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M.나이트 샤말란 감독. 양극단의 호불호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그의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반전을 좋아하고 그것에서 흥미를 느끼는 마니아들이 두텁다. 반면 결 자체가 다른 상상력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얘기의 마무리에 샤말란 감독을 ‘미완의 화룡점정’으로 평가하는 시선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샤말란’이란 이름 석자는 당연히 우리를 기대하게 만든다. 당연히 우리를 설레게 만든다. 그가 구축한 ‘언브레이커블’ ‘23아이덴티티’ ‘글래스’ 3부작 세계관의 세밀한 연계성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식스센스’의 반전은 지금도 걸작으로 칭송 받으며 반전 영화의 교과서로 불린다. 물론 그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최악의 참사로 기억된 작품도 존재한다. 그래서 이번 ‘올드’가 ‘샤말란 월드’ 제2막을 여는 어떤 기준점이 될지 모를 일이다. ‘올드’에는 지금까지 그에게 쏟아졌던 찬사의 모든 알멩이들이 대부분 담겨 있다. 상식을 넘어선 상상력, 그리고 그 상상력을 유지시켜주는 탄탄한 스토리와 긴장감. 이 모든 것을 완벽한 토대로 떠 받치는 공간의 미장센. 허무맹랑함을 넘어서 도대체 납득할 수 없는 상상력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 지으려 할까. 이 모든 평가가 꾸준히 샤말란 감독을 향한 호불호의 잣대였다. 이건 상찬과 혹평의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기괴한 평가다. ‘올드’는 앞서 언급한 상식을 넘어선 상상력이 돋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도대체 이 얘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에 대한 기대감만 한 없이 끌어 올린 뒤 샤말란 특유의 방식으로 마무리 지은 아쉬움도 있다. 이것조차 사실 ‘샤말란 월드’의 가장 큰 장점일 수 있다. 이걸 받아 들인다면 ‘올드’는 샤말란이 열어젖힌 제2막의 상상력 첫 장이다. 반대로 이걸 못 받아 들인다면 샤말란의 도전은 단순한 ‘시도’에 또 한 번 머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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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는 지상 낙원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이곳은 지상 낙원이 아닌 지상 지옥이다. 그곳에서 펼쳐지는 상상 이상의 상황은 모두를 삶의 끝까지 몰고 간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에. 먼저 주인공 ‘가이’ 가족. 여름 휴가를 위해 어렵게 예약한 열대의 아름다운 리조트에 도착한다. 그들이 처음 맞이한 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 리조트 임직원이 건넨 ‘웰컴 칵테일’ 한 잔은 묘한 느낌이다. 가이와 그의 아내 그리고 딸과 아들은 친절한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리조트 곳곳을 안내 받는다. 하지만 두 아이들은 모르는 비밀이 있다. 이번 여름 휴가는 사실 가이 부부의 이별 여행. 아내가 심긱한 병에 걸렸다. 완치 불가능한 병은 아니지만 앞날은 누구도 모른다. 두 아이의 행복한 웃음과 이들 부부의 감정 싸움이 대비되는 기묘한 상황이 합치되고 충돌한다.
영화 '올드'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이튿날. 이들 가족에게 리조트 지배인은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비밀스런 해변가를 소개한다. 사유지인 그곳은 최고의 전망을 자랑한다. 지배인은 비밀의 해변가에서 하루 동안 즐기고 올 것을 제안한다. 리조트 직원이 운전하는 벤을 타고 도착한 해변가. 문자 그대로 아름답다. 그곳에는 가이 부부 외에도 뒤늦게 합류한 또 다른 리조트 투숙객과 가족들이 온다. 그들은 저마다 즐기고 웃고 떠든다. 가이 부부도 잠시나마 고민 거리를 덜어낼 수 있는듯했다. 그런데 곧바로 문제가 터진다. 해변가 인근에서 젊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그 여성의 시체다. 발견 된지 30분 정도 지났던 것 같다. 멀쩡하던 시체가 미이라처럼 말라버린다. 아이들도 이상하다. 이제 겨우 11세 6세의 가이 부부 딸과 아들은 이상할 정도로 성장해 있다. 가이 부부보다 뒤늦게 해변가에 도착한 또 다른 가족의 어린 딸도 훌쩍 컸다. 부모들은 새파랗게 질린다. 분명 내 아이들이 맞다. 그런데 내 아이들이 아닌 것 같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이 해변, 어떤 이상한 힘에 둘러싸여 있다. 들어왔지만 그 길로 나갈 수가 없다. 그들은 이 공간에 갇혔다.
