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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2021-04-26 00:00:01 2021-04-26 00:00:01
요즘 딸과 냉전 중이다. 사춘기에 들어선 6학년 딸은 잔소리 한 마디에도 까칠한 태도로 반항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딸의 성장이 부모 권위에 대한 반항으로 읽히는 나는 딸의 태도가 마뜩잖다. 이런 이유로 딸과 언쟁을 벌이는 날이 많아졌다. 나도 괴롭고 딸도 괴롭다.
 
며칠 전이다. 이날도 책상 정리 문제로 딸과 한바탕 벌이고 속상한 마음에 맥주 한 잔을 마시며 한숨을 쉬는데 불현듯 오싹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양 팔뚝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훗날 성인이 된 딸이 내가 내 부모에게 했던 원망을 내게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말 그대로옛날 사람이다. 자식에 대한 부모 권위가 절대적이던 시대에 태어나 자랐고, 그런 삶에 일말의 의문도 갖지 않던 분들이다. 그 세대는 그랬다. 자식이 잘못하면 회초리를 드는 게 당연한 시대였다. 나와 친구들은 누구 엄마아빠가 더 무섭나를 두고 경쟁하기도 했다. “우리 아빠는 빗자루로 때려” “나는 엄마한테 허리띠로 맞아봤어우리는 누가 더 무서운 무기로 얼마나 세게 맞았나를 앞다퉈 늘어놨다. 그 중에 제일 불쌍한 사람이승자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이불에 지도를 몇 번 그린 뒤 엄마가 팬티 바람으로 이웃에 가서 소금을 얻어오라 했다. 오줌 묻은 이불을 들고 옆집에 가니 옆집 아줌마가 소금을 준 뒤 회초리로 내 엉덩이를 때렸다. 나는 울음을 터트렸다. 내 울음소리에 그 아줌마와 또 다른 이웃 주민들,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 집 앞에서 내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풍습이란 이름 아래 웃고 떠드는동네의 해학으로 여겨졌지만 지금 시대엔 변명의 여지가 없는아동학대.
 
나보다 열 살 많은 작은형은 개고기를 못 먹는다. 난 안 먹는 것이다. 하지만 형은 못 먹는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집에서 기르던 똘이를 뒷산에 데려가 매질을 해 보신탕으로 끓여내는 걸 본 트라우마 때문이다그 개고기를 소고기라 거짓말로 포장해 내게 먹인 부모님은 넙죽 받아 먹는 꼬맹이 시절 날 보고 너털웃음을 터트리시기도 했다똘이는 나와 작은형에게 그 시절 가장 친한 친구였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부모님이 잘못됐단 게 아니다. 당시 부모들이 그랬단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자식 입장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부모 권위가 절대적이던 시대를 살아온 분들이 우리 부모님 세대였다. 그런 부모님 세대 자식으로 태어난 나 역시 자식 앞에선 부모 권위가 절대적이란 생각으로 컸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있다. 부모님 세대 문화와 생각을 이해하면서도 절대적이던 권위에 답답함을 느끼는 나다. 그런데 내가 내 딸 앞에서부모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 그 권위에 도전하려는 딸을사랑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더 큰 권위로 덮으려 한다. 소름이 끼친다.
 
조선시대, 아버지영조가 아들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였다. 이 내용을 영화로 만든 이준익 감독 영화사도’. 당시 인터뷰에서 이 감독은자식을 바라보는 부모 시선과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 시선. 그 시선의 충돌이 어떤 파국을 가져오는지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딸이 잘 되길 바라는 내 마음과, 그런 나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 두 시선이 충돌하는 요즘 생각이 많아진다. 난 아직 성숙되지 못한 어른이고 부모일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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