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어떤 단어로 전달해야 할까. 아마도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아주 나쁘다. 이유는 이렇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고, 들키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강제로 까발림 당한 기분이다. 일종의 ‘아웃팅’이다. 물론 문자 그대로 ‘나쁜’ 무엇은 아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상대방에게 숨기고 싶은 무언가를 들킨 감정이 가슴 한 켠에 스멀거리며 움직인다. ‘좋은 사람’은 제목처럼 좋은 사람을 요구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으며 좋은 사람이고 싶은 우리 모두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좋은 사람’을 강요 받는다. ‘나쁜’ 건 나쁜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은 꼭 돼야 할 무엇이다. 이 영화는 그게 얼마나 허울 좋은 비열한 변명인지를 지적한다. 반박 조차 할 수 없는 이 영화의 날카로운 지적이 당신을 지탱하는 자아를 뒤흔들지 모를 정도다. 믿음에 대한 얘기, 편견과 파괴된 신뢰에 대한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 전하는 진짜는 아마도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가장 날 것의 맨 얼굴일 것이다. 그 얼굴이 ‘좋은 사람’에선 경석과 세익 두 인물로 나눠져 등장한다. 어느 쪽이든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얼굴이고 민 낯이다. 절대 피할 수 없는 이분법이다. 당신은 ‘경석’인지, ‘세익’인지.
한 고등학교. 지갑 도난 사건이 벌어진다. 교사 경석(김태훈)은 자신의 반 아이들 모두를 믿는단다. 스크린에 그려진 장면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다. 경석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결국 범인은 나타나지 않는다. 경석은 지갑을 잃어버린 학생에게 자신의 사비를 대신 건 낸다. 경석은 작지만 크고, 크지만 작아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지갑 도난’ 사건을 자신의 주머니 속 쌈짓돈으로 봉합하려 든다. 이제 사건은 없었던 것이다. 경석은 자신의 반 학생들에게 여전히 좋은 사람이다. 지갑을 잃어 버린 학생에게도 좋은 선생님이고 좋은 어른이 됐다. 경석이란 인물을 이해할 수 있는 단적인 장면이다.
영화 '좋은 사람' 스틸. 사진/싸이더스
하지만 균열이 생긴다. 지갑 도난 사건 범인을 목격한 학생이 등장한다. 그 학생은 범인으로 세익(이효제)을 지목한다. 경석은 학교 CCTV를 통해 지갑이 도난 된 시간, 홀로 교실에 들어가는 세익을 목격한다. 이제 범인은 세익이다. 경석은 아직 기회가 있다 믿었다. 세익에게 반성문을 요구한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쓰는 모든 것을 믿겠단다. 세익은 그런 경석의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다. 눈빛이 그렇다. 세익은 경석을 못 믿는 건지, 어른을 못 믿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반 친구들 모두를 못 믿는 건지. 나아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건지 모를 일이다. 반 친구 누구도 세익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경석은 그게 불안하다.
영화 '좋은 사람' 스틸. 사진/싸이더스
그런 불안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진다. 이혼인지 별거인지 모를 아내의 전화가 온다. 경석에게 딸을 돌봐 달란 부탁이다. 아내는 갑작스런 업무 때문에 지방 출장을 가게 됐다. 아내의 요구에 마뜩잖은 경석이지만 딸이고 또 아내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 딸은 아빠인 경석이 싫다. 이유는 모르겠다. 같이 살지 않은 경석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낯설 수 있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다른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그저 딸은 경석과의 시간이 괴롭다. 경석은 세익에게 반성문을 쓰게 한 뒤 아내 전화를 받고 잠시 딸을 대리고 오는 길이다. 학교에 다시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다. 어린 딸 혼자 차에 두고 교실로 올라가기가 부담스럽다. 딸은 경석의 말에 들은 척도 안 한다. 잠시 동안이라면 괜찮겠지 싶었다. 딸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교실로 올라갔다. 이미 세익은 자리를 뜬 이후다. 당연히 빈 종이뿐. 경석은 허탈한 심정으로 다시 내려온다.
