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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겨우 낡은 극장 하나가 아니다
2021-08-26 03:00:01 2021-08-26 03:00:01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은 날이 이어지는 중이다. 올 여름휴가는 그냥 ‘집콕’을 선택했다. 휴가를 기대했던 딸은 입이 ‘삐쭉’ 나왔다. 가을쯤 ‘코로나19’가 잠잠해진 뒤 가족 여행 약속으로 겨우 달랬다.
 
‘집콕 휴가’라 해도 빈둥거리며 시간 보내기는 싫어 아내와 집안 곳곳 대청소를 했다. 서랍을 하나씩 열 때마다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떻게 그 많은 물건들이 다 들어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다. “자기야, 이건 어떻게 해?”란 아내의 질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난 “버려”란 말만 되풀이했다.
 
이건 오래돼서 버리고, 저건 낡아서 버리고, 요건 안 써서 버리기를 한창. 쓰레기봉투에 담긴 물건들을 보며 “아이고, 속이 다 시원하다”고 말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래되고 낡은 건 꼭 버려야 하는 걸까’. 왠지 슬프단 생각도 얼핏 들었는데, 쓰레기봉투 속 물건과 서울극장 폐관 소식이 오버랩 됐기 때문일 수 있겠단 나름의 이유를 끌어왔다.
 
서울극장이 사라진다. 단관 극장 시절, 서울을 대표하는 메인 극장으로 위세를 떨쳤던 곳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서울극장을 운영하는 합동영화사는 극장 영업은 8월 31일 이후 중단하지만 시설 사용은 추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서울극장이 어떤 곳이던가. 한국 영화 산업을 이끌던 종로 3총사(서울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중 한 축이었다.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란 타이틀로도 빛났던 곳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무색하게 됐다. 휘황찬란한 영사 시스템을 이용해 관객들에게 최선의 관람 환경을 제공 중인 기존 멀티플렉스와의 경쟁은 애당초 게임이 안 됐던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코로나19’란 악재가 터지며 ‘손안의 극장’이 펼쳐지는 OTT 시대가 열렸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극장 영업이 더는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아쉬움이 남는다. 멀티플렉스가 당연하고 OTT가 대세인 것도 알겠는데, 이런 때일수록 옛 낭만을 그대로 간직한 서울극장 하나쯤 존치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달 취재원과의 약속이 있어 종로에 갔다. 마침 서울극장이 보였다. 군 복무 시절 첫 휴가를 나와 영화 ‘타이타닉’을 관람했던 곳도 서울극장이고, 아내와 첫 데이트를 한 곳도 서울극장이다. 반가운 마음에 오랜만에 서울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관객도 직원도 없는 텅 빈 로비가 인사를 건네왔다. 그리고 얼마 뒤 폐업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정부의 직접 개입이 필요하다. 대기업 멀티플렉스조차 영업 중단을 고민하는 요즘, 낡고 오래된 극장이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 정부는 손 놓고 있지만 말고 극장 산업을 위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해볼 수 있는 것부터 다 해봐야 한다. 오랜 시간 연애하면서 설렘이 줄었다고 무관심했다가 이별을 통보 받고 “있을 때 잘해줄 걸”이라고 후회해봐야 소용없다. 지금 상황이 딱 그렇다.
 
떠나고 후회하지 말자. 극장 줄 폐업 소식이 들린 뒤 북 치고 장구 쳐봐야 소용없다. 있을 때 잘해줘야 한다. 버티고 있을 때 극장 구제책을 내놔야 한다. 버스 떠난 정거장에서 외치는 메아리 꼴 날까 두렵다. 겨우 극장 하나가 아니다. 극장부터 시작되는 문화 산업 연쇄 도미노는 이미 진행 중이다. 그걸 막아야 한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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