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진짜 못된 사람으로만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얼굴에는 ‘못된 인성’과 ‘못된 인간미’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를 사석에서 본다면 좀 다른 생각이 들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었단다. 과거 인터뷰를 위해 약속된 장소에 나갔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기자를 기다렸다. 그런데 약속 시간이 훌쩍 지나도 만나질 못했다고. 얘기인즉슨, 인터뷰를 하기로 한 기자가 약속 장소에 이미 도착해 있었지만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배우 김태훈 얘기다. 그는 충무로에서 형제 배우로 유명하다. 그의 형은 배우 김태우다. 두 사람 모두 악역에 능숙한 연기력을 선보여 왔다. 하지만 인터뷰를 위해 만난 김태훈은 세상 누구보다 선했다. 당연하지만 작품 속 김태훈과 작품 밖 김태훈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쑥스러움을 잘 타는 소심한 모습도 보였고, 반대로 유머 감각 가득한 유쾌한 아저씨도 있었다. 어떤 쪽이든 김태훈은 ‘악역’스러운 이미지보단 그 반대가 더 강했다. 영화 ‘좋은 사람’이 그래서 그와 만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배우 김태훈. 사진/싸이더스
김태훈은 최근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사람’에 대한 얘기를 전했다. 제목부터가 직관적이다. 그리고 의외로 상당히 공격적인 면도 있다. 상대방에게 대놓고 물어보는 느낌이다. 우선 김태훈부터 대답해야 했다. 여러 작품에서 악역을 많이 했다. 물론 코미디와 선한 역할도 소화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악역 김태훈’의 임팩트가 훨씬 더 강하게 남아 있다.
“우선 전 좋은 사람은 아닌 거 같아요(웃음). 감독님 처음 만났을 때도 ‘난 좋은 사람이 아닌데 이 영화를 해도 되나요’라고 물었어요. 하하하. 착하고 선하게 살려고만 하면 그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이 나이가 되니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훨씬 더 확장된 영역의 배려가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싶죠. 이번 영화를 하면서 그걸 더 확실히 느꼈죠. 좋은 사람이고 또 좋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런 김태훈은 ‘좋은 사람’ 속 자신이 연기한 ‘경석’을 어떤 사람이라고 봤을까. 김태훈의 시선에서도 ‘경석’은 문자 그대로 ‘좋은 사람’이라곤 말할 수 없을 것 같단다. 학생들에겐 착한 사람처럼 보이고 좋은 선생님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래서 그가 진짜 좋은 인물이란 것에는 물음표를 달 수 밖에 없을 것 같단다.
배우 김태훈. 사진/싸이더스
“경석은 모든 학생들을 다 이해하고 또 문제가 있는 학생들도 의심하거나 스스로 판단하려고 하지 않아요. 이렇게만 보면 되게 멋진 선생님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진짜 멋진 선생님일까 싶어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하는 행동은 아닐까 싶은 거죠. 어떤 면에선 저도 마음에 들고 공감이 되는 데, 그게 그래서 착한 사람이고 선한 사람인가.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좋은 사람인가. 전 선뜻 대답 못하겠어요.”
이런 기본적인 전제 조건에서 시작하는 ‘좋은 사람’은 의외로 간결하면서도 또 반대로 상당히 복잡하다. ‘좋은 사람’이 그리는 사건은 크게 두 가지다. 경석이 담임으로 있는 반에서 벌어진 지갑 도난 사건, 그리고 경석의 딸이 당한 교통사고. 그 중심에 경석의 의심과 경석의 ‘좋은 사람’ 강박이 자리한다. 이 얘기를 영화는 상당히 묵직하면서도 또 반대로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끌어간다.
“감독님하고도 처음 만났을 때 제 의견을 드린 게 있어요. 아카데미 작품이고 저 예산 영화이지만 의미와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요. 제가 느낀 재미도 분명했고 그걸 관객 분들에게 꼭 전달해 드리고 싶었어요. 대단한 사건이나 화려한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 안에서 굉장한 긴장감을 만들어 내셨더라고요. 대중적으로도 사랑을 받을 코드가 분명히 있겠다 싶었죠.”
배우 김태훈. 사진/싸이더스
그런 점은 오롯이 연출을 맡은 정욱 감독의 공이 컸다고 김태훈은 감사해 했다. 영화 한 편이 끝나고 배우가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 함께 했던 작품의 감독에 대해 ‘다음 작품에서 꼭 다시 만나고 싶다’는 예의 멘트를 하기 쉽다. 김태훈은 정욱 감독에 대해 그런 예의적인 멘트가 아닌 배우가 감독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의 감사로 대신했다.
“제가 영화 쪽 선배이고 나이도 많았지만 정말 친구처럼 지냈어요(웃음). 촬영 끝나고 너무 궁금해서 전화를 드리니 혼자 편집실에서 며칠을 끙끙대고 계신 거에요. 이게 상업적인 영화도 아니고 그러니 누가 서포트를 해주는 것도 없고. 근데 작품을 향한 마음이 전화기 너머로 전해져 오더라고요. 확실하게 말씀 드릴 수 있어요. 제 배우 인생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을 작품이에요.”
그가 연기한 ‘경석’은 ‘좋은 사람’을 꿈꾸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론 유약하고 또 어떤 면에선 폭력적인 내면까지 숨기고 있다. 이런 모습은 영화에서 직접적인 연출로 등장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런 배역을 김태훈이 연기를 한다. 김태훈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악역을 많이 연기해 왔다. 그가 ‘경석’을 연기하는 데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당연히 그의 연기 내공 덕분일 것이다.
배우 김태훈. 사진/싸이더스
“(웃음)저 보고 선악이 공존하는 얼굴이라고 하시는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사실 저는 제 얼굴이 그런지 모르죠. 하하하. 그런데 반대로 그런 모습이 있는 것 같아서 이번에 ‘경석’ 같은 인물도 제가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앞선 작품에서도 악역도 했었지만 밝은 역도 했었고 또 비열한 역할 웃긴 역할 다 해봤거든요. 제 얼굴이 정말 그렇다면 배우로선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는 영화 속 ‘경석’이 ‘좋은 사람’에 대해 줄곧 고민한 것처럼 자신도 아직까지 고민 중이고 계속 고민해 나갈 것 같다고 한다. 그 고민은 아마도 배우에 대한 고민이 될 것 같다. 20대에 배우를 시작했고, 30대에 어떤 배우가 될지 고민해 봤고 상상해 봤다. 그리고 30대가 되니 40대에 또 어떤 배우가 돼 있을까 고민해 봤다. 그래서 40대에 들어섰고 어느덧 중반을 넘어섰다.
배우 김태훈. 사진/싸이더스
“그렇게 물어봐 주시니 너무 나이 든 것 같아요(웃음). 글쎄요. 20대에는 30대 중반 정도가 되면 배우가 뭔지 알게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30대 중 후반이 돼도 잘 모르겠더라고요(웃음). 그래서 40대가 되면 알 수 있겠지 싶었는데 지금 중반이 넘어가는 데도 여전히 모르겠어요. 물론 예전의 김태훈과 지금의 김태훈은 전혀 다르겠죠. 고민의 양과 강도 역시 다르고. 그 안에서 저도 좀 자란 것 같고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다 보면 좋은 배우도 될 것 같아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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