나발 비자발적 구직 포기자를 실업자로 분류한 ‘조정 실업률’ 추정치에서도 지난달 조정 실업률은 공식 실업률보다 0.9%포인트 높은 3.7%를 기록했다.
 
4차 대유행의 영향으로 대면서비스업의 고용 타격은 고통과 괴로움으로 가득 찬 고역세계의 전령이 되고 있다. 자영업자뿐만 아니다. 제조업 취업자 수는 7만6000명 줄었다.
 
누군가는 반문한다. 수출이 12개월 연속 호조세인데 왜 이러냐고. 반도체 등 수출 호조세 품목은 이미 굴뚝 없는 산업이 된지 오래다. 제조업의 로봇화로 근로자의 고용·임금 상승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경제성장률에 고무된 정부와 달리 성장률 추락을 맞은 주요 국가들은 오히려 고용지표에 매진하는 분위기다. 대유행으로 지난해 8%나 추락한 프랑스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후퇴를 맞았지만, 취업률은 2019년 4분기 때보다 0.8% 늘었다.
 
5.1%에서 4.0%로 하향 조정된 호주의 취업률은 1.8% 상향했다.
 
나홀로 정부의 성장을 찬양하기보다 서민들의 빈곤화가 국가붕괴를 초래한다는 생각을 가져야할 것이다.
 
이규하 경제부장 judi@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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