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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메이드 인 루프탑’ 이홍내, 이 배우 정말 ‘물건’이다
“소속사 통해 시나리오 받아…‘퀴어’ 거부감 보단 새로운 것 끌려”
“사람이 ‘사랑’ 대하는 법 얘기, 무겁지 않고 편하게 볼 이야기다”
2021-06-14 12:36:36 2021-06-14 12:36:36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분명 어디서 봤음직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았다. 우선 그가 출연한 영화의 연출자는 충무로 대표 퀴어 전문 연출자인 김조광수 감독이다. ‘조선명탐정시리즈 제작자로 유명하지만 연출자로도 정평이 나 있다. 특히 그는 실제로 커밍아웃을 하고 공개 동성결혼식을 올린 영화인으로 유명하다. 그가 최근 선보인 영화 역시 퀴어. 당연히 주연 배우들은 연기를 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첫 장면에서 등장한 남자 배우는 오감을 넘어 육감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날카롭게 각이 진 이목구비. 하지만 그에 비해 다분히 여성스러움이 느껴지는 목소리. 그렇다고 억지스러움은 절대 느껴지지 않았다. 희화화된 느낌도 없었다. 그는 한 남자와 다투고 있었다. 가만 보니 두 사람, 커플이었다. 요즘 시대에 남남 커플에 대한 시선이 뭐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니 넘어간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점은 따로 있었다. 문제의 그 남자. 영화가 이어지고 또 흘러갈수록 말도 안 되는 설득력을 전하고 있었다. 그가 주인공인 이 영화, ‘남남 커플하나만 지우고 보면 너무도 평범하고 유쾌한 로맨스 청춘영화 였다. 몇몇 드라마에서 빡빡머리 마초 이미지로 등장했던 신인 배우 이홍내가 이 정도 내공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을 만난 그와의 대화다.
 
배우 이홍내. 사진/(주)엣나인필름
 
아마 그의 지금 얼굴을 보면 누구지?’ ‘어디서 봤는데?’ 싶다. 헤어스타일이 좀 바뀌었다. 가장 최근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악귀 지청신으로 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메이드 인 루프탑은 완전히 다른 장르다. 더 완벽하게 다른 인물이 돼야 했다. 무엇보다 퀴어장르에 이홍내를 캐스팅할 마음을 먹은 김조광수의 안목이 놀라웠다. 이홍내 역시 감사함을 전했다.
 
소속사를 통해서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죠. 출연 결정이나 제안을 받은 뒤 전달 받은 시나리오가 아니었어요. 근데 읽고 나니 너무 욕심이 생긴 거에요. 회사에 감독님 좀 꼭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죠. 퀴어란 것에 거부감이나 부담이 있었다기 보단 제 성향이 늘 새로운 이야기 배역에 끌려요. 지금 아니면 이 배역은 절대 못해 볼 것 같았어요. 주인공 하늘과 제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보였고요.”
 
그가 연기한 하늘은 동성애자다. 남자 연인과 3년째 동거 중이다. 얼핏 보면 쉽다. 여자친구와 3년째 동거 중이다. 내 앞에 있는 상대방은 사랑하는 여인이다. 이렇게 자기 암시를 하고 접근하면 될 터. 하지만 연기가 그렇게 ‘1+1=2’란 공식으로 나오는 것인가. 이홍내는 사실 너무도 걱정이 됐다고. 이성애자인 본인이 잘못 접근하면 유머스러운 모습이 될 것 같았단다.
 
배우 이홍내. 사진/(주)엣나인필름
 
우선 동성애를 쉽게 생각하고 접근한 건 단 1도 없었어요. 물론 반대로 쉽게 제가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는 지점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고. 결과적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감독님에게 묻고 또 물었어요. 호흡까지도요. 감독님이 실제 게이이시니 가장 좋은 선생님이셨죠. 너무 무례한 질문일까 싶기도 했는데 연애 때 연인 가족을 만났을 때의 심경도 여쭤보고. 정말 하늘을 연기하는 데 너무 많은 것을 잡아 주셨어요.”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여전히 동성애는 가깝고도 먼 느낌이다. 대중매체를 통해선 이미 동성애가 너무도 많이 일반화되고 접점도 많았다. 하지만 반대로 와의 직접적인 부분이 많아질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그런 점은 영화에서도 분명히 드러나고 담겨져 있었다. 이홍내 역시 남성동성애자인 게이를 연기하면서 이런 선입견을 갖고 있었지만 그 선입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물론 그런 선입견자체가 있었는지도.
 
