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계곡의 물소리에 길을 묻다
2021-07-16 06:00:00 2021-07-16 06:00:00
나도 이 계곡의 물줄기처럼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긴 삶의 여정에서 오로지 깨끗하게, 깨끗하게만 흘러가야 한다는 소명의식 같은 것을 갖추고 있을까. 위를 쳐다보지 않고 아래로 아래로만 흘러 흘러, 낮은 곳을 살피겠다는 정신을 갖고 있을까. 그 정신을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나 자신에게 물어보고 또 물어보았다.  
 
발원지가 심산유곡이면 어떠하리. 연약한 물방울 하나면 어떠하리. 그 태생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은 없다. 지금 이 물줄기의 삶은 건강하다. 힘차다. 비경을 벗 삼아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장관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곁을 지켜주고 있는 이웃인 수많은 나무들, 산새들, 작은 동물들, 그리고 메아리가 약속처럼 다짐처럼 물소리를 굳건하게 지켜주고 있다. 물소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생명수로서의 기능은 완벽한 유전자 덕분이다. 숲에서 뿜어져 나온 피톤치드의 입자에 물소리를 입혀 끊임없이 굵고 짙은 농도의 향기를 생산하는 것은 주위를 보듬고 살피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은 습관 때문이리라. 아, 그렇게 지금의 이 터전은 오래도록 따뜻한 위로로 남을 것이다.  
 
더불어 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지친 바람을 불러와 그 얼굴과 이마를 씻어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따사로운 햇살에게 아낌없이 발 담그고 가는 것도 허락한다. 찬 성질과 뜨거운 성질의 결합이 윤슬로 빛나는 순간이다. 우리 인간이 이 계곡의 물소리에게 배워야 할 가장 기초적인 지식은 비록 서로 그 성질이 달라도 몸을 섞어 아름다움을 빚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터득해야 한다. 차가움과 따사로움이 자연스러운 궁합이라는 것을 여기에서 발견한다. 이곳에 머물다 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유속이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길을 찾는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는 일은 흥미롭다. 앞이 막히면 천천히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궁극적으로는 갈 길을 포기하지 않기에,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일급수에서만 산다는 물고기들의 유유자적을 배운다. 덤으로 제공받은 은혜로움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휴식은 꼭 필요한 일. 느린 유속이 던져주는 미학이다. 휴식의 방법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축적된 힘으로 더 힘차게 나아가면 된다. 강으로 가는 법, 바다로 가는 법은 모두 힘을 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계곡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여기 오래 머무르고 싶었다. 그것은 단지 이 물소리의 순결함 때문만은 아니다. 낮은 곳을 지향하는 이 물소리의 사고 때문만은 아니다. 이 거룩한 삶의 교과서인 물소리를 한 행 한 행 더 오래, 더 구체적으로 읽고 싶었기 때문이다. 물소리의 경전 소리를 번역하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 계곡의 물줄기와 물소리는 한바탕 잘 놀다 간다는 것. 후회 없이 제 본분에 충실하다는 것. 인생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혼탁한 세상을 이겨나갈 힘의 원천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계곡의 물줄기와 물소리의 속성은 독야청청이고 일편단심이다. 혹여, 어떤 이는 살아가는 데에 그러한 속성이 무슨 보탬이 되겠냐고, 그 덕목이 이 어지러운 세상살이와 어떻게 제대로 된 조합을 할 수 있겠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쓸쓸해지지 않고, 가장 위로가 되는 삶의 방식을 찾기 위해 독야청청, 일편단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그래야 계곡의 물줄기처럼 물소리처럼 오래도록 비경으로 남지 않겠는가.   
 
"뛰어난 덕은 골짜기와 같다", “천하의 계곡이 되면 언제나 덕이 떠나지 않는다. 덕이 떠나지 않으면 어린아이로 되돌아간다”는 말이 떠오른다. 도가의 사상을 담아낸 '노자(老子)'는 이렇게 계곡을 들어 ‘덕’을 설명했다. 
 
코로나19가 다시 대유행으로 번지며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고, 많은 사회적 문제가 우리의 삶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갈등과 인내와 극복을 강요받으며 살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가슴 속에 지워서도 잊어버려도 안 될 가장 맑은 발성, 계곡의 물줄기와 물소리에 길을 물을 때다. 그 풍경을 오랫동안 그려보고 읽어볼 때다.      

오석륜 시인/인덕대학교 비즈니스일본어과 교수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