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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당신도 방관의 가해자일 뿐이다
2021-09-17 01:21:01 2021-09-17 01:21:01
결혼 하고 아이 낳아 키우는생활인삶은 정신 없이 바쁘다. 덕분에 잊고 지냈다. 군대 시절 기억은 술에 취해 허풍이 더해진 무용담으로, 남성들 사이에 기 싸움 할 때 의식 표면 위로 끌어 올려질 뿐이었다. 그다지 유쾌할 것 없는 기억. 무의식 저편에 가라앉아 침몰해도 아쉬울 것 없는 기억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탈영병 잡는 헌병대 얘기를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를 보면 무의식 저편 침몰한 줄 알았던 군 시절 잔상이 아직도 내 의식을 괴롭히고 있단 사실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25년이나 흘렀다. “시간은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는 법리적 공소시효 개념으로만 봐도 이미 소멸됐어야 마땅한 기억들이다. 그런데 시간의 법칙마저도 무시한 채 아직도 날 장악한 이 괴로움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D.P’에선 군대 내 폭력 문제를 심도 있게 다뤘다.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만든다. 난 피해자였다. 내가 피해자였단 억하심정에 내가 받은 폭력을 후대에 물려줄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난 피해자였을지언정 가해자는 아니었다.
 
그런데 ‘D.P’가 날 불편하게 만들었다. 폭력에 휘둘렸던 시간이 억울해서도 아니다. 극복 못 할 트라우마로 남아있진 않다. 그런데도 불편했다. 그 불편의 실체는 방관이었다. 방관자였던 나 자신을 들켜버린 것이다.
 
그 방관이 비단 나 혼자 만일까. 1953 7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유지하는 징병제 속 무수히 자행된 살인에 버금가는 가혹행위는 여전히 현재진행이다. 옛날 같진 않다고, 요즘 군대는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군대는 군대다. 폭력은 그 모습을 달리한 채 여전히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무서운 것은 그런 폭력이 장악한 사회 안에서 많은 이들이 방관자의 태도를 갖는단 점이다.
 
D.P.’에도 고스란히 등장한다. 가해자인황장수가 있고 피해자인조석봉도 있다. 하지만 진짜는 그 두 사람이 아닌 등장인물 모두의 위선이다. 위선의 실체는 방관이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그 생각이 위선의 실체다.
 
내가 괴로운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옥 같은 폭력의 굴레를 경험했고 폭력의 대물림을 스스로 끊었다고 자부했지만, 동료들의 폭력은 외면하고 또 다른 피해를 방관했다. ‘D.P.’를 보면서 느껴진 불편함, 불편함을 넘어선 괴로움은 이 때문이었다. 부끄럽다. 나 자신마저 모르도록 꽁꽁 숨겨버린 치부를 들켜버린 부끄러움이 날 괴롭힌다.
 
소설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에서우리가 사는 이곳이 지옥이 된 이유는 악마들이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에세이 배려의 말들에선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우리는 공범이 된다고 했다.
 
솔직해지자. 방관자였던 난 가해자였다. 당신들은 어떤가. 눈앞의 불의를 보고, 폭력을 보고, 학대를 보며, 가담하지 않았단 이유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진 않은가. ‘D.P’가 드러낸 불편한 진실 앞에 당당히 고개를 들 수 있는가. 군대를 제대한 우린, 이번엔 사회란 무대 앞에서 여전히 방관자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진 않나. 모두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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