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악역은 그저 나쁜 인물로만 그려져 왔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이런 시각이 변화 됐다.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고, 그 이유 안에서 새로운 얘기를 끌어 내는 시도를 해왔다. 무엇보다 악역에 대한 매력은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자와 연출자 입장에서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했다. 주인공의 ‘선’은 확실한 카테고리가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악’은 그 반대에 존재하는 소비성 캐릭터로만 치부됐다. 이건 반대로 해석하면 상상과 확장의 폭이 ‘만들기에 따라’ 무한대가 될 수 있단 얘기다. 그래서 매력적인 악역에 대한 재해석이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악역 서사를 유려한 시각으로 그려낸 ‘조커’가 베니스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점은 이런 흐름의 상징이다. 상업적 성공에선 ‘스파이더맨’ 시리즈 속 악역을 전면에 내세워 속편까지 제작이 완료된 ‘베놈’도 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악녀를 재해석한 안젤리나 졸리 주연 ‘말레피센트’도 마찬가지.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101 달마시안’의 기괴한 악녀 ‘크루엘라’는 이미 1996년 실사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당시 ‘크루엘라’는 할리우드 레전드 여배우 글렌 클로즈가 연기했다. 애니메이션 속 이미지 그대로 기괴하고 괴팍한 모습이 인상적인 악녀 그대로였다. 도대체 이 악녀는 ‘왜’ 달마시안을 광적으로 증오 했을까. ‘왜’ 모피에 광적으로 집착을 했을까. 왜 그런 해괴한 헤어스타일을 하게 됐을까. 그 이유가 영화 ‘크루엘라’ 속에 오롯이 담겼다.
사랑스럽고 러블리한 이미지가 강한 금발의 엠마 스톤이 디즈니 역사상 최강이며 최고의 악녀 크루엘라를 연기했다. 제작진의 캐스팅 오류를 짐작케 할 만큼 배우 이미지와 캐릭터 성격이 엇박자를 예상케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엠마 스톤의 ‘크루엘라’는 할리우드 영화 역사상 최강의 ‘걸 크러쉬’ 악녀를 만들어 냈다.
1970년대 영국.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에스텔라. 어린 시절부터 그는 남들과는 달랐다. 우선 눈에 띄는 헤어스타일. 절반은 검은 색, 나머지 절반은 흰색. 그의 내면을 상징하는 비주얼이다. 그는 에스텔라다. 하지만 때에 따라선 크루엘라도 된다. 그의 이중인격은 병적인 성향까진 아니다. 다소 괴팍할 뿐. 누군가는 그 괴팍함을 천재성이라고 부른다. 정형화된 틀 속에서 에스텔라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학교에서 스스로 걸어 나온다. 어머니 역시 스스로 개척하는 삶을 살 수 있게 에스텔라의 선택을 응원한다. 에스텔라에게 어머니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믿음이었다. 에스텔라가 크루엘라로 넘어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도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에스텔라 스스로가 이중인격 가운데 착한 심성만을 바라보게 하는 동력이다.
영화 '크루엘라' 스틸.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학교를 그만 둔 에스텔라 모녀는 런던으로 향한다. 어머니는 에스텔라를 좀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기 위해 도움을 청한다. 런던 패션계를 이끄는 최고 디자이너 남작부인(엠마 톰슨)을 만난다. 하지만 어머니와 남작 부인이 만나 얘기를 나누던 중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한다. 어린 에스텔라 눈 앞에서 어머니가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에스텔라 눈에 들어온 한 사람. 남작부인. 어머니와 남작부인은 어떤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알 길이 없다. 어린 에스텔라는 일단 도망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에스텔라. 혼자가 된 뒤 길거리에서 만난 좀도둑 재스퍼, 호레이스와 함께 살면서 에스텔라는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왔다. 재스퍼와 호레이스 도움으로 런던 최고 백화점 ‘리버티’에 취직한 에스텔라. 그곳에서 우연히 남작부인 눈에 띈다. 남작부인 개인 브랜드 디자이너로 발탁된 에스텔라는 남작부인 실체에 접근하게 된다. 그 충격으로 오랜 시간 자신의 내면에 눌러왔던 또 다른 자아 크루엘라가 드러난다. 크루엘라의 도발적이고 공격적인 면모는 보수적 영국 상류사회 패션 코드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며 남작부인 지위를 단 번에 위협한다. 이제 영국 런던 상류사회를 이끄는 패션계는 남작부인과 크루엘라 대결로 압축된다. 크루엘라는 남작부인을 향해 칼을 겨눈다.
영화 '크루엘라' 스틸.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크루엘라’는 오롯이 주인공 크루엘라에게만 집중한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현미경처럼 들여다 본다. 어린 시절 에스텔라의 안정된 자아와 성격 그리고 환경의 조화는 역설적으로 불안감을 끌어 올리는 영화적 장치들이다. 이 같은 조화가 반대급부로 에스텔라의 또 다른 자아 크루엘라의 복수와 분노를 끌어 올리는 동력이 될 것이란 점은 영화 중반 이후부터 관객들이 느끼게 되는 지점이다. 전체적으로 비극과 복수는 공존하면서 반대로 충돌하는 요소로 서로를 견제한다. 비극의 동력이 될 크루엘라가 드러나지 않게 에스텔라를 보살피는 엄마, 하지만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에스텔라의 불안은 예견된 반전과 복선이었을 뿐이다. 사실상 영화는 처음부터 에스텔라가 아닌 크루엘라를 전면에 내세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크루엘라를 다스린 에스텔라가 아닌 에스텔라를 다스려 온 크루엘라의 삶을 우리가 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고 말이다.
영화 '크루엘라' 스틸.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크루엘라’는 1970년대가 시대적 배경이고 패션계와 상류사회 보수적 시각이 지배하는 공간이 담겨 있지만 사실상 세대간 대결 구도가 더욱 두드러진 모습이다. 이 같은 전제에서 출발하면 기성세대인 남작부인은 소시오패스적인 면모로 자신의 지위와 권한 그리고 권력에 집착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반면 신세대 크루엘라는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 경계선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면서도 스스로의 정체성과 자아를 다스리는 강건한 인물이다. 물론 어느 쪽이든 허상이고 허울일 뿐. ‘크루엘라’가 그린 당시 사회상은 정글의 법칙이 만연한 세상이다. 먹의 사슬이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 크루엘라는 먹히느냐 잡아 먹느냐, 게임의 법칙에서 후자를 선택했을 뿐이다. 그가 노린 먹이가 바로 ‘남작부인’이다. 두 인물의 대결은 흡사 세대 교체와 유행 선도를 추구하는 패션계의 생존 법칙을 사회 전반 생태계로 확대시킨 연출의 노림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크루엘라' 스틸.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사실 이런 모든 점을 한쪽으로 밀어내고 ‘크루엘라’를 바라봐도 눈에 띄는 점은 차고 넘친다. 가장 돋보이고 가장 눈길을 끄며 가장 주목 받아야 할 지점은 상상의 인물을 현실로 끌어 낸 배우와 연출 그리고 제작진 모두의 내공이다.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 속 기괴하고 괴팍스런 악녀 ‘크루엘라’가 현실에 등장했다. 디즈니가 가장 완벽한 라이브 액션을 만들어 냈다. 이제 ‘라이브 액션’은 ‘크루엘라’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됐다. 개봉은 26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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