영화 '올드'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올드’는 기괴하고 충격적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공포도 이런 공포가 없다. 문제의 해변에선 ‘30분이 1년만큼의 시간과 같다’란 공식이 성립한다. 결과적으로 그 해변에 들어선 모든 이들은 그만큼 빨리 늙어간다. 늙어가는 것은 그 만큼 빨리 죽음과 대면할 수 있다. 아침에 해변가에 들어선 아이들이 점심에는 청년이 되고 저녁쯤이면 중년이 된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는 생사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시간이 빨리 흐르다 보니 색다른 현상도 발생한다. 상처가 그만큼 빨리 아문다. 칼에 베인 상처는 마블 영화의 히어로에 버금갈 정도로 금방 아문다. 반대로 몸 속 종양 덩어리도 그만큼 빨리 커진다. 가이의 아내가 지닌 몸 속 탁구공 만한 ‘종양’이 30분 만에 멜론 덩어리 만큼 커져 버린다.
영화 '올드'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올드’는 ‘해변가’로 한정된 폐쇄된 공간 그리고 ‘시간’이란 무한 소재의 유한함을 결합시킨 색다른 장르 스토리다. 미스터리 SF장르 색채를 예감케 하는 ‘올드’의 설정은 ‘샤말란’이란 이름과 결합하면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 잡는 데 최적의 조건을 완성시킨다. 하지만 ‘샤말란’이란 이름을 지우고 ‘올드’가 담아낸 시간의 함의를 유추해 나간다면 꽤 의미 있는 시사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시간이란 ‘연속성’이 가진 ‘불확실성’을 ‘올드’는 단 시간 안에 펼쳐 낸 채 모든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 주고 촌철살인으로 증명시켜 나간다.
영화 '올드'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유아기부터 소년 그리고 청년 중년 장년 급기야 노년에 이르기까지. ‘올드’의 해변에선 인간의 일생이 단 하루 만에 집약되고 그것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 안에서 인간은 생사고락과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느끼며 삶의 편린을 일생의 그것과 다를 바 없이 체감한다. 육체의 노화에 따라 정신의 성숙까지 고스란히 따라간다. 불과 한 시간 전에 서로에게 겨눴던 가시 돋친 말 한마디가 지금은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갇힌 공포’에 사로 잡혔던 그들이 반나절이 지난 뒤 압도적 공포감에 순응한 채 수십 년을 살아온 것처럼 무력해지는 모습은 우리 삶을 지배하는 공포의 근원적 덩어리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올드’는 전개가 이어지고 흐름이 계속될수록 관객의 시선과 오감을 흐트러트리는 다양한 맥거핀이 상징적으로 등장한다. 이 가운데 일부는 영화적 전개에 반드시 필요한 ‘메타포’로서의 기능도 겸한다.
영화 '올드' 스틸. 사진/유니버셜픽쳐스
그런 메타포의 기능적 상징이 이 영화의 마지막 결말과 이어진 장면에선 퍼즐 맞추기의 쾌감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반대로 전체 미스터리를 한 번에 무너트리는 허탈함으로 마침표를 찍어 버린다. 그게 앞서 언급한 샤말란 월드 양날의 검이 아닐까 싶다. 그걸 또 한 번 증명한 것 같은 ‘올드’가 다시 한 번 ‘샤말란 월드’ 제2막을 열어젖힐지는 오롯이 예비 관객 선택에 달려 있지만 말이다. 8월 18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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