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고객과 다투는 것이 즐거운가
입력 : 2021-07-28 06:00:00 수정 : 2021-07-28 06:00:00
암 입원비 지급 문제를 둘러싼 삼성생명과 '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우 모임(보암모)' 사이 협상이 지난 9일 타결됐다. 지난해 1월부터 서울 서초동의 삼성생명 사옥 2층 고객센터를 점거하고 있던 보암모 회원들도 농성을 끝냈다고 한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작년 금감원이 암 입원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권고한 분쟁 296건 중 186건만 수용했다. 다른 보험사들이 90% 이상 권고를 수용한 것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그런데 뜻밖에 협상이 타결됐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삼성생명이 갑자기 합의를 도출한 배경에는 대주주 변경 승인을 받을 필요성이 작용한 듯하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작고하고 남은 삼성생명 지분 20.76%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뿐만 아니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에게도 상속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절반을 상속받고,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이 6.92%와 3.46%를 각각 받았다. 이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기둥이라 할 수 있는 삼성생명의 개인 최대주주가 됐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의 경우 삼성생명의 보유지분이 하나도 없었지만, 이번 상속을 통해 주요주주로 등장했다.
 
현행법상 이들이 삼성생명이라는 금융사의 대주주로 공식화되려면 금융당국으로부터 자격 승인을 받게 돼 있다. 최소한의 책임감이나 도덕성을 갖추지 않은 인물이 금융사 대주주를 맡았다가 빚어진 참극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런 참극을 예방하려면 사전에 도덕성을 갖췄는지 점검하는 것은 중요한 선행절차라 할 수 있다.
 
그 관문을 통과하려면 도덕성이나 책임감에 의심을 받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삼성생명이 암 입원비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버티며 환자들과 갈등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이 대주주 자격을 승인받기는 난처했을 것이다. 금융당국의 입장에서도 거북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해묵은 문제를 전향적인 자세로 해결한다는 모습을 보일 필요성이 있었다. 그런 성의표시 덕분인지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에 대한 대주주 자격심사는 지난 13일 무사히 통과됐다.
 
그렇지만 말끔히 매듭지어진 것은 아닌 듯하다. 일부 암환자들이 여전히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합의는 삼성생명 측 '회유'의 결과일 뿐이라는 주장이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장했다. 암사모, '암환자를 사랑하는 모임'의 이름으로 작성된 이번 청원에서 청원인들은  "보암모라는 암환자단체 집행부 일부를 포함한 암환자 21명과 삼성생명의 야합"이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삼성생명과 암환자들 사이의 분쟁을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렇지만 삼성생명으로서는 대세가 이미 기울었다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현재 거론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마저 사면된다면 삼성으로서는 그야말로 아쉬울 것이 없어질 듯하다. 그러니 이번 합의을 수용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하려는 가입자들의 목소리는 묻혀버릴 가능성도 작지 않다.
 
삼성생명에게는 소비자들과 벌이는 또다른 다툼도 남아 있다. 바로 즉시연금 문제이다. 지난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5부는 지난 21일 즉시연금 가입자 57명이 삼성생명을 상대로 제기한 미지급연금액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원고들에게 총 5억9000여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는 주문이다.
 
그렇지만 삼성생명이 이번 판결을 흔쾌히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2심과 3심으로 끌고 가면서 원고들을 더 지치게 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그 결과 마지막에는 재판 결과를 뒤집을지 누가 알겠는가?
 
즉시연금 지급소송이 제기된 지 벌써 3년이 흘렀다. 그 사이 원고인 보험가입자들은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런 소송이 대기업에는 사소한 일일지 모르지만 일반 가입자들에게는 부담이 결코 가볍지 않다.
 
어쩌면 고객들과 다툼을 벌이는 것이 삼성생명의 생존방식일지도 모르겠댜. 혹시 그런 다툼을 즐기는 것은 설마 아니겠지? 어쨌든 그러다가 소비자들의 신뢰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추락하지나 않을까? 요즘 거론되는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이나 사면에도 악재가 되지는 않을까? 스스로 잘 검토해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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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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