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대기업 출신 그리고 기자 그리고 모델. 현재는 배우다. 하지만 그 보단 대중들에게 ‘이직의 여왕’이란 타이틀로 불린다. 남들은 한 번도 들어가기 힘들단 ‘대기업’ 그리고 최고의 경쟁률을 선보인 ‘슈퍼모델’ 대회, 여기에 ‘언론고시’로 불리는 방송 기자 출신이었다. 그래서 진기주는 배우적 능력보단 그의 화려했던 이력이 더 주목을 받아왔다. 그게 본인에겐 정말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란 것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하물며 본인은 오죽했을까 싶다. 정말 작심하고 달려든 듯싶었다. 배우란 직업적 타이틀을 달고 살면서 이 정도로 작정하고 죽을 듯이 달려든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보는 관객이 이 정도라면 당사자인 배우 진기주는 정말 ‘죽을 만큼 사력을 다했단 얘기’가 된다. 영화 ‘미드나이트’ 속 진기주는 시시각각 자신을 옥죄어 오는 ‘도식’(위하준)의 추격을 피하기 바쁜 ‘경미’란 인물 그대로였다. 놀라운 점은 쫓기는 ‘경미’가 소리를 들을 수 없단 점이다. 배우로선 표현할 무기 하나가 빠진 셈이다. 전쟁터에서 ‘총을 놓고 나가 싸워라’라고 병사에게 얘기를 하는 셈이다. 근데 진기주는 그걸 해냈다. 이 배우에겐 오기가 남아 있었다.
배우 진기주. 사진/티빙, CJ ENM
아직은 뭘 제안해도 욕심이 생기고 의욕 넘치게 달려들고 싶은 진기주다. 그래서 ‘미드나이트’ 시나리오를 받아 든 뒤 자신이 소화해 보지 않았던 ‘스릴러’ 장르에 끌려 덥석 잡아 버렸단다. 영화는 이제 겨우 데뷔작 ‘리틀 포레스트’에 이어 두 번째다. 단 두 번째 만에 이런 장르 영화가 자신에게 온 것도 신기했다. 하지만 정작 출연을 결정한 뒤 겁이 덜컥 났고 그제서야 모든 게 보이기 시작했단다.
“와 재미있겠다. 하고 싶어요. 그러고 출연 결정한 뒤 시나리오를 다시 보니 ‘아뿔싸’ 싶었죠(웃음). 내가 이걸 한다고? 너무 어마어마한 게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거에요. 그때서야 심장이 내려 앉는 느낌이었죠. 우선 준비 과정에서 한 가지 원칙은 있었어요. 과장되거나 과도하게 덧입혀서 보여주지 말자. 그리고 수어 학원부터 다녔죠. 실제 청각장애인 선생님들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너무 감사했어요.”
배우 진기주. 사진/티빙, CJ ENM
극중 ‘경미’가 말을 못하고 듣지를 못하는 청각장애인이기에 그저 말을 안하고 안 들리는 척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수어학원에서 관찰한 청각장애인 선생님들은 달랐다. 우선 항상 상대방의 입을 바라보며 대화를 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가 나온다. 청각장애인이지만 말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진기주에겐 정말 모험 같은 장면이다.
“일반적인 비장애인들은 상대방의 눈을 보고 대화를 하잖아요. 그런데 청각장애인분들은 비장애인과 대화를 할 때는 상대의 입술을 보신대요. 그래야 무슨 말인지 더 잘 알 수 있으니. 그래서 저도 한 동안은 그게 실제로 습관처럼 남아 있기도 했어요. 그리고 영화 중 후반쯤 경미가 말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정말 고민 많았어요. 너무 죄송하지만 청각장애인 선생님에게 읽어 달라고 부탁드렸죠. 흔쾌히 해주신분도 계시지만, 망설이다 해주신분도 계시고. 너무 감사했어요.”
배우 진기주. 사진/티빙, CJ ENM
‘미드나이트’ 속 진기주의 수어 연기를 보면 그가 얼마나 이 배역에 몰입해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 등장한다. 청각장애인이기에 당연히 말을 못한다. 말은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원초적인 수단이다. 진기주가 연기한 ‘경미’는 말을 못하기에 수어로 그 감정을 전달한다. 손으로 전달되는 극중 ‘경미’의 언어는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 감정이 오롯이 관객들에게 전달이 된다.