정말 솔직하게 전 선입견? 그런 점은 생각도 안 했어요. 제 고려대상도 아니었고. 이번 영화 속 하늘이란 인물을 연기하면서 제가 중점으로 둔 건 딱 하나에요. 한 사람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 그 상대가 남자일 경우 동성애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일반적으로 우리가 잘 아는 동성애 표현 방식은 제외했어요. 그럼 제가 아는 게 전혀 없잖아요. 그래서 감독님께 진짜 매씬 별로 컨펌을 받고 촬영을 했어요.”
 
배우 이홍내. 사진/(주)엣나인필름
 
메이드 인 루프탑은 퀴어 영화다. 지금까지의 퀴어 영화들은 어둡고 다크한 분위기였다.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깝지만 멀다고 느끼는 동성애가 영화에서도 꼭 그렇게 소비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동성애자연출자들이 연이어 주류 영화계에 등장하면서 퀴어의 색깔도 전혀 예상치 못한 지점으로 달라졌다. 달라진 퀴어는 기존 주류 영화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메이드 인 루프탑도 그랬다.
 
저도 시나리오가 너무 밝아서 놀랐어요. 감독님과의 대화에서 저희 영화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생 동성애자분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감독님도 취재를 하셨겠지만 예전과 다르게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사실 고등학생 때 거의 끝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시련 등 어둡고 아픈 고민은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결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고민할 시간을 줄이고 현실과 더 마주하는 용기 있는 분들이고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사는 사람얘기라고 봤어요.”
 
영화가 밝고 명랑한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퀴어장르 영화인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 때문에 메이드 인 루프탑에 대한 색안경을 쓰고 볼 이유도 될 듯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의외로 너무 웃기고 너무 재미가 있단 평이 주류다. 실제로 영화에선 생각지도 못한 유머 코드가 넘쳐난다. 주류 코미디 장르를 능가하는 코미디 소화력도 이 영화 속 이홍내가 담당하는 주의깊게 볼 지점이다.
 
배우 이홍내. 사진/(주)엣나인필름
 
“(웃음) 되게 웃긴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감사하죠. 특히 조커 정장장면에서 많이들 웃으셨다고 하는데. 실제로 저와 감독님은 진짜 창피했어요(웃음). 도대체 그런 정장은 어디서 준비를 하셨는지 하하하. 낮에 제가 그 정장을 입고 청계천을 걷는 장면에선 공교롭게도 그 주변에 불이 나서 소방차 구급차가 엄청나게 몰렸었어요. 그때 사람들이 저희 촬영팀을 보고 누구야?’ ‘’모르는 사람인데?’ 라면서 이거 할리우드 영화인가봐라는 수근거림을 실제로 제가 들었어요(웃음). 그때 촬영 끝나고 근처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정말 촬영팀이 모두 되게 먼 곳으로 이동해서 밥을 먹은 기억이 나요(웃음)”
 
이홍내는 메이드 인 루프탑에 대한 선입견도 또는 뭔가 심각한 메시지나 어떤 주제가 있을 것이란 예측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저 연인끼리 즐겁게 극장에 와서 웃고 즐기고 깔깔거리며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강조했다. ‘퀴어영화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퀴어가 꼭 어떤 주제의식을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전했다. 그저 웃고 즐기고 편안하게 봐주길 바란단다.
 
배우 이홍내. 사진/(주)엣나인필름
 
그냥 저희 영화 보시면 따뜻하고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요. 2030대에 이런 고민하시는 분들 정말 많으실 거에요. 취직 사랑 지금 하고 있는 일. 정말 하나 같이 잘 안 풀릴 때, 답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을 때. 저희 영화 보시고 저럴 수도 있구나싶으시면 정말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뭘 가르치고 가르쳐 드리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가볍게 오셔서 웃고 즐겨 주세요. ‘퀴어는 그냥 장치일 뿐이니까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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