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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서울극장 앞에서 운 좋으면 스타들 보는 것도 재미였죠”
8월 31일 영업 종료 앞둔 서울극장, 아쉬움 달랠 영화팬들 ‘여러 얼굴’
‘서울극장 모티브’ 독립영화 준비 영화과 학생, 추억 곱씹는 60대 부부
2021-08-30 01:34:00 2021-08-30 08:38:03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1979년 서울 종로3가 사거리 서울극장간판이 내걸렸다. 그리고 10년 뒤 1989. 3개 스크린으로 증축된 서울극장이 다시 그 자리에 개관했다. 지금은 당연하지만 당시로선 개념도 생소했던 멀티플렉스의 시작이다. 서울극장을 운영하던 합동영화사는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후 반까지, 기업형 투자 배급사가 충무로에 등장하기 전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선보인 영화사다. 상영부터 제작 그리고 배급까지 원스톱이 가능했던 사실상 국내에선 유일무이한 영화사였다. 하지만 합동영화사가 운영하던 서울극장이 문을 닫게 됐다. 무려 42년간 충무로 극장 삼총사(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맏형 자리를 묵묵히 지켜왔었다. 이미 단성사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피카디리는 국내 멀티플렉스 간판이 대신하고 있다. 이제 서울극장도 역사 속으로 이름이 사라진다. 서울극장을 기억하는 영화 팬들의 마음을 현장에서 들어봤다.
 
1979년 현재 자리해서 첫 영업을 시작한 서울극장이 개관 42년 만인 2021년 8월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사진/김재범 기자
 
서울극장은 현재 831일 영업 종료 전까지 굿바이 상영회가 진행 중이다. 그 동안 서울극장을 찾아 준 관객들을 위해 3주간 선착순 무료 티켓 제공 이벤트다. 지난 27일 오후 4시쯤. 이미 서울극장 영업 종료를 알리는 기사가 온라인에 쏟아진 뒤였다. ‘와볼 사람은 대부분 다 온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극장 로비는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웠다. 소싯적에는 상영을 앞두고 만남의 광장처럼 여겨지던 로비 한 켠 공간이 텅 비어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극장 곳곳을 촬영하던 한 20대 청년이 눈에 띄었다.
 
올해 22살 대학생 박 모씨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이란다. 그는 구형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극장 이곳 저곳을 촬영 중이었다. 그의 첫 마디는 아쉽다였다. 소위 서울극장과 함께 했던 4050세대가 부모세대쯤일 듯하다. 그는 잠시 서울극장에 대한 추억을 전했다.
 
아버지와 함께 이 곳에서 처음 영화를 본 기억이 납니다. 당시 무슨 영화인지 기억도 안 나요. 하지만 깜깜한 극장 안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느낌이 되게 좋았어요. 그 기분이 지금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으로 절 이끈 것 같아요.”
 
서울극장 매표소는 '코로나19' 영향으로 폐쇄됐고 매점과 통합 운영 중이다. 사진/뉴시스
 
학교와 이름을 밝히길 극구 꺼려했다. 이유가 있다. 디지털 카메라로 무언가를 기록하듯 남기던 그는 서울극장에 대한 이미지를 담은 독립영화 연출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아직은 구상 중이지만 국내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기획해 볼 생각이란다. 결과로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서울극장과 함께 다시 함께 인사를 전하고 싶단다. 그는 뉴스토마토와 잠깐의 만남 뒤에도 연신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담았다.
 
60대 중반 지긋한 연세인 장년 부부는 금요일 오후 서울극장으로 영화 데이트를 나온 듯 하셨다. 서울 영등포에 거주하신다는 이들 부부는 1990년대에는 토요일 극장 나들이를 하면 운이 좋을 경우 은막의 특급 스타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도 많았던 곳이 서울극장이라고 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는 더욱 활발했던 무대인사를 거론한 것이다. 남편 되시는 분이 그 시절이 기억나신 듯 신나게 얘기를 들려줬다.
 
이 앞에 노점 하시는 분들 앞에서부터 저 뒤쪽 전철역까지 줄이 좌~악 서 있었지. 극장 앞으로 딱 코너를 돌 때쯤 그 앞에서 배우들이 탄 차가 서고 거기서 배우들이 내려서 걸어 들어가요. 그때 배우들 많이 봤지. 그땐 그것도 극장 오는 재미 중에 하나였어요.”
 
서울극장을 상징하는 이미지 중에 하나는 극장 앞 대로변 좁은 길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노점상들이다. 전성기 시절에는 십여 개가 넘는 노점상이 그 짧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서울극장을 경험한 세대들이라면 그 거리를 지날 때의 고소한 오징어 구이부터 달콤한 군밤 냄새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젠 그 명물 노점상들도 대거 자리를 떠난 상태다. 민망하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한 한 노점상인은 아쉬운 웃음으로 마음을 대신했다.
 
서울극장 로비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던 '키 홀'. 개봉관 시절에는 수 많은 관객들로 북적인 공간이다. 하지만 영업종료를 며칠 앞둔 8월 27일 오후 4시에는 단 한 명의 관객도 없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진/김재범 기자
 
예전에 비하면 이쪽으로 오시는 분들이 거의 없어요. 할아버지들이나 오시는 데, 이젠 극장도 영업을 중단한다고 하니 더 힘들어 지겠죠. 우리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40대 회사원 유모 씨는 늦은 여름 휴가를 앞두고 퇴근길 서울극장을 찾았단다. 극장 로비에서 매표소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그는 너무 오랜 만에 왔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멋쩍어했다.
 
예전에는 영화를 보려면 종로3가에 와서 피카디리 단성사를 가보고 매진이 되면 얼른 서울극장에서 표를 구했죠. 서울극장에서도 표가 매진됐으면 명보극장 그리고 거기서도 매진이 되면 스카라 대한극장으로. 딱 순서가 정해져 있었잖아요. 근데 이제 서울극장까지 문을 닫으면 추억 속 극장은 대한극장 하나만 남게 되네요.”
 
이날 서울극장에서 2시간 가량 머물며 만난 대부분의 영화팬들은 가장 젊은 층이 20대 초반 그리고 가장 나이가 많은 계층이 60대 후반부터 70대까지였다. 한때 한국영화계 흥행 바로미터이자 중심으로 불리던 서울극장이 이제는 추억을 논하며 쓸쓸히 퇴장을 준비하는 곳이 된 셈이다.
 
극장은 대규모 장치사업자다. 극장 설비 비용은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요즘 멀티플렉스의 최첨단 시스템 구축을 위해선 수백억까지 투입된다. 11개 상영관을 갖춘 서울극장은 극장 영업은 중단하지만 구축된 설비를 폐기하기엔 소유권을 보유한 합동영화사 측도 나아가 한국영화계에도 상상 이상의 타격이다.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합동영화사 측은 극장 영업은 중단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극장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새로운 서울극장이 다시 한국영화계 중심이 될 날을 기다리게 되는 이유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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