“저희도 화가 나거나 다급하면 목소리가 높아지고 또 빨라지고 그러잖아요. 수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영화 초반 또박또박 나가는 수어부터 초반 이후 등장하는 화가 날 때의 수어 등이 실제로 청각장애인분들이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수어도 말이잖아요(웃음). 그게 당연한 걸 저도 배우면서 알았죠. 정말 영화 속 대사는 모두 수어로 실제 청각장애인분들이 하시는 속도대로 할 수 있게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배우 진기주. 사진/티빙, CJ ENM
사실 수어만 제대로 한다고 ‘경미’를 준비한 게 끝난 건 아니었다. 진기주가 제일 곤욕스러웠던 점은 달리기였다. ‘도식’을 연기한 위하준과 함께 ‘미드나이트’를 촬영하면서 자신들의 ‘연골’을 받친 영화란 뜻의 ‘연골나이트’라고 불렀다. 우스갯소리로 부른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무릎이 안 좋아질 정도로 엄청나게 뛰고 또 뛰었다. 영화에서도 그 모습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하하. 감독님이 사전미팅에서 ‘달리기 잘하냐’고 물어 보시더라고요. 저 솔직히 젤 못하는 게 달리기에요. 그땐 그냥 웃고 말았는데. 정말 어마어마하게 달렸어요. 우선 ‘아육대’ 그리고 운동 영상을 보면서 잘 달리는 분들의 팔 움직임 속도 자세 등을 보고 연구했어요. 근데 현장 가니 그런 준비 하나도 필요 없더라고요(웃음). 그냥 감정 그대로 달리고 뛰는 답이었어요. 위하준 배우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려오는데 저절로 제 다리가 빨라지더라고요 하하하.”
배우 진기주. 사진/티빙, CJ ENM
영화 속에는 청각장애인 ‘경미’를 위해 특이한 소품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경미의 집에 설치된 소리에 반응하는 전등, 그리고 경미의 차 안에 설치된 소리 감지기. 여기에 앞서 언급한 달리기 만큼 격렬한 액션도 존재한다. 특히 눈을 의심하게 하는 장면으로는 한 눈에 봐도 2~3층 규모의 높이에서 진기주가 ‘번쩍’ 뛰어 내리는 장면이다. 참고로 이 장면은 대역이 아닌 진기주가 직접 소화한 장면이었단다.
“우선 소리에 반응하는 전등은 실제로 판매하고 있는 상품이에요. 원하시면 제가 파는 곳 알려 드릴께요. 하하하. 근데 차에 설치된 소리 감지기는 순수하게 감독님 상상력이었어요. 그런 장비는 제가 알기로는 없는 걸로 알아요. 그 장치 때문에 오싹한 장면이 괘 잘 만들어졌죠. 그리고 제가 뛰어 내리는 장면! 거기 진짜 높아요. 저 와이어 차고 실제로 뛰었는데 무술감독님에게 진짜 칭찬 많이 받았어요(웃음)”
배우 진기주. 사진/티빙, CJ ENM
영화는 ‘리틀 포레스트’에 이어 ‘미드나이트’까지 단 두 작품뿐이다. 아직은 해야 할 작품과 해야 할 배역이 더 많은 배우다. 그는 출연작을 정하고 매력을 느끼는 과정이 거의 정해져 있다고 한다. 작품보단 ‘배역’이 먼저 들어오고, 그 배역을 보고 나면 작품에 대한 호감도가 급상승한다고. 아직은 궁금한 게 너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웃는 진기주다.
“사람이 궁금한 게 아직은 제 원동력 같아요. 제가 좋아하고 정이 가는 인물을 진심을 다해 연기하고 그러면 작품 자체가 제가 오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그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 너무 즐거워요. 앞으로도 이렇게 눈길이 가는 인물을 또 만나고 싶은 게 제 배우적 욕심이에요. 액션에 생각이 별로 없었는데, ‘미드나이트’ 하고 나선 액션도 해보고 싶어요. 소소한 가족 얘기도 아직은 많이 끌리고요. 그냥 다 해보고 싶어요 하하하.”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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