영화 '좋은 사람' 스틸. 사진/싸이더스
그런데 진짜 문제가 터졌다. 딸이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경찰 전화가 온다. 딸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전후 사정을 조사하니 유력한 용의자로 세익이 지목됐다. 경석은 좋은 선생님, 좋은 담임,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고 싶었다. 딸이 그렇게 됐지만 여전히 그렇다. 그런데 점점 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주변 상황은 자꾸만 경석의 그런 태도를 위선이라 몰아 붙인다. 이젠 경석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사경을 헤매는 딸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같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은 세익에 대한 관심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을 위선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아내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이 모든 것이 전부 아니면 경석은 도대체 뭘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지. 제대로 보고 있었던 것인지. 자신이 진짜 자신이긴 한 건지. 모든 게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지만 그 모든 걸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경석은 죽을 만큼 괴롭다. 이 괴로움의 실체를 마주해야만 한다.
영화 '좋은 사람' 스틸. 사진/싸이더스
‘좋은 사람’은 서로 연관이 전혀 없는 두 사건이 만들어 낸 예상치 못한 파열음이 한 사람의 굳건했던 믿음을 서서히 부셔 버리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려나간다. 두 사건이 단초가 됐다. 하지만 진짜는 따로 있다. ‘좋은 사람’은 우리 모두가 ‘그럴 것’이라 ‘믿는’ 굳건한 신념이 사실은 얼마나 거짓된 모순의 역설이고 다른 이름인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건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민 낯이다.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우리 모두가 그러기 때문일 것이다. 경석은 처음부터 끝까지 세익에게 믿음을 약속했다. 하지만 정작 약속된 믿음은 세익에게 화살이 돼 상처를 줬다. 믿는다고 하지만 세익에게 결과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배신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경석의 태도는 기묘한 아이러니를 만들어 내면서 의도치 않는 서스펜스로까지 얘기를 끌고 간다. ‘사건의 본질’로 끌고 가는 서스펜스 감정은 기이할 정도의 긴장감 그리고 몰입감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본질은 결과적으로 따로 있다. 경석이 처음부터 끝까지 버리려 했지만 버리지 못했던 자신의 위선적 자아다.
영화 '좋은 사람' 스틸. 사진/싸이더스
‘좋은 사람’은 간결하면서도 복잡하고 명확하면서도 또 무겁다. 자신의 위선 하나로 덮어 버릴 수 있던 ‘지갑 도난사건’이었다. 아이들의 갑작스런 목격담 그리고 확신. 그리고 덮어 버렸던 봉합. 그럼에도 드러난 실체, 그리고 그 실체가 끌고 가버린 예상치 못했던 결말. 그 결말이 결국 경석을 끌고 간 지점에서 기다린 것은 스스로가 그토록 외면하고 싶었던 위선의 다른 이름. 욕망이었는지 모른다.
영화 '좋은 사람' 스틸. 사진/싸이더스
경석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싶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좋은 사람’이어야 했다. 제목 자체가 가리키는 것은 이 얘기가 담은 본질적인 ‘그것’ 바로 욕망이다. 그 욕망에 상처 받은 약자의 다른 이름이 ‘세익’이다. 경석은 그저 위선이 만들어 낸 욕망이었다. 우리 모두가 그러는 것처럼. 그래서 ‘좋은 사람’을 보고 있으면 얼굴이 뜨거워지고 급기야 부끄러워진다. 감추고 싶던 속살이 들춰진 느낌이다.
영화 '좋은 사람' 스틸. 사진/싸이더스
데뷔작으로 이 정도 감정을 세밀하게 직조해낸 정욱 감독의 연출을 경험해야만 한다. 인간의 모든 나약함을 온 몸으로 투영 시킨 배우 김태훈의 연기를 무조건 경험해야만 한다. ‘좋은 사람’은 반드시 경험해야만 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관람이란 단어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개봉은 오는 9월 